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연료봉 이동 의도와 파장

  • 입력 2003년 2월 2일 17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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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94년 제네바 합의에 따라 영변 핵시설의 수조에 보관해 온 폐연료봉을 다른 곳으로 옮긴 것으로 추정되는 정황이 미 정보위성에 포착됨에 따라 북한이 과연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 지, 그 의도가 무엇인지에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은 결국 핵무기 개발을 위해 국제사회의 거듭된 경고에도 불구하고 넘어서는 안될 '한계선(red line)'을 넘기 시작한 것일까. 아니면 미국을 핵문제 해결을 위한 양자 회담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또 한번 벼랑끝 전술의 수위를 높여 대미 압박을 강화하려는 것일까. 미국 내에서도 추정과 논란이 분분할 뿐 아무도 분명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 등 미 언론이 전한 바에 따르면 분명한 것은 북한 트럭이 폐연료봉 저장 수조가 있는 건물에 드나들었다는 것 뿐이다. 문제의 트럭에 과연 폐연료봉이 실렸는지 여부는 추측만 난무할 뿐 확실한 증거는 없다. 따라서 엄밀히 말해 현 단계에선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위한 플루토늄 추출을 위해 폐연료봉 재처리 작업을 시작했다고는 단언하기 힘들다.

그러나 미 정보당국의 추측대로 북한이 진짜로 무모하게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라면 사태는 대단히 심각해질 수 있다.

만일 모든 외교적 설득이 실패하고, 북한이 핵무기 보유 단계에 이른다면 미국은 군사적 선택을 다시 고려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최첨단 정밀유도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으로선 영변 핵시설을 초토화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현실적으론 이로 인한 전면전 발발과 한국이 입게 될 막대한 피해에 대한 우려가 크지만 94년 북핵 위기 때도 미국이 영변 폭격을 검토했던 사실을 생각하면 군사적 대응을 사용불가능한 카드로만 치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는 북한도 잘알고 있다. 따라서 미국과의 전쟁을 두려워하며 북-미 불가침협정 체결을 줄기차게 주장하는 북한은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는 것을 피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북한이 불가침협정만 체결되면 핵개발을 포기할 수 있다고 시종 주장하는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북한은 이번에도 영변 핵시설에 트럭을 출입시키면서도 이를 감추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이 위성으로 샅샅이 내려다 보고 있는 데도 그랬다.

미 전략국제문제센터(CSIS)의 커트 캠벨 연구원은 "북한이 백주에 이같은 행동을 한 것은 미국을 상대로 한 벼랑끝 전술의 일환인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이 미국이 봐주기를 기대하며 의도적으로 핵위협의 강도를 의도적으로 높인 것인지, 아니면 '해 볼테면 해보자'는 식으로 정말 핵개발에 나선 것인지는 사태의 진전을 좀더 지켜봐야 명확해질 것 같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 eligi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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