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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0월 31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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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는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열린 북-일 수교회담이 피랍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성과 없이 끝나자 피랍 귀국자 문제를 처리하기 위해 내각 관방에 설치했던 임시 대책기구를 지난달 31일 공식기구로 바꾸고 장기전 태세에 들어갔다.
또 이들을 북한에 돌려보내지 않는다는 입장을 재확인한다는 차원에서 관련 비용도 예산에 정식 반영하기로 했다.북한에 가족을 남겨둔 채 지난달 15일 일식 귀국한 피랍 일본인 5명은 수교회담 ‘결렬’로 한동안 ‘제2의 생이별’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차기 수교회담이 11월 말경 열려 타협이 이뤄진다 해도 한 달 이상을 남편 혹은 자녀들과 떨어져 지낼 수밖에 없게 됐다.
일본 정부는 이번 회담에서 북한 잔류 가족들의 일본행을 성사시키려 했으나 차질이 생기자 당황하고 있다. 국내 여론을 등에 업고 일시 귀국한 피랍자들을 일단 일본에 머무르게 한 후 북한을 압박하면 북한에 있는 가족들도 쉽게 데려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판단 착오였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북한측은 즉각 “피랍자들을 일본에 1∼2주 체류케 한 다음 돌려보내기로 한 약속을 지켜야 하며 북한 가족들의 일본행 여부는 그 후 각 가정이 자유롭게 결정할 일”이라며 강력히 반발하고 나섰다.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피랍자들로 하여금 북한 가족들과 ‘제2의 생이별’을 하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비난을 우려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피랍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가족과 만나고 싶다”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는데 이는 북한에 대해선 가족들을 빨리 일본으로 보내라는 뜻이기도 하고 일본 정부에는 “우리들의 평양 귀환을 굳이 막으려 하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피랍자 하스이케 가오루(蓮池薰·45)는 30일 북-일 수교회담 결렬 소식에 대한 논평을 일절 거부하고 입을 굳게 다물었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그의 침묵은 일본과 북한 중 어느 한 쪽을 지지하고 어느 한 쪽을 버릴 수도 없는 피랍자의 고통스러운 심정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