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25명 필리핀行]탈북자 입국과정 변화

탈북자 25명이 주중 스페인 대사관 진입을 통한 ‘기획 망명’에 성공함으로써 향후 유사사례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6월 길수군 가족과 이번 사건뿐만 아니라 최근 국내에 입국하는 탈북자들은 사전 기획을 통해 3, 4가족, 20여명 단위로 ‘조’를 구성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탈북자 지원단체들의 탈북자문제 접근 방식이 종전 ‘비공개 개별 지원’ 차원에서 ‘단체 기획 망명’ 쪽으로 변화하는 과정에 들어섰다는 사실과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중국 현지의 서방 대사관이나 한국 측 관계자 등을 통한 개별적 망명 시도가 실효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도 이 같은 기획 망명의 증가를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같은 기획 망명은 중국 등 관련 당사국의 입장에서는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그로 인해 남북한과 중국의 3각관계에도 찬바람을 몰고 올지 모른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탈북자 25명이 북한의 인권문제를 거론함으로써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북한 측도 앞으로 탈북자들에 대한 강력한 조치를 요구하면서 우리 정부의 개입 여부를 놓고 비난공세를 펼 가능성이 있다. 그럴 경우 남북관계에도 좋지 않은 영향이 미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탈북자 문제가 국제적으로 비화되는 것을 꺼리고 있다. 게다가 ‘주중 외국 대사관 진입〓한국행 티켓’이라는 인식이 확산될 경우 최대 20만명으로 추산되는 탈북자들이 유혹을 느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혈맹인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한다는 차원에서도 중국은 앞으로 강경 대응을 해나갈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지난해 길수군 사건 직후에도 대대적인 탈북자 단속과 북송 조치를 취한바 있어 이번 망명 성공이 중국 내 여타 탈북자들에게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이점에서 우리 정부의 대중 외교력이 향후 탈북자 문제 처리와 관련해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이번 탈북자 25명 사건의 신속 해결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중국에 남아있는 나머지 탈북자들의 인권문제이기 때문이다.

김영식기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