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 2240억 北지원 드러나]정상회담 대가의혹… 정국 ‘核폭풍’

  • 입력 2003년 1월 30일 01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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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6·15 남북정상회담 직전 거액의 대북 송금이 이뤄졌다는 사실이 확인됨에 따라 국내 정치는 물론 앞으로의 남북관계에도 엄청난 파장이 일 전망이다.

이 문제가 정권의 도덕성과 직결되는 데다 남북관계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메가톤급 폭발력을 갖고 있어 상황 전개에 따라서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대치정국을 몰고 올 가능성도 있다.

특히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 북한 국방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남북간의 밀실 거래가 이뤄진 것으로 드러난 만큼 현 정부의 도덕성에 대해 의문과 함께 대북 햇볕정책에 대한 궤도 수정 요구도 거세질 전망이다.

▽정치권 파장=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제기한 4000억원 대북 지원 의혹과 관련해 현정부는 그동안 “청와대는 모르는 일”이라며 부인으로 일관해 왔다.

그러나 이번에 확인된 2240억원의 대북 송금은 비록 현대가 주도했다고는 하지만 국정원이 편의를 제공하는 등 적극 개입한 것으로 드러난 만큼 김 대통령이 이를 사전에 알고 있었는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대두되고 있다.

대북 지원 과정의 핵심으로 박지원(朴智元) 대통령비서실장을 지목해 온 한나라당의 주장과 이번에 확인된 국정원의 개입으로 미뤄 볼 때 김 대통령이 이를 사전에 인지했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15일 “만약 통치권 차원의 행위였다면 덮어야 한다”고 한 문희상(文喜相) 대통령비서실장 내정자의 발언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당시 문 내정자는 “사실을 알지 못하며, 아닐 것이라는 전제 하에 말한 가정법적 발언에 불과했다”고 해명했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 차기 정권측에서도 이와 관련해 어느 정도 ‘진실’을 알고 있었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현 정권은 물론 현 정권의 대북정책을 계승하겠다고 밝힌 차기 정권에 대해서도 이와 관련한 대대적인 공세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은?=임동원(林東源) 대통령 특사의 방북이 성과 없이 끝나고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연두교서에서 여전히 북한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이는 상황에서 그동안 설로만 떠돌던 대북 송금 사실까지 확인됨에 따라 남북관계는 상당 기간 정체 또는 후퇴가 불가피해졌다.

특히 새로 출범할 노무현(盧武鉉) 정부는 이 문제의 진상과 관련자의 책임 소재가 분명하게 드러나기 전까지는 새로운 대북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는 데 상당한 부담을 안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노 당선자는 ‘국민과 함께하는 외교, 야당에 설명하는 외교’를 강조해 온 만큼 그의 약속대로 초당적 대북정책을 펴기 위해선 이 문제가 확실히 매듭지어져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한미 관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국 공화당 행정부는 금강산 관광 대가 지불 등 그동안 한국정부의 대북 현금 지원에 부정적인 견해를 보여온 만큼 이번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란될 경우 한미간의 대북 공조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 입장에서는 북한 핵 위기와 관련해 미국을 상대로 적극적 대응과 조율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문제를 놓고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할 경우 노 당선자는 북한 핵 위기와 함께 ‘남-남 갈등’ 치유라는 이중고에 시달릴 가능성이 있다.▽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난 사항=대북 지원 의혹을 받고 있는 산업은행 대출금 4000억원은 현대상선이 2000년 6월 7일 수표 65장으로 대출받았다. 현대상선은 그해 9월과 10월 두 달에 걸쳐 1700억원을, 지난해 10∼12월 2000억원을 각각 상환한 데 이어 올해 1월 중순 나머지 300억원을 갚았다. 감사원은 지난해 10월 중순부터 현대상선에 대한 산업은행의 대출이 적정했는지와 사용처를 규명하기 위해 감사를 실시해 왔다. 그 결과 최초의 수표 65장 가운데 39장 1760억원은 운용자금 등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나 나머지 수표 26장 2240억원은 구체적인 사용처를 확인할 수 없었다고 감사원측은 밝혔다. 그러나 이는 수표 이서 내용과 산업은행이 보유한 현대상선 관련 계좌의 거래내용 등을 근거로 추정한 수치에 불과할 뿐이다. 감사원 관계자는 “2240억원은 수표 이서 내용이 중간에 끊기거나 도저히 확인할 수 없는 이름이 적혀 있어 통상적인 절차로는 수표추적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전했다. 감사원은 그동안 비협조로 일관해 온 현대상선이 이달 28일 뒤늦게 4000억원 사용처 관련자료를 제출함에 따라 자료를 검토하는 등 한시적으로 감사를 재개해 내달 초 감사위원회를 열고 감사를 종결한다는 계획이다. 감사원측은 제출된 자료가 부실해 계좌추적 없는 감사만으로는 진실 규명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검찰에 고발한다는 방침도 세워 놓고 있다.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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