['참여형 행정개혁' 어떻게]가이 피터스-남궁근교수 대담

  • 입력 2003년 7월 27일 19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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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피츠버그대 가이 피터스 교수(오른쪽)와 남궁근 서울 산업대 IT 정책대학원장이 24일 본사 회의실에서 참여형 행정개혁 문제와 선진국의 사례 등에 관해 대담을 나누고 있다. -박주일기자
미국 피츠버그대 가이 피터스 교수(오른쪽)와 남궁근 서울 산업대 IT 정책대학원장이 24일 본사 회의실에서 참여형 행정개혁 문제와 선진국의 사례 등에 관해 대담을 나누고 있다. -박주일기자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최근 ‘참여형 행정개혁’을 제창했다. 이는 전임 김대중(金大中) 정부가 내세웠던 ‘작고 효율적인 시장지향적 정부’와는 맥을 달리하는 것이다.

정부개혁 및 관료제도의 권위자로, 참여형 행정개혁의 전도사 역할을 해온 미국 피츠버그대 가이 피터스 석좌교수와 남궁근(南宮槿) 서울산업대 IT 정책대학원장이 24일 오전 본사 회의실에서 대담을 갖고 이에 관한 의견을 교환했다.

피터스 교수는 이날 서울산업대 IT정책대학원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주최한 ‘선진국 참여형 정부개혁의 사례와 교훈’을 주제로 한 국제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남궁근 교수=김대중 정부의 작고 효율적이면서도 공공서비스 기능을 확충한, 시장원리에도 맞는 행정개혁(NPM·신공공개혁) 방향은 대다수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피터스 교수는 참여형 행정개혁이 시장주의적 행정개혁을 대체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두 접근법의 차이는 무엇인가.

▽가이 피터스 교수=정부의 문제점이 어디에 있느냐를 보는 시각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시장모델에서는 행정력을 독점한 정부가 ‘정부가 원하는 것’만을 밀어붙이는 바람에 효율이 떨어진다고 본다. 반면, 참여형 모델은 정부조직이 너무 수직적, 계층적(hierarchy)이기 때문에 현장에서 일하는 하급 공직자의 참여의식이 떨어지고, 행정수요의 고객인 시민을 행정에서 괴리시킨다고 본다.

▽남궁=한국에선 노 대통령의 참여형 정책을 사회주의적이라고 비판하는 시각도 있다.

▽피터스=문제점에 대한 접근법을 놓고 어떤 정부를 ‘시장주의적이다’, ‘사회주의적이다’라고 구분하기는 어렵다. 행정개혁의 요체는 국민이 원하는 것을 찾자는 것이다. 좌우가 그렇게 중요하다고는 보지 않는다.

▽남궁=노 대통령이 최근 부처별 중하위 공직자를 ‘주니어 보드’로 조직화해 개혁을 주도하도록 하겠다는 구상을 밝히자 야당인 한나라당은 문화혁명을 연상시킨다고 비판했다.

▽피터스=고어위원회(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주도한 행정개혁 조직)도 조직구성원과 시민에 대한 권한위임을 강조하면서 비슷한 일을 했다. 고어위원회에 참여한 이들은 ‘특정인’을 지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조직의 변화를 갈망하는 그룹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진주조개의 모래’로 불렀다. 모래는 진주조개에 들어가 상처를 내지만 이는 좋은 결실을 위한 것이다. 고어위원회 구성원들은 수많은 문제 제기를 통해 ‘진주’를 만들어내고자 했다.

이런 운동은 전통적인 수직적 관료문화에선 어렵지만 행정의 성과를 높이고 구성원의 사기진작을 위해서는 중요하다.

▽남궁=노 대통령도 최근 민원담당 공직자들에게 행정현장의 변화를 촉구한 바 있다.

▽피터스=국민은 고위 공직자는 선출할 수 있지만, 정작 얼굴을 맞대는 하위 공직자에 대한 영향력은 갖고 있지 않다. 국민이 하위 공직자를 통해 정부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런 구조가 생겨야 하위 공직자가 자율성과 함께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

▽남궁=시장형에서 참여형으로 정책을 바꾼 뒤 성공한 경우는….

▽피터스=미국 인디언이나 알래스카 에스키모를 위한 병원시스템 개혁이 대표적인 사례다. 인디언이나 에스키모는 환자 가족이 함께 아파하고, 고통을 나누는 문화를 갖고 있다. 비용감축만을 우선하는 상황에선 병실 내에 환자가족을 위한 공간을 두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현장공무원이 행정수요자의 문화를 이해하고 병실규모를 늘리자 완치 기간이 단축됐다.

▽남궁=시장주의적 접근법으론 그 같은 해결은 불가능한가. 또 좋은 서비스의 반대급부로 정부예산이 더 들었을 텐데….

▽피터스=‘가격-성능’의 비율을 따지는 구조였다면 채택될 수 없는 제도였다. 하급 공직자들이 고객(국민)에게 변화의 필요성을 물었고,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는 데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내가 구체적인 숫자를 갖고 있지 않지만, 비용은 많이 늘지 않았던 것으로 안다. 또 시장형이 언제나 비용절감에 효과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영국 의료시스템(NHS)을 보라. 영국 정부가 의욕적으로 시장주의적 개혁을 시도했지만 결과적으로 의료비용은 줄지 않았다. 의사한테 갈 돈이 회계사에게 갔을 뿐이다.

▽남궁=정보공개법은 참여형 행정개혁을 위한 밑거름이다. 한국 정부도 최근 정보공개법, 기록보존법, 행정절차법 등의 법제화작업을 진행 중이지만 국민이 정부업무를 아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피터스=국민에게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효율적인 행정참여는 어렵다. 정부가 일손이 부족해 시민에게 업무를 잘못 알린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물론 큰 비용이 드는 경우에는 수요자가 비용의 일부를 부담하면 된다. 실제로 미국의 큰 정부부처는 정보공개업무 담당자만 70명에 이른다.

물론 국가에 따라 정보공개 정책과 철학이 다르다. 한국과 미국은 공개를 요청받은 자료만 공개하지만 스웨덴에선 총리실을 방문해 총리가 주고받은 편지까지도 열람할 수 있다. 정부의 공식 보존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스웨덴은 일찍이 18세기 후반에 이미 정보공개법의 기초를 마련할 정도로 정보공개에 앞선 나라다. 미국에선 40년 전에 법제화됐다. 반면 영국에선 공개가 허용된 정보 이외의 모든 정보를 공개불가로 간주하고 있다. 영국 공직자 출신인 한 대학교수는 내게 “강의실에서 내 경험을 말하면서 매일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다”며 웃기도 했다.

▽남궁=노 대통령은 최근 행정개혁의 로드맵을 제시했다. 개혁이란 단숨에 해치우는 것인가, 계획을 밝힌 뒤 차근차근 실행해야 옳은 것인가.

▽피터스=작고 효율적인 정부의 모범사례로 꼽히는 뉴질랜드는 단칼에 개혁을 해치웠다. 하지만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는 첫 임기 4년반 동안 시동을 걸었고, 전체적으론 10년이 걸렸다. 내 생각에 개혁은 지속적이어야 한다. 뉴질랜드는 공공조직을 줄여서 효율이란 목표를 달성했지만, 보건 교육수준은 나빠진 것이 사실이다. 너무 멀리 나갔고 너무 빨랐다는 느낌이다. 두 방식 가운데 어떤 것이든 우월한 것은 없다. 참여형 정책이 단점이 있듯이 시장지향적 개혁은 효율은 얻지만 서비스 질이 떨어질 수 있다. 결국 고객의 문화와 특수한 요구를 염두에 두고 추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남궁=피터스 교수는 정책 결정에 문화요소를 많이 강조하고 있다. 에스키모 병원 이외에 다른 사례가 있나.

▽피터스=얼마 전 나는 덴마크에서 6개월가량 체류한 적이 있다. 그때 아이들이 다닌 학교가 행정당국이나 학교이사회가 아니라 학부모가 운영하고 있는 점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학부모는 학생과 더불어 교육서비스의 고객이다. 당시 이슬람계 학생에게 학교급식으로 나오는 돼지고기가 문제가 되자 이를 놓고 6개월 동안 진지한 대화를 했다. 덴마크 사람들의 참을성을 높게 평가하고 싶다. 결론은 점심식사 줄을 2개 만든다는 것이었다. 학부모들은 교육청이 개입했다면 분란만 일으켰을 것이라며 구성원들이 참여해 충분한 시간을 들여 내린 결정이 때로는 효율보다 중요하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나는 참여형 정책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그것이 만병통치약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 생각의 틀을 천천히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가이 피터스 교수(59) 약력▼

-미국 피츠버그대 정치학과 석좌교수

-미시간 주립대 박사(정부개혁, 관료제도 전공)

-‘미래의 국정관리’(1996·한국어로 번역됨) 등 저서 38권(공저 포함)

▼남궁근 교수(49) 약력▼

-서울산업대 IT 정책대학원장

-서울대 정치학과, 미국 피츠버그대 국제행정학 박사

-경제기획원 사무관(81~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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