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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0월 27일 18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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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3국 정상은 27일 멕시코 로스카보스 회담에서 한반도 핵 위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하면서도 북한이 제안한 ‘북-미 불가침 조약’에 대해서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북한의 핵개발 프로그램이 공개(17일)된 이후 계속되고 있는 ‘정면 대결도, 극적인 방향 전환도 아닌 상태’를 용인한 셈이다. 이 때문에 북한 핵문제를 둘러싼 북한과 한미일 3국의 줄다리기는 장기화할 수밖에 없고 한국의 새 정부 출범 및 미국의 이라크 문제 해결 이후에나 가닥이 잡힐 것이라는 관측이 무성하다.》
▼한미일 다음 조치는▼
3국 정상회담 공동발표문은 미국이 그동안 거론해오던 제네바기본합의 파기 및 이에 따른 경수로사업의 지속여부 등 ‘난제(難題)’들을 비켜갔다. 정상회담 이후의 과제로 넘긴 셈이다.
한미일 3국은 우선 11월 초 일본 도쿄(東京)에서 열리는 차관보급 협의 채널인 대북정책감독그룹(TCOG) 회의에서 실질적인 대응 방안의 윤곽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어 11월 10∼12일 서울에서 열리는 제2차 민주주의공동체(CD) 각료회의에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과 가와구치 요리코(川口順子) 일본 외상이 참석키로 돼 있어 이때 3국의 공동 대응 방안이 좀 더 구체화할 전망이다.
문제는 미국의 대응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3국 정상회담에서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고 재확인했지만 미 고위당국자들은 북한이 핵개발 계획을 폐기하지 않을 경우 협상에 나설 의사가 없다는 점도 분명하게 밝혔다.
따라서 북한이 핵개발 포기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보이지 않는다면 한미일 3국은 도쿄 TCOG 회의에서 제네바기본합의의 유지 여부 및 대북 경제제재, 경수로사업의 일시적 중단 문제를 논의할 가능성이 높다. 부시 행정부와 미 의회 내에서 나오는 제네바기본합의 폐기 여론이 만만치 않기 때문.
임성준(任晟準)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제네바기본합의에 관해서는 앞으로 3국간 공조를 통해 협의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북한의 태도 변화없이 제네바기본합의를 무작정 유지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을 시사한 셈이다.
3국이 제네바기본합의의 사문화(死文化)를 공식화하면 대북 압박은 구체적 행동 단계에 들어선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북한의 대응 카드는▼
한미일 3국 정상이 거듭 ‘선(先) 핵 개발 포기’를 재확인함으로써 북한이 앞으로 택할 수 있는 카드는 그리 많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우선 핵 개발 이외에는 이렇다 할 협상카드가 없는 북한이 대화 테이블에 앉기도 전에 스스로 ‘핵 포기’를 선언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북한은 25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서 “벌거벗고 무엇을 가지고 대한다는 말인가”라며 굴복은 곧 죽음이라고까지 강조했다.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이 결단을 내려도 북한 군부 등 강경 세력의 내부적 반발이 예상된다.
현재로서는 가능성이 낮지만 미국이 요구하는 핵 개발 프로그램 자진 포기 대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을 전격 수용, 미국 및 국제사회의 압박을 누그러뜨리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핵사찰은 최소한 2, 3년이 걸리는 장기 작업으로 핵 사찰 수용이 반드시 핵 개발 포기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북한으로서는 ‘성의’를 보이는 대가로 경제난 해결에 절대 필요한 국제사회의 지원, 더 나아가 미국의 경제제재 해제 등의 ‘당근’을 기대해 볼 수 있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선택은 ‘북-미 불가침조약 체결과 핵문제 일괄타결’이라는 외무성 담화의 기조를 유지하면서 ‘시간 벌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미국의 선제 핵공격 가능성 때문에 핵 개발이 불가피했다는 점을 강조, 국제사회의 동정여론을 지렛대로 이용해 가능하다면 ‘조지 W 부시 행정부 이후’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제성호(諸成鎬) 중앙대 교수는 “미국의 일방주의를 비난하고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동정을 유도하면서 한동안 미국과 힘 겨루기를 계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3국 정상 대화록▼
한미일 3국은 27일 새벽(한국시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의 3국 정상회담이 끝난 뒤 공동발표문 외의 구체적 대화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대신 3국이 회담 내용에 대해 각각 별도로 브리핑했다.
다음은 우리 정부가 발표한 내용과 외신보도, 그리고 아베 신조(安倍晉三) 일본 관방 부장관의 브리핑을 토대로 재구성한 3국 정상의 발언록이다.(☆는 아베 부장관의 브리핑)
▽고이즈미 총리〓북-일 국교정상화는 북한과의 양자관계를 촉진시킬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도 기여해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북-일 평양선언의 완전한 준수, 특히 핵 문제 및 납치 문제를 포함해 안보 문제에 관한 부분의 완전한 이행이 없이는 북-일 국교정상화 회담이 완료될 수 없다.
▽김 대통령〓최근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북측에 핵 문제를 신속하고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 바 있다.(☆제네바기본합의가 중대한 손상을 입은 것은 사실이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주의 깊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 제네바기본합의에 의해 북한의 플루토늄 개발을 중단시켜 온 것이 사실이며 새로운 위기가 조성돼서는 안 된다.)
▽부시 대통령〓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2월 한국에서의 발언을 재확인한다. 또 북-미관계를 변화시키기 위한 과감한 접근방법을 취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는 사실도 재확인한다.
▽고이즈미 총리〓(☆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북-일 국교정상화 및 남북장관급회담 등의 채널을 효율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북한 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 북한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김 대통령〓3국이 철저한 공조를 통해 북한이 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폐기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통해 이번의 핵 문제가 한반도에 위기가 아닌 냉전 종식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3국 정상이 서로 진정한 믿음을 갖고 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 노력을 기울여 나가야 한다.
▽부시 대통령〓3국이 힘을 모아 대처해 나가면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한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다른 문제들을 해결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또 이렇게 되면 전 세계에 3국 정상의 지도력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제네바기본합의와 관련해 이것이 매우 미묘한 문제임을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 수습하지 못할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
로스카보스(멕시코)〓윤승모기자
ysm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