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동원특사 '빈 손 귀환']北에 홀대당하고 체면만 구긴 꼴

  • 입력 2003년 1월 29일 18시 58분


코멘트
임동원(林東源)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는 27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특사로 평양으로 출발할 때 “북측 지도자에게 김 대통령의 친서를 전하고 북측 지도자의 의견을 들어오는 게 기본임무”라면서 “해법을 모색할 수 있다면 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 특보는 해법을 모색하지도 못했을 뿐 아니라, ‘북측 지도자’인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을 만나지도 못하고 29일 서울로 돌아왔다. 스스로 밝힌 최소한의 목표 달성에도 실패한 셈이다.

북한으로서는 남측 대통령특사의 방북을 수용하고도 김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을 허용하지 않는 외교적 결례를 범했다. 김 국방위원장은 지난해 4월 임 특보의 특사 방북시에도 현지지도 중이었으나 면담 하루 전 평양으로 돌아와 임 특사를 만났다. 또 2000년 8월에는 2차 장관급회담에 참석한 박재규(朴在圭) 당시 남측 수석대표를 자신이 머물고 있던 동해안 지역으로 불러 면담한 적도 있어 지방에 내려가 현지지도를 하고 있기 때문에 만날 수 없다는 북측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북한측은 김 국방위원장이 전화로 구두메시지를 알려왔다면서도 임 특보와 직접 통화하도록 연결해 주지도 않았다.

양측이 사전에 충분한 조율을 거쳤는지도 궁금증을 낳게 하고 있다. 정부측은 “누구를 만날지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히기는 했으나 김 국방위원장과의 직접 면담을 북측에 강력히 희망했고, 확답은 못 받았지만 전례에 비춰 당연히 만날 것으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면담 불발의 가장 큰 이유는 평양에 머물던 임 특사일행과 북측간의 핵문제 해법에 대한 시각차가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임 특사는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김용순(金容淳) 노동당 중앙위 비서 등과 만나 북한 핵문제에 대한 남측과 국제사회의 우려를 전달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선언 철회 등을 촉구했으나 북측은 북-미간 직접 대화와 불가침조약 체결이라는 기본 입장을 되풀이했다.

또한 북한측이 김 대통령의 친서에 담긴 ‘당근’, 즉 북한이 핵문제 해결에 협조한다면 한국 미국 일본 등이 북한에 제공할 정치 경제적 혜택과 핵 포기를 했을 때의 손해에 대한 저울질을 끝내지 못했고, 김 국방위원장이 직접 임 특사를 만날 경우 어쩔 수 없이 핵문제에 대한 언급을 할 수밖에 없다는 부담감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내달로 임기가 끝나는 김대중 정부보다는 새 정부를 ‘파트너’로 하겠다는 전략적 판단에서 임 특사의 면담 요청을 거부한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노 당선자측 관계자는 “북한 입장에서는 임 특사에게 선물을 주면 노 당선자의 신정부에 줄 것이 없어진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대북특사 일행 평양 체류 일지
일시활동
27일 오전 11시53분평양 순안공항 도착임동옥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 영접
낮 12시55분백화원초대소 도착김용순 노동당 중앙위 비서 영접
오후 1시50분김용순 비서 주최 환영오찬(백화원초대소)
오후 4시임동원-김용순 1차회담
오후 8시경제시찰단 주최 환영만찬(대동강영빈관)
28일오전 11시20분임동원-김영남 상임위원장면담 (만수대의사당)
오후임동원-김용순 2차회담임성준-임동옥 접촉
29일오전 11시임 특사 일행 평양 순안공항 출발

▼林특사 일문일답▼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특사인 임동원(林東源) 대통령통일외교안보특보의 면담 신청을 사실상 ‘거절’했다는 것은 북한도 현 정부 최고의 ‘대북 해결사’ 역할을 해온 임 특보의 퇴장을 기정사실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북한 핵 문제가 워낙 복잡한 사안이긴 하지만, 김 위원장은 김대중 정권 말기의 임 특보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를 냉정하게 계산한 셈이다.

임 특보는 국가정보원장 재직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정상회담 직전에는 비밀리에 방북해 6·15 공동선언을 사전 조율하는 등 대북정책을 총지휘했다. 대북 문제에 관한 한 모든 사안은 임 특보의 손을 거쳐야만 정책으로 구체화될 정도였고, 그에게는 항상 ‘햇볕정책의 전도사’라는 꼬리표가 따라 붙었다.

북한은 그동안에도 남측 고위인사의 방북시 ‘현지지도’를 이유로 김 위원장과의 면담을 거절해 왔지만, 남측이 고집할 경우 못 이기는 척하고 면담을 허용했는데 이번엔 달랐다.

임 특보는 29일 귀경 직후 기자회견에서 “북측이 우리측 설명과 권고에 대해 심사숙고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별로 힘이 실리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김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이 불발됐다. 지방 현지활동 때문이라는 해명을 납득하는가.

“그쪽 사정에 의해 만나지 못한 것을 아쉽게 생각한다. 현지지도 중인 김 위원장이 김용순(金容淳) 비서에게 전화통화로 구두메시지를 보내왔다. 김 위원장의 입장을 어느 정도 가늠해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북한의 농축 우라늄 계획에 대해 언급했나.

“농축 우라늄 문제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고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기 때문에 해명이 필요하고 어떻게 하겠다는 것을 밝히는 게 중요하다고 얘기했다. 북측은 그런 것은 없다고 밝혔다.”

―북한 핵 문제가 어떻게 전개될 것으로 보는가.

“핵 문제는 해결에 장기간이 소요되고 100% 검증이 안되며 (핵무기) 개발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때 해결될 수 있다.”

―한국이 핵문제를 풀어가는 데 있어 유용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는가.

“핵 문제는 북-미간 문제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한 당사자로서 관심을 갖거나 역할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도 거기에 대해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한편 함께 방북했던 대통령직인수위의 이종석(李鍾奭) 외교통일안보분과 위원은 이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당선자가 김 위원장에게 보내는 인사말과 앞으로 대북정책의 방향을 김용순 비서를 통해 전달했다”고 말했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