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급회담 안팎]南北 원론수준 합의…'모양 갖추기'

  • 입력 2002년 10월 23일 02시 44분


제8차 남북장관급회담을 위해 평양에 체류 중인 정세현(丁世鉉) 통일부장관 등 남측 대표단은 마지막 날인 22일 서울 귀환 일정까지 미뤄가며 핵 파문의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북측을 압박했으나 남북간의 ‘높은 인식차’를 뛰어넘지는 못했다.

남북은 수석대표 단독접촉과 실무대표 접촉을 번갈아 이어가며 공동보도문에 북한 핵문제를 ‘대화를 통해 해결한다’는 원론적인 수준의 문안을 넣는데도 숱한 밀고당기기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8차 남북장관급회담을 위해 평양에 체류 중인 정세현(丁世鉉) 통일부장관 등 남측 대표단은 마지막날인 22일을 넘기고 23일 오전까지 협상을 거듭한 끝에 일단 공동보도문 채택에는 합의했다. 그러나 이날 오전 3시경 최종 합의된 공동보도문은 북한 핵 파문에 대해 ‘대화를 통해 해결한다’는 원론적 수준의 내용에 그쳐 남북간의 ‘높은 인식차’를 뛰어넘지는 못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회담 진행과정에 대해 “처음부터 모양 갖추기로 일관한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제기하고 있다.

결국 남북채널을 통해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남측 대표단의 당초 목표는 26일 멕시코 로스카보스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한미일 3국 정상회의 이후로 미뤄지게 됐다.

○…남측은 이날 오후부터 과거 북한의 ‘전매특허’로 불렸던 ‘벼랑끝 전술’에 버금가는 압박전략을 구사했다. 남측은 이날 대표단이 타고 갈 서울행 대한항공 전세기를 일찌감치 평양 순안공항에 대기시켜 놓고 “북측이 전향적 태도를 보이지 않을 경우 공동보도문 발표없이 예정대로 서울로 귀환하겠다”고 통보했다.

회담 결렬에 대한 부담을 느낀 북측은 이날 오후 수석대표 단독접촉을 제의했으며 양측은 밤늦게까지 남측 정세현 장관과 북측 김영성(金靈成) 내각책임참사간 수석대표 단독접촉과 실무대표 접촉을 잇달아 가진 끝에 일단 공동보도문 작성에는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남측 대표단은 핵 파문에 대한 북측의 해명과 제네바 합의 이행 약속을 받아낸다는 당초 입장에서 크게 물러서 북측의 버티기에 밀렸다는 평가도 있다.

○…북측 대표단은 전날 김영남(金永南)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밝힌 것처럼 ‘선(先)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후(後) 대화’라는 원칙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북측은 남측의 거듭된 핵 파동 우려, 납득할 만한 조치의 필요성 제기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피하면서 “외세를 배격하고 우리 민족끼리 해결하자”는 말만 되풀이하는가 하면 아예 화제를 딴곳으로 돌리거나 잘 모른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성 북측 단장도 핵 문제에 관한 질문에 “잘 될 것이다. 우리 민족끼리 합심해야 한다”는 선문답만 반복했다.

한편 남측은 핵문제 외에도 군사적 긴장완화와 신뢰구축 문제를 다룰 제2차 남북국방장관 회담 개최 문제도 제기했으나 북측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장관급회담이 난항을 겪는 것과는 관계없이 남북간에 이미 합의된 교류협력은 계속 추진될 전망이다. 북한 태권도시범단 41명이 23일 오전 예정대로 서해 직항로를 통해 입국하는 데 이어 26일 북한 경제시찰단이 남한 내 주요 산업시설을 둘러볼 예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북측이 하루 전까지 변동사항을 통보해오지 않은 점을 보면 북한 태권도시범단이 예정대로 입국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이달 중 개성공단 건설실무협의회 1차회의와 임진강 수해방지 2차회의가 개성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평양〓공동취재단·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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