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만에 딸 보러 왔는데…” 5차 이산가족상봉

  • 입력 2002년 9월 13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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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에까지 왔는데도 살아 있는 딸을 만나지 못하다니….”

13일 금강산 온정각에서 이뤄진 5차 이산가족 상봉에서 남측 상봉단 가운데 최고령자인 김유중할머니(93)는 말없이 눈물만 삼켰다. 생전 처음 보는 북의 사위 이우문씨(70)를 만났지만 살아 있는 것으로 확인된 셋째딸 이경란씨(67)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 만난 사위에게 살가운 말을 건네는 것도 쑥스러운 듯, 김 할머니는 사위가 건넨 딸의 사진만 말없이 어루만졌다.

이씨도 가족사진을 김 할머니에게 보여주면서 아내를 데리고 나오지 못한 미안함 때문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이씨와 경란씨는 둘 다 남쪽 출신으로 북에서 만나 결혼한 사이. 경란씨는 경기여중 재학 중이던 1951년 1·4후퇴 때 당시 임신 중인 어머니를 보살피느라 피란을 못 가고 서울에 남아 있다가 중공군에 붙잡혀 북으로 끌려갔다. 전쟁 당시 서울공고 졸업반이던 이씨는 같은 해 7월 고향인 충북 제천에서 의용군에 끌려가는 바람에 가족과 헤어졌다.

이씨는 이날 “나는 황해남도 강령군 부포에서 수산학교 교장을 했고 처는 의사를 지냈다”고 밝혔다.

김 할머니는 사위 이씨가 남측 가족을 찾는 과정에서 장모인 김 할머니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덕분에 상봉 대상자에 포함되기는 했으나 딸 경란씨는 이산상봉 신청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상봉장에 나오지 못했다. 김 할머니는 이 사실을 알고도 혹시 딸을 만날지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와 사위 얼굴이라도 봐야겠다는 심정에 고령의 몸을 이끌고 방북길에 나섰다.

김 할머니처럼 안타까운 사연이 생긴 것은 경직된 이산가족 상봉 절차 때문. 이번에는 북한 가족 1명당 남한 가족 5명이, 16일부터 진행되는 두번째 상봉 때는 남한 가족 1명당 북한 가족 5명이 상봉키로 규모를 제한하는 바람에 북에 와서도 딸을 못 만나는 어처구니없는 경우가 생겼다.

더욱이 김씨 할머니가 딸 경란씨를 만나려면 다시 상봉신청을 해 10만명의 이산가족 중 추첨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실은 기약이 없는 실정이다. 김 할머니는 이날 온정각을 떠나며 딸의 모습을 찾는 듯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

금강산〓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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