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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1월 14일 18시 1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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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능력시험 복수 응시 기회를 제공해 학생의 선택 기회를 확대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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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행정학과 이승종(李勝鍾) 교수〓
대입 수능시험을 연 2회 이상 치르겠다는 공약은 수십만 수험생의 심리적 부담을 덜어주고 한 번의 시험을 그르쳐 재수를 선택해야 하는 학생들에겐 기쁜 소식이다. 수능을 2번 시행한다면 학교 교육 정상화를 위해 3학년 2학기에 실시해야 하고, 출제 및 채점에 2개월이 소요되는 만큼 9월과 11월에 실시하는 게 현실적이다.
추가 수능실시에 따라 비용이 2배로 늘겠지만 수조원대의 교육예산 및 수십만 수험생과 가족이 입을 혜택을 고려하면 문제되지 않는다.
한나라당은 2차례 수능 결과 가운데 좋은 성적을 대학에 제출하는 방안을 고려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난이도를 제대로 조정하지 않으면 두 번 시험을 치르는 의미가 반감된다. 따라서 복수 실시 취지에 맞춰 표준점수화 작업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 표준점수화는 쉽게 출제됐을 때 360점(400점 만점)을 어렵게 출제됐을 때의 340점과 같은 점수로 간주하는 것이다. 1, 2차 수능시험이 난이도에서 차이날 경우 ‘쉽게 출제된 시험’을 더 잘 치른 학생이 ‘어렵게 출제된 시험’을 잘 치른 학생보다 유리하기 때문이다.
▶“만 5세 어린이에 대한 무상교육을 실시하고 부모가 교육기관을 선택하게 하는 ‘교육비 지원 쿠폰제’를 실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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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 행정학과 김종순(金種淳) 교수〓
‘유치원 등록 쿠폰’ 지급 구상은 학부모가 유치원 유아원 미술학원 등에 만 5세 자녀를 보낼 때 정부가 매월 일정액의 쿠폰을 지급한다는 정책이다. 이는 현재 농어촌지역 어린이 13만4000명(전체의 20%)에게 월 1만7500원(공립) 또는 11만5000원(사립)을 지급하는 방식을 확대하는 셈이다.
이 제도가 실시되면 만 5세 어린이 68만명 중 현재 저소득 및 부모의 무관심으로 유치원을 못 다니는 어린이 10만명도 조기교육을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쿠폰 지급이 유치원의 고급화를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월 15만원짜리 유치원을 보내던 부모가 25만원짜리로 옮겨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68만명에게 방학을 제외한 연 10개월간 매월 10만원씩 지급할 때 68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이 제도가 성공하려면 예산 확보와 유치원 고급화를 효과적으로 제어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교육예산 GDP 대비 7% 증액’을 공약했지만 추가 예산 확보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초중고교 및 재수생 자녀의 학원 수강료에 대해서도 교육비 소득공제 혜택을 부여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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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대 행정학과 김종순(金種淳) 교수〓
서민층의 사교육비 부담을 줄여 주겠다는 취지에서 마련된 이 공약은 학부모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한나라당은 ‘교육비 소득공제는 연간 소득 1000만원 이하는 9%, 1000만∼4000만원은 18%, 4000만∼8000만원은 20% 수준 적용’을 약속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저소득층의 재정부담 경감 효과보다는 중산층의 과외비 지출을 늘리는 부작용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소득이 많을수록 교육비 소득 공제율이 커지기 때문에 중산층 학부모들은 세금이 줄어든 만큼 자녀들을 더 많은 학원에 보내려 할 것이다. 반면 저소득층 자녀들은 학원 수강이 더 어려워지고, 특히 근로소득세를 전혀 내지 못하는 학부모에게는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 학원수강료 소득공제는 학원의 팽창을 부추기고 사교육 부문에 추가 투자하는 결과를 만들어 국가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게 된다. 그뿐만 아니라 학원과외의 양성화에 따른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부실화, 입시 위주의 암기식 교육 보편화 등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발병이 잦은 위암 대장암 간암 유방암 자궁경부암 폐암에 대해 전국민 건강검진제도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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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의대 윤태영(尹太永) 교수〓
이 공약은 정부가 올해 초 “만 40세 이상은 2005년부터 2년에 한번씩 5대 암 검진을 받도록 하겠다”고 천명한 정책을 기초로 하고 있다. 폐암을 추가하고 단계적으로 시행하다 2007년에 전면 실시한다는 것이 다른 점이다.
올해 암 검진은 ‘선택사항’이다. 건강보험대상자 가운데 소득이 낮은 20%는 위암 유방암을 무료로 검진받지만, 대부분은 자기 부담으로 검사해야 한다. 올해 암 검진자는 실제 비용의 절반인 약 5만원을 개인이 부담했다.
“개인부담 비율을 4분의 1로 줄인다”는 한나라당 방안대로라면 2007년 이후 2년에 한 번씩 정기 암 검진을 받을 때 개인부담은 2만∼3만원으로 떨어진다. 반면 정부 부담은 2002년 80억원에서 1000억원으로 늘어난다. 부실해진 건강보험 재정을 고려할 때 예산 마련이 간단치 않을 것으로 본다.
또 폐암을 추가한 것은 실익이 없다는 지적이 있다. 의사들이 합의한 진단방법조차 없는 폐암을 1000만명이 넘는 대상자가 2년마다 검진받는 것은 과잉 진료가 될 수 있다.
▶“부동산에 관한 거래세(취득세 등록세 등) 부담을 완화하고 보유세인 종합토지세를 올려 부동산세제를 개선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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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 행정학과 김헌민(金憲珉) 교수〓
거래세를 낮추고 보유세를 높이겠다는 공약은 조세형평 차원에서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를 통해 부동산시장 안정과 투기가 억제될지는 의문이다. 또 보유세 인상에 따른 조세저항도 무시할 수 없어 공약의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현재는 거래세와 보유세간 조세형평성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2000년 총 거래세는 약 7조 9200억원으로 전체 지방세 중 가장 큰 비중인 37%를 차지한다. 반면 보유세는 약 2조1200억원으로 전체 지방세의 11%에 불과하다. 보유세 과세표준액이 시장가격에 비해 낮게 산정돼 있어 생기는 조세불균형이다.
보유세를 높이면 전체가구의 약 45%인 세입자 서민들의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 집 주인이 증가된 세금부담을 벌충하기 위해 전세와 월세를 올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 1가구 1주택 실수요자의 주거비용 부담도 증가한다.
거래세를 내리면 부동산시장의 공급이 늘어날 것이라는 한나라당측 설명은 잘못된 생각이다. 거래세는 사는 사람이 내는 것이지 파는 사람이 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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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뒤 안맞는 공약사례들▼
한나라당이 12일 확정한 ‘200대 대선 공약’ 중엔 참신한 내용도 있지만 앞뒤가 맞지 않거나 당내에서조차 실현 가능성에 적잖은 의문이 제기되는 사례가 눈에 띈다.
‘깨끗한 정치’를 실현하기 위한 선거공영제 확대 분야가 대표적이다. 한나라당은 선거공영제 전면 확대를 내걸면서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선관위에 신고한 예금계좌를 통해서만 정치자금의 수입 지출이 가능하도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국회 정치개혁특위 논의 과정에서 정치자금 입출금시 단일 계좌 사용 등을 핵심으로 한 정치자금법 개정안에 대해 “야당에 대한 정치 탄압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을 내세워 반대했다. 선거공영제 전면 확대를 위한 TV토론 등 미디어 선거 강화 등에 대해서도 한나라당은 반대 방침을 분명히 했다.
이 같은 정치개혁 법안의 국회 처리가 무산된 상태에서 한나라당이 집권 공약으로 이를 제시한 것은 논리적 모순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지역구 공천 여성 30%’ 공약도 논란거리다. 여성들의 정치 참여폭을 넓힌다는 명분은 이해가 되지만 과거 시행 과정에서 별 소득이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6·13지방선거 당시 한나라당은 ‘지역구 공천 여성 30%제’를 도입해 시행했으나 ‘입발림’에 그쳤다. 당시 한나라당에선 9명의 지역구 여성 공천 신청자 중 2명만 가까스로 공천을 받았다. 기초단체장은 여성 공천 비율이 전체(232명)의 0.9%에 불과했다. 민주당의 지역구 공천 후보도 겨우 2명에 불과했다.
한나라당은 내부 검토과정에서 ‘여성 공천 할당제’의 실효성에 대한 논란을 벌였으나 여성 우대의 상징적 공약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우세해 채택했다는 후문이다. 당의 한 관계자는 “지역구 공천의 대의원 경선제가 대세로 굳어지는 시점에서 ‘지역구 공천 여성 30%’ 공약의 실효성은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정부조직 개편에 대한 한나라당의 방침도 적잖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한나라당은 김대중(金大中) 정권의 정부 조직 확대를 비판하며 ‘작은 정부’ 원칙을 표방해 왔으나 이번 정책공약에서 이 같은 취지가 무색하게 됐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우선 국정홍보처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면서도 다른 기구의 확대 개편을 약속하는 등 ‘앞뒤가 맞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정부 조직이 확대되는 대표적인 사례는 소방청과 동식물방역청 신설 공약이다. 한나라당은 또 정부의 대외통상 협상기구와 체제 개편을 약속한 만큼 상황 여하에 따라 별도의 ‘무역대표부’가 신설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