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갚을 의지도, 받을 생각도 없다'

  • 입력 2001년 12월 5일 18시 18분


그동안 가려져 있던 이 정부의 ‘대북(對北) 퍼주기’ 실태가 또 드러났다. ‘주간동아’ 최근호 보도에 따르면 삼성 현대 등 우리 기업들이 1998년 이후 북측 아태평화위원회와 거래한 300억원 규모의 외상무역(연불수출) 대금을 떼일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북측은 납부기한이 지난 65억여원을 갚지 않았고, 아직 만기일이 오지 않은 235억원 역시 갚을 능력도, 의사도 없는 모양이다.

일차적으로는 돈줄 생각조차 안하는 북측이 문제지만 돈을 떼이게 된 우리 기업들의 행태도 이해할 수 없다. 이번 일에 관계된 기업들은 대체로 ‘기업인 방북에 대한 대가성 물품이므로 돈 받을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고, 연불수출 계약을 체결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정부측 권고 때문’이었다고 한다. ‘돈을 줄 쪽에선 주겠다는 의지가 없고, 받을 쪽에선 받을 생각이 없는’ 형국인 것이다.

이렇게 ‘이상한 거래’가 성사된 데에는 무엇보다 정부의 잘못이 크다. 기업들이 합법적인 방법으로 북측과 거래할 수 있도록 정부가 앞장서서 연불수출이라는 ‘편법’을 가르쳐준 셈이기 때문이다. 통일부는 ‘북측이 대금을 지급하지 못할 경우 향후 투자분에서 상계한다고 계약서에 돼 있으므로 돈을 떼였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설명하지만, 북측의 과거 행태로 볼 때 설득력이 약하다.

사실 정부가 국내 기업들에 대해 대북 진출을 ‘종용’해왔다는 소문이 나돈 게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정부로서는 햇볕정책 추진과정에서 북측에 제공할 ‘당근’이 필요했고, 그 당근 중 하나가 민간차원의 대북 외상무역이 아니냐는 것이다. 이번 일은 그런 소문이 일부 사실임을 확인시켜 줬다는 점에서 그동안 정부의 대북 퍼주기가 얼마나 무분별하게 이뤄져왔는지를 말해준다.

이번 일은 또 정부가 그동안 기회 있을 때마다 외쳐온 정경분리(政經分離) 원칙을 스스로 저버렸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통일부는 여전히 ‘민간기업 거래에 정부가 나서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며 정경분리론을 또 내세우고 있다니 도대체 이렇게 제멋대로인 원칙이 있는가 묻고 싶다.

남북경협은 ‘정상적인’ 거래관계를 형성하고 관행으로 굳혀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번에 드러난 것과 같은 비정상적인 거래는 북측의 버릇만 나쁘게 만들 뿐이고, 장기적으로는 남북 교류협력에 심각한 장애가 될 것이 분명하다. 정부가 진정 남북 교류협력의 발전을 추구한다면 이런 왜곡된 행태부터 그만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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