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흥銀 파업 타결]노사협상에 또 정부개입…시장원칙 무시

입력 2003-06-22 18:41수정 2009-10-08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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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흥은행 파업사태는 정부와 신한금융지주회사측의 양보로 일단 해결됐지만 ‘법과 원칙에 의한 해결 미흡’과 ‘한국 금융산업에 대한 신뢰하락’의 후유증이 우려된다.

게다가 ‘대등통합’과 ‘고용보장 및 인위적 인원감축 자제’ 등 핵심현안을 2년 뒤로 미뤄 놓은 것도 ‘일단 현재의 위기를 넘기고 보자’는 식의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정부와 신한지주, 왜 양보했나=과거의 은행파업과 비교할 때 조흥은행의 이번 파업은 강도가 아주 높았다.

결과적으로 조흥은행 노조는 외환위기 이후 시작된 98년, 2000년 금융노조의 파업과 옛 국민-주택은행의 파업 때보다는 훨씬 많은 것을 얻어냈다.

과거에는 단순히 인력구조조정의 규모를 줄이고 노조간부에 대한 법적책임을 묻지 않는 선에서 마무리됐지만, 조흥은행 노조는 장기간의 고용보장과 임금인상뿐만 아니라 경영진 구성까지 보장받았다. 인수당하는 측의 노조가 거꾸로 ‘경영 참여권 확보’라는 희화(戱畵)적인 선례를 남긴 셈이다.

이는 ‘갈 데까지 가보자’는 벼랑 끝 전술이 먹혔기 때문이다. 은행 점포의 절반이 문을 닫고 10여일 만에 5조8000억원의 예금이 빠져 나간 데다 은행전산망이 마비될 상황으로 몰리자 정부와 신한지주가 크게 양보한 것. 물론 조흥은행 노조도 ‘매각 백지화’ 요구를 철회했지만 이는 처음부터 협상카드가 될 수 없는 항목이었다.

따라서 이번 파업사태를 통해 ‘버티면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는 사례가 남게 돼 앞으로 노사협상에서 노동계의 행동은 더욱 강경해질 전망이다.

▽조흥은행 노조가 얻은 수확=조흥은행 매각 협상이 타결됨에 따라 정부는 국민의 세금인 공적자금 회수율을 높일 수 있게 되었다. 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승인한 매각가격은 명목상 3조3700억원이며 사후손실을 최대한 보장해도 2조7200억원을 회수하게 된다. 4월말 현재 투입된 총공적자금 160조4000억원에서 회수율은 35.6%이고 이번에 공적자금(2조7200억) 회수로 회수규모는 59조8000억원, 회수율은 37.3%로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정부의 무원칙한 개입으로 조흥은행 매각이 늦어지면서 기업가치가 하락, 실질적으로는 작년 말 신한측이 제시했던 인수대금 2조9800억원보다도 2600억원 낮은 금액에 팔려 결국 이 액수만큼 국고(國庫) 손실을 입게 됐다.

은행노조가 경제 인프라(기반시설)인 전산망 가동중단을 선언한 것은 금융인으로서의 ‘윤리 실종’과 ‘사회적 책무 포기’라는 문제를 야기했다. 조흥은행은 개인이나 기업 고객들의 돈을 제때에 입·출금시키지 못함으로써 은행의 생명인 ‘신용’을 크게 상실했다.

조흥은행이 파업을 선언한 18일부터 20일까지 사흘 동안 무려 5조8741억원의 예수금이 빠져나간 것. 현금 6조원이 아니라 ‘6조원의 신뢰’가 날아갔다는 지적이다.

▽정부 역할은 ‘해결사’가 아니라 ‘법과 원칙’에 머물러야=정부는 조흥은행의 대주주로서 보유지분을 신한지주에 팔았다는 특수성 탓에 조흥은행 파업에 어느 정도 간여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김진표(金桭杓)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정부는 인수자인 신한지주와 조흥은행 노조가 대화를 통해 파업사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협상분위기를 조성했다”고 말했고, 이남순(李南淳) 한국노총 위원장은 “정부가 협상과정에서 비교적 공정한 중재자 역할을 했다”며 화답했다.

그러나 정부는 이미 조흥은행 지분을 사실상 팔았기 때문에 노사협상 과정에 참여할 권리가 없으며, 따라서 중재자로 참여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한 노사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개별 노사협상에 어떤 식으로든 참여하는 것은 시장의 자율적 해결능력을 줄이는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친(親)노조 성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현 정부 아래서 노조가 사용자측을 제쳐놓고 정부와의 직접 대화나 정부 중재로 해결하려 든다면 이에 따른 경제 사회적 비용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타결 과정▼

신한금융지주와 조흥은행 노조간의 협상타결은 전산망 가동중단과 공권력 투입을 앞두고 이뤄졌다.

정부는 협상 중재자로 나서 노조에는 매각 관철을, 신한지주에는 세부사안 양보를 각각 주문했다. 신한지주의 양보로 협상은 타결됐지만 보는 관점에 따라 합의문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이번 협상과정에서 드러난 사실 중 하나는 조흥 노조의 위상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앞으로 신한지주는 이런 조흥 노조의 견제를 극복하며 경영합리화를 꾀해야 할 것이고 따라서 양측이 ‘화학적 결합’을 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순탄치 않았던 협상 과정=공적자금관리위원회가 19일 조흥은행 매각안건을 통과시킨 뒤 오후 11시30분부터 시작된 신한지주와 조흥 노조의 1차 협상은 서로의 의견차를 확인하는 수준에서 끝났다.

이어 21일 오전 2시부터 시작된 2차 협상에서는 상당한 접근에 도달했으나 통합은행장을 조흥 출신으로 하는 점 등에 대한 이견으로 무위로 끝났다.

3차 협상이 21일 오후 4시로 잡혔지만 조흥 노조가 금융노조에 완벽한 대표권을 위임하는 문제를 놓고 입장을 정리하지 못해 협상은 계속 늦어졌고 일부에서는 협상결렬 소식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김진표(金振杓) 경제부총리는 이날 자정까지 협상이 마무리되지 않으면 공권력 투입이 불가피하다며 양측을 압박했다.

이에 따라 재개된 3차 협상은 22일 오전 3시경 타결을 보았고 조흥 노조원의 찬반투표를 거쳐 오전 9시경 최종 확정되면서 나흘간의 파업은 막을 내렸다.

▽신한 조흥의 득실계산=조흥 노조는 3년간 독립자회사 유지와 고용보장, 임금인상을 얻어냈다. 신한지주는 고용보장기간 2년과 함께 조흥은행을 독립자회사로 유지하되 전산 부문은 그전에라도 분사해 신한은행과 통합한다는 방침이었으나 이를 양보한 것.

또 신한지주의 상무급 임원비율과 통합추진위원회 위원비율을 양측이 50 대 50으로 정해 합병과정에서 조흥 직원들의 의견이 더 많이 반영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임금도 3년간 단계적으로 신한은행 수준으로 맞추고 통합은행의 명칭에 반드시 ‘조흥’이라는 브랜드를 사용하도록 해 조흥은행 직원들의 자존심을 지켰다.

조흥 노조는 통합은행장을 조흥은행에서 맡을 것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직원인사와 직급조정, 임원배정 등에서 신한 조흥 출신의 비율을 1 대 1로 한다는 대등통합의 원칙은 신한지주로서는 부담스러운 조항이다.

한편 조흥은행 경영진은 이번주에 일괄사표를 제출하고 신한지주는 재신임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홍찬선기자 hcs@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조흥은행 노조와 신한지주 합의 사항▼

1) 조흥은행은 지주회사 안에서 3년간 독립법인 유지

2) 독립법인 유지기간에 최대한 독립경영 보장

3) 독립법인 유지기간에 최고경영자(CEO)는 조흥은행 출신으로

4) 독립법인 유지기간에 조흥은행 명칭 그대로 사용

5) 통합여부는 2년이 지난 뒤 통합추진위원회에서 논의해 추진하되 1년 안에 마무리

6) 통추위는 조흥 신한 양측 동수로 구성. 위원장은 양측이 협의해 제3자로 결정

7) 조흥은행 직원의 고용은 3년간 보장, 인위적 감축은 하지 않음

8) 3년간 임금수준을 단계적으로 신한은행 수준으로 인상

9) 지주회사 내 조흥 출신 임원(상무급) 비율은 신한과 동수로

10) 통추위에 의한 통합원칙은 ①대등통합 ②직원 고용 보장, 인위적 감축 안함 ③존속법인은 조흥은행으로, 통합은행 명칭은 ‘조흥’을 사용하되 통추위에서 결정 ④ 직급조정 여부는 실태파악 후 통추위에서 논의 ⑤점포 폐쇄는 최대한 지양하고 필요시 통추위에서 논의

※조흥은행은 파업과 관련한 사법처리를 최소화하도록 노력하며 민·형사상 일체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

▼23일부터 정상업무▼

‘한번 발길을 돌린 고객들을 어떻게 다시 붙잡아야 하나.’

조흥은행 직원들은 파업을 통해 많은 것을 얻어냈지만 정작 중요한 고객의 신뢰는 잃어버렸다. 신뢰를 버리는 것은 쉽지만 그것을 다시 회복하는 것은 몇 배나 힘들다는 것이 은행업의 정설이다.

조흥은행은 23일부터 정상적인 영업을 시작한다.

22일 오전 8시50분 조흥은행 허흥진(許興辰) 노조위원장이 파업종료를 선언하자 홍석주(洪錫柱) 행장은 “서울 중앙전산센터 직원들은 오전 9시까지 전원 복귀하고 각 영업점 직원들은 일요일 오후 복귀해 월요일 정상영업 준비를 하라”고 지시했다.

조흥은행은 “전산인력 전원이 복귀해 밤늦게까지 시스템을 점검하면 월요일부터 은행업무가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밝혔다.

전산망 정비가 끝나면 인터넷뱅킹, 폰뱅킹, 현금자동화기기(CD, ATM) 등 개인고객의 거래 뿐 아니라 파업 기간에 중단된 외환 여신 등 모든 영업이 가능해진다.

대부분 영업점은 행원들이 월요일 아침에 정상 때보다 2시간 정도 일찍 출근해 밀린 업무를 처리하기로 했다. 4일간 계속된 농성에 지쳐 22일에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기로 결정한 것.

그러나 조흥은행이 파업과정에서 훼손된 영업력을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단기간에 5조8000억원이 빠져나가 한국은행의 긴급지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은행의 기본적인 거래안전성을 의심받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번에 빠져나간 고객들에게 다시 ‘안심하고 거래할 수 있는 은행’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조흥은행에서 빠져나간 돈은 국민 우리 하나 한미 신한은행 등으로 흘러들어가 이들 은행은 갑자기 예금이 늘어났다.

한편 조흥은행 직원 사이에서는 매각철회를 관철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감이 여전히 남아있다. 조합원 찬성률이 59%로 낮았던 것이 이를 입증한다.

88년에 입사한 한 노조원은 “나흘간의 파업이 끝나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불안하기도 하다”며 “3년간 고용을 보장받았지만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10시가 되자 거의 모든 노조원들이 빠져나갔고 은행 건물에는 청소부 20여명만 남았다. 파업이 끝난 쓸쓸한 뒷자리에는 항상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만 남는다.

조흥은행 매각 및 파업 일지
일시 내용
2002.7외국 금융기관, 조흥은행 지분 10% 매입 희망
8전윤철 부총리, 조흥은행 주식 매각 발표
9매각 주간사로 모건스탠리와 삼성증권 선정
10신한금융지주회사, 서버러스, 신세이은행 등 조흥은행 실사 시작
11조흥은행 소액주주 71명 매각반대 소송
12.6신한지주, 서버러스 컨소시엄 조흥은행 매각 투자 제안서 제출
12.9조흥은행 노조 총파업 결의
2003. 1.23신한지주 우선협상대상자로 최종 선정
4.16신한지주와 예금보험공사 매각협상 개시
6.10공적자금위원회, 신한지주에 매각 승인
6.18조흥은행 노조 총파업 돌입
6.19공자위, 조흥은행 신한지주 매각 본계약 하도록 승인
심야 1차 협상 합의 실패
6.21∼225시간 마라톤 심야협상에서 10개항 합의
6.22조흥은행 노조, 합의안 추인 총파업 철회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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