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4·3사건'사과 1년유보…55주기 추모식에 총리참석 유족위로

  • 입력 2003년 3월 31일 18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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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제주 4·3사건에 대해 정부 차원에서 사과하겠다는 당초 방침을 1년간 미루고, 내년 추모식에서 정부 차원의 입장을 밝히기로 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사건의 중대성을 감안해 사실관계를 재확인하고 의미를 재평가할 시간이 필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노 대통령은 “4·3사건 진상규명위원회가 ‘6개월 이내에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면 (보고서를) 수정한다’는 것을 전제로 진상보고서를 채택했다”는 보고를 들은 뒤 이런 결정을 내렸다.

이에 앞서 고건(高建) 국무총리가 이끌어 온 진상규명위는 29일 “이 사건에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하는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하게 주민들이 희생됐다”는 보고서를 채택했다. 그동안 ‘양민 학살사건’이냐, ‘남로당의 무장봉기사건’이냐를 놓고 학계와 정치권에서 팽팽히 맞서온 쟁점에 대해 정부측이 양민학살에 무게를 둔 공식 의견을 채택한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3일 제주에서 열리는 55주기 희생자 추모식에는 고건 총리가 진상규명위원장 자격으로 참석해 희생자 유족에게 위로의 뜻을 표시하기로 결정했다.

청와대가 당초 검토했던 노 대통령의 사과 표명을 유보한 데에는 사건의 성격을 둘러싼 논쟁에 끼어들어 섣불리 입장을 표명할 경우 뒤따를 부담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의 보고서 채택과 관련해 실제 정치권은 31일 미묘한 시각차를 드러냈다. 민주당은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의 물꼬”라고 긍정적 평가를 내렸지만, 한나라당은 “보고서의 의미는 평가한다”면서도 “보완을 통해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다만 제주지역 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제주도민들이 55년 동안 바라던 보고서 채택을 환영한다“며 한목소리로 반겼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의 ‘사과 연기’ 결정 직후 조해진(曺海珍) 부대변인이 작성한 논평 초안을 ‘일정 부분 평가한다’고 발빠르게 수정했다. 논평 초안은 “정부가 (시각이 엇갈리는 4·3사건에 대해) 굳이 사과하려면 이 사건이 인민공화국을 수립하려는 좌익공산집단의 무장반란이라는 본질을 천명하고 사과 대상은 죄 없이 희생당한 사람들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돼 있었다.

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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