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도청, 김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 입력 2002년 11월 29일 18시 30분


단 두 사람이 나눈 얘기를 바로 제3자가 안다면 엿들은 게 분명하고, 전화통화를 했는데 그랬다면 도청한 게 틀림없다. 다른 사람의 속생각을 훔치는 것과 같은 도청은 재물을 훔치는 절도보다 더 흉측한 범죄다. 더욱 오싹한 일은 누군가 엿들은 건 확실한데 그게 누군지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경우다.

지금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나라당이 공개한 ‘국가정보원의 불법도청사례’는 그동안 도청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져 왔음을 보여주고 있으나, 국정원은 그런 일이 없다며 펄쩍 뛰고 있으니 정말 혼란스럽다. 오죽하면 박관용 국회의장이 “나도 도청당했다”며 “이번에 도청문제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으면 국회에서 관련법을 고치겠다”고 했겠는가.

도청 의혹의 진위를 가리는 게 썩 어려운 일은 아닌 듯 싶다.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 내밀한 정보를 조직적으로 수집할 수 있는 고도의 기술과 노하우를 가진 집단은 제한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국정원이나 민주당은 사설 정보팀이나 도청팀을 지목하지만, 사설팀이 그만한 역량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따라서 정부가 의지만 있다면 신속하게 논란을 종식시킬 수 있다.

김대중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 첫째, 한나라당 주장이 사실이라면 도청은 물론 정치사찰과 언론 감시가 이뤄져왔다는 증거가 되므로 국기에 관한 문제가 된다. 둘째, 거대 야당과 국가최고정보기관이 대립하는 사안인 만큼 통치권 차원의 조치가 필요하다. 셋째,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는데 차기 정권으로 진상 규명을 미루는 것은 책임 회피다. 넷째, 국정원은 대통령직속기관이다.

정부가 단순히 불법도청을 하지 않는다는 말만으로 국민을 설득할 수는 없다. 대선을 앞두고 그런 자세를 취하는 것은 정부와 여당 모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나라당도 이 문제를 정략적으로 다루기보다 의혹 해소와 진상규명 협조 차원에서 밝힐 것은 모두 밝히는 것이 옳다. 검찰 역시 대선철 정치판 돌아가는 것만 살피지 말고 당장 수사 채비를 갖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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