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께 보내는 이메일 편지

  • 입력 2003년 5월 9일 13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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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이 노무현 대통에게 띄우는 편지입니다.

- '담을 쌓는 정치'를 중단해 주십시오 -

어제 어버이날을 맞아 대통령께서 공무원과 일부 국민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고 해서 나도 전문을 읽어보았습니다. 인터넷 대통령답게 직접 민주주의의 한 통로로 인터넷을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선 눈에 띄었습니다.

그러나 어제 편지는 조금 심했습니다. 어버이날에 보낸 편지라면 의당 덕담이 들어가야 할텐데 빼곡이 농부에 빗댄 정치이야기만 적어놓았습니다. '사오정 오륙도'로 상징되는 실직가정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서 적어도 한마디쯤 위로하는 것이 '어른'의 도리가 아니었을까요.

최근 화물파업 때문에 국가기간시설이 마비되는 사태를 놓고 장관들에게 역정을 내셨다는데 국민들에게는 한마디 말씀 안한 것도 이상합니다.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을 못미더워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아셔야 합니다.

그런데 편지에는 오늘 언론에서 일제히 크게 다뤘듯이 '잡초론' 혹은 '잡초정치인제거'와 같은 부담스런 내용들로 가득했습니다.

나는 대통령의 개인적 소신을 이메일을 통해 국민에게 밝히는 것에 대해 일일이 시비 걸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대통령은 국민의 선택을 강요하고 훈육하는 것보다 국민의 마음을 헤아려서 함께 가고자 하는 그런 분, 직설적이고 거친 표현의 말보다는 넓고 깊은 언어로 국민이 한번쯤 생각케 하는 그런 분, TV토론 등으로 장관을 주눅들게 하는 것보다 장관이 소신있게 일하도록 뒤에서 챙겨주시는 그런 분, 씨도 뿌리기 전에 잡초부터 뽑으라고 목청을 높이기보다 天時를 중히 여기며 결실을 맺기까지 인내할 줄 아는 그런 분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대통령께서 신당창당 등 집안문제에 대해서는 함구하면서 국민을 상대로 직접 일을 '도모'하려는 것에 대해 우려의 소리가 많습니다. 이런 점에서 노대통령에게 몇 가지 묻습니다.

첫째, 대통령에 취임하신 지 70일 정도 됐는데 어찌 계속 국민들을 갈라세우려고만 합니까. 노동자와 사용자, 진보와 보수, 젊은층과 장년층, 그리고 이제는 국민과 정치인을 가르려고 합니다.

'입심' 좋은 대통령께서 한마디 던져놓기만 하면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각자 입장에서 서로 맞서고 싸우려 합니다. 지난번 국정원장 및 기조실장 임명문제도 색깔논쟁을 촉발시키려한 고도의 책략이라는 말도 있습니다. 내부 분열을 조장하는 '분열정치'는 당장 중지해주십시오.

둘째, 대통령은 국민을 계도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지요. 우리 국민은 작년 12월에 바로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그 당사자입니다. 스스로 그 선택이 옳았다고 한다면 대통령은 국민을 믿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국민은 누군가에게서 구체적 지침을 받아 움직이는 대통령의 지지자 집단이 아닙니다. 진실로 국민을 어버이로 생각한다면 이런 발언을 할 수 있겠습니까.

셋째, 농민에게 배울 것은 '잡초를 뽑는 행위'가 아니라 '순리'라는 그 가치를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씨 뿌리고 나서 땀 흘리며 일하고 가을까지 기다리는 인내심도 배워야 하고, 자연은 정직해서 일한 만큼 어김없이 보답해준다는 순리에의 믿음도 큰 교훈입니다. 그 많은 덕목 중 대통령이 어버이날에 강조한 잡초뽑는 농부의 교훈은 너무 의도적이고 정략적이지 않습니까.

넷째, 대통령은 주관성을 극복할 구조적 장치가 있습니까. 글에서 국민이라도 사적, 집단적 이익을 위해 드는 회초리에는 굴복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판단은 대통령이 한다는 얘기입니다. 가치 판단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여론 조사입니까. 대통령의 소신입니까.

나는 '담을 허무는 정치'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세대와 지역과 이념의 담을 허물어뜨리고 상생의 정치, 디지털 리더십을 주창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정치 철학은 자꾸 '담을 쌓는 정치'를 지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어제 보낸 아침 편지는 그런 의미에서 몹시 걱정스럽습니다.

아울러 네티즌들의 목소리도 하나 전해드리겠습니다. '아이러브스쿨'의 편지회원께 청와대에서 정치성 짙은 내용의 스팸메일성 글을 보내는 것은 회원의 친목 취지에 어긋나는 것으로 앞으로는 청와대 이메일 회원을 모집해서 발송하는 것이 더 당당할 것입니다.

2003. 5. 9

국회의원 김 형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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