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選 단골메뉴 ‘兵風’ 또 등장

  • 입력 2002년 8월 2일 19시 12분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 아들들의 병역비리 의혹이 한나라-민주당간의 치열한 정치공방의 소재로 다시 떠올랐다. 97년 대선 당시 최대 이슈 중 하나였던 이 사안은 5월 ‘오마이뉴스’가 ‘이 후보의 측근인 일부 한나라당 의원들과 병무청 고위간부가 97년 대선 직전 은폐 대책회의를 가졌다’는 내용을 보도한 것을 계기로 재점화돼 점점 불길이 커지고 있다.

한나라당은 사안의 민감성을 감안해 병역비리 은폐의혹의 확산을 조기 차단한다는 목표 아래 의혹을 폭로한 김대업씨를 형사고발하고 김씨와 민주당간의 공모 의혹을 제기하는 등 초강경 대응에 나섰다.

반면 민주당은 병역비리은폐 의혹을 이 후보의 ‘아킬레스건’으로 판단, 국면 반전을 노린 총공세에 나섬으로써 ‘제2차 병역비리 의혹’을 둘러싼 공방은 양당의 사활을 건 사생결단식 싸움으로 확전되고 있다.

▼한나라 민주 팽팽한 대치▼

▽한나라당〓강재섭(姜在涉) 최고위원은 2일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이 작년 말부터 치밀한 각본에 따라 거당적(擧黨的) 공작조직을 구성했다. 68명의 최고위원 의원 등으로 구성된 이 공작팀은 이 후보의 아들 병역과 세풍 문제를 주 공격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최근 일련의 공세가 ‘조직적 공작정치’라는 얘기였다.

강 최고위원은 또 이 후보측의 병역비리은폐 의혹을 제기한 의정 부사관 출신 김대업씨에 대해 “김씨는 전과 6범의 사기전문가이며 97년 청와대 간부를 사칭해 병역면제를 미끼로 9500만원을 받았다가 구속됐다. 전과 6범의 입을 통한 조작극에는 배후가 있고, 이를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일부 검찰 관계자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남경필(南景弼) 대변인은 논평에서 “병역비리를 수사했던 특수 1부의 박영관 부장검사와 노명선 부부장검사는 교도소 수감 중이던 김씨를 수사에 참여시킨 장본인으로 김씨의 공무원 자격 사칭을 교사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며 검찰수사진을 비난했다.

▽민주당〓한화갑(韓和甲) 대표 등 고위 당직자들이 직접 나서 전날 한나라당 의원들의 검찰 집단 방문을 ‘오만의 극치’ ‘폭거’라고 역공하는 등 총공세를 벌였다.

한나라당의 ‘공작정치’ 주장과 관련, 이낙연(李洛淵)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차라리 ‘공작’이길 바라는 한나라당의 절박한 심정을 얘기한 것 같은데 이 후보의 병역비리은폐 의혹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며 “이에 대해 책임질 사람은 이 후보와 부인 한인옥(韓仁玉)씨다”고 반박했다.

한나라당이 검찰을 찾아가 수사 담당자의 교체를 요구한 것 자체가 병역비리가 실제로 존재했음을 자인하는 증거라는 게 민주당측의 주장이다.

한나라당에 대한 공격에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까지 가세했다. 그는 이날 경기 하남 재선거 지원유세에서 “병역비리는 공권력을 무력화하고 나라 기강을 무너뜨리는 충격적 인 사건이다”고 말했다.

정균환(鄭均桓) 원내총무는 “검찰이 엄정 중립을 지키고 제대로 수사하지 않으면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며 검찰에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박성원기자swpark@donga.com

정용관기자 yongari@donga.com

▼정연씨 병적기록표 공개…사진-직인등 빠져 논란

한나라당 박세환(朴世煥) 의원이 2일 공개한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 장남 정연(正淵)씨 병적기록표는 △사진이 없고 △철인(사진의 변조를 막기 위해 사진 위에 찍는 직인)과 지방병무청의 대조 확인란에 도장이 안 찍혔으며 △정연씨가 국군춘천병원에서 최종 면제판정을 받았는데도 병적기록표에는 입영부대인 102보충대의 판정 기록만 있을 뿐 춘천병원 직인이 찍혀 있지 않다는 것이 특징이다.

박 의원이 각 지방 병무청에서 샘플로 받은 것이라며 함께 공개한 병역면제자 316명의 병적기록표 사본 중에도 일부 사진이 없거나 지방청 대조 확인이 없는 것이 있었다. 박 의원은 이를 근거로 “기록표 양식은 지방청별로 차이가 많았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정연씨 기록표에 춘천병원 직인이 없는 데 대해서도 “102 보충대 입대 후 춘천병원에서 면제판정을 받은 경우 ‘검사장소’에 ‘102보’라고 날인하는 게 관례였기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장전형(張全亨) 부대변인은 “병무청장에게 확인한 결과 병무청은 박 의원의 요청에 따라 316장의 병적기록표 사본을 보내면서 사진과 이름 등을 지운 것을 보냈다고 했다. 본래부터 사진이 안 붙어 있는 병적기록표는 있을 수 없다”며 박 의원의 해명에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박 의원측은 “함께 공개한 다른 사람의 병적기록표 사진 부분에 한글로 ‘사진’ 또는 ‘3×4㎝’ 등이 표시돼 있으므로 무엇을 가리고 복사한 기록표를 받은 것이 아니다”고 재반박했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김대업씨는 누구

한나라당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김대업(金大業)씨는 병무 비리 수사에 참여한 경력과 스스로 병무 비리에 연루된 전력이 있는 특이한 인물.

80년대 초 군 병원의 행정업무 등을 맡는 의정(醫政) 부사관(옛 하사관)으로 입대했다가 몇 년 후 병역비리 서류 변조 사건에 연루돼 옷을 벗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 군 병원 경력을 인정받아 98년 검군(檢軍) 병역비리 합동수사반에서 보조요원으로 활동했다. 김씨는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며 비리 연루자들도 직접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김씨가 수사에 참여한 3년여간 적발된 병무비리 사범은 1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수사 관계자들은 그가 비리 수법 등을 잘 알아 ‘활용’했으나 제보가 맞지 않거나 확인되지 않아 몇 달간 애를 먹기도 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병역비리로 8개월간 복역했고 97년에는 협박 혐의로 구속됐으며 지난해 3월 또 다시 사기 혐의로 구속됐다가 올 3월 풀려났다.

정위용기자 viyonz@donga.com

▼검찰 “뜨거운 감자… 속전속결”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의 장남인 정연(正淵)씨 병역면제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는 대통령선거 등 향후 정치 일정을 고려해 신속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수사의 속도와 관련해 수사 결과가 대선 이전에 나오지 않을 경우 검찰이 정치 공세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고민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정치쟁점화하도록 시간을 끌고 있다”고 비난할 것이고, 민주당 등은 “힘센 야당을 봐주고 있다”고 불평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찰은 수사의 결론이 빨리 나올수록 좋다는 판단인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 결과가 대선에 미치는 영향과 검찰이 정쟁의 대상이 되는 기간을 최소화하겠다는 것.

그러나 지금까지 김대업(金大業)씨와 한나라당 양측의 주장을 입증할 명확한 물증이 드러나지 않아 앞으로 신속한 수사가 가능할지는 의문이다.

김씨는 “1월 전직 병무청 고위관계자 K씨가 검찰에서 ‘97년 대선 직전 이 후보의 K특보, 신한국당 J의원과 함께 정연씨 병적 카드를 은폐하는 논의를 했다’고 말했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검찰은 “K씨가 김씨에게 어떤 얘기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K씨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대책회의와 관련한 진술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K씨는 “김씨에게 대책회의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고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전언(傳言)’밖에 없는 상황에서 김씨의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씨는 또 지난달 31일 “대책회의 관련자 등의 대화를 녹음한 녹취록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얘기대로라면 녹취록 등 관련 자료의 존재 여부가 수사의 변수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그의 주장 가운데 일부가 허위인 것으로 드러난 상황이어서 그의 말을 얼마나 믿어야 할지에 대해 의구심이 일고 있다.

김씨는 “검찰이 K씨의 대책회의 발언과 관련해 K씨 주변 인물을 조사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으나 검찰은 “K씨의 비서를 조사한 적은 있지만 대책회의와는 무관한 조사였다”고 밝혔다.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제2차 이회창 후보 병역비리 공방 일지
5.21‘오마이뉴스’, 의정 부사관 출신 김대업씨의 증언 토대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장남 병역비리 은폐’ 의혹 보도
24이회창 후보, “병역비리 은폐했다면 후보직 사퇴” 밝혀
6.19신동아, ‘이 후보 장남 신검부표 상부지시로 은폐’ 기사 보도
26한나라당, ‘병역비리은폐’ 의혹 제기한 ‘신동아’,‘오마이뉴스’ 상대 손해배상소송
7.24민주당 신기남의원, 대정부질문에서 이 후보 아들 병역비리은폐의혹 제기
31김대업씨, 이 후보 명예훼손 고소
8.1한나라당, 김대업씨 고발 및 출국금지요청. 대검 항의 방문

이명건기자 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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