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北 담화문 논리 허점”

  • 입력 2002년 10월 25일 22시 51분


북한 외무성은 25일 A4용지 5장에 달하는 장문의 대변인 담화문에서 불가침조약 체결을 미국에 제의하면서 사태 초래의 책임이 전적으로 미국에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북한측의 주장에는 논리적 허점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북한은 1994년 채택된 조-미 기본합의문(제네바 기본합의)의 각 조항을 일일이 들어가며 미국을 비난한 뒤 “미국이 준수한 것은 단 하나도 없다”고 결론 내렸다. 즉 △2003년까지 경수로발전소를 제공키로 했으나 기초구덩이를 파놓은 데 불과하며 △정치 및 경제관계를 완전히 정상화하기로 했는데도 북을 ‘악의 축’이라고 공격했으며 △경수로 터빈과 발전기 등의 비핵 부품 납입이 완전히 실현된 다음에 핵사찰을 받게 돼 있는 데도 마치 북이 합의문을 위반한 듯이 국제여론을 오도했다는 게 북측 주장이었다.

그러나 경수로 건설지연은 북측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다. 우선 북측은 경수로 관련 의정서 협상에 소극적이었고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 사건을 벌여 일시적으로 공사가 중단되는 상황을 초래했다.

대북 적대정책과 경제제재 지속 문제와 관련해서는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조지 W 부시 행정부로 권력이 이동되면서 미국의 대북 정책이 바뀐 점이 큰 요인인 게 사실. 하지만 대량살상무기(WMD)인 미사일과 미사일 관련 기술을 ‘불량국가’들에 수출하고 중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를 실시해 미국을 자극한 것은 북측의 책임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발전기 등 부품 납입 실현 후 핵사찰을 합의했다”는 주장은 북측의 자의적인 해석에 가깝다. 제네바기본합의(4조 3항)에 따르면 ‘경수로사업의 상당부분이 완료될 때, 그러나 주요 핵심부품의 인도 이전에’ 핵사찰을 받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터빈과 발전기 등이 전달되고 원자로 등 핵심부품이 전달되기 이전에 핵사찰을 ‘시작’하면 된다는 논리이지만 한미 양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측은 3년 이상 걸리는 핵사찰이 핵심부품 전달 전에 완료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또 부시 미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과 핵 선제공격 대상에 북한을 포함시킨 점을 들어 제네바 합의의 무효화 책임을 미국측에 떠넘겼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북한의 비밀 핵개발 추진이야말로 제네바합의를 위태롭게 하는 근본원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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