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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0월 20일 18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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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상황은 93년 3월 12일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면서 불거졌던 1차 북핵 위기 때와 너무도 비슷하다. 1차 북핵 위기 때도 우리 정부는 미국과의 공조가 깨질 수 있다며 핵 위기의 실상이나 협상 진행 상황을 비밀에 부쳤다.
그러나 정작 미국은 새로운 사실을 그때그때 언론에 흘렸다. 93년 5월부터 북한과 미국이 직접 대화를 시작해서 94년 10월 제네바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도 그런 사정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북한의 영변 핵원자로 폐연료봉 교체 강행’, ‘북한의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 요구 및 미국 정부의 수용’, ‘북한의 경수로 공급협정에 한국형 경수로 명기 거부’, ‘북한의 10억달러 상당의 경수로 부대시설 추가요구’ 등은 모두 미국 언론을 통해 한국으로 전해졌다. 국내언론은 뒤늦게 이를 확인해 보도하느라 쩔쩔맸다.
요즘 정부의 태도는 9년 만에 ‘정보 사대주의’가 다시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북한의 핵개발 시인 사실을 제임스 켈리 미국 대통령특사로부터 전달받고도 최소한 12일 동안 이를 숨겼다. 미국이 언론 보도에 앞서 이를 발표하려 하자 정부도 뒤늦게 발표했다. 그러나 정부는 짤막한 발표문을 통해 북한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했을 뿐 어느 정도 위기 상황인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미국의 유력 신문은 미국이 지난해 이미 북핵 정보를 한국에 통보했다고 보도해 우리 정부의 은폐 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반면 미국은 어떤가. 미국 언론에는 켈리 특사 방북 뒷얘기와 북한의 핵개발 실상이 상세히 보도되고 있다. “북한은 핵개발 프로그램보다 더 강력한 무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1년 뒤에는 북한이 핵무기를 대량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은 자강도 하갑에 있다”는 미국 언론의 보도들은 모두 깜짝 놀랄만한 내용들이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들은 이런 보도가 사실인지조차 확인해 줄 수 없다고 말한다. 미국으로부터 계속해서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정부가 사실을 알고는 있는지, 아니면 아예 모르고 있는지조차 가늠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북한 핵개발의 직접적인 피해자는 우리 국민이다. 그런데도 정작 우리 국민은 외신을 통해서만 북핵 위기의 실상을 귀동냥해서 듣고 있다.
정부는 더 늦기 전에 북한 핵개발의 전모를 밝혀야 한다.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한 여론의 결집만이 북한의 잘못된 판단을 바로잡을 수 있다. 국민적 합의가 가장 강력한 ‘햇볕’이다.
김차수기자 kim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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