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고이즈미 방한 수락]대일외교 '말따로 행동따로'

  • 입력 2001년 10월 4일 18시 44분


정부는 5일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파문으로 경색된 한일관계에 대한 입장을 돌연 바꿨다.

정부는 이날 고이즈미 총리의 방한을 발표하면서 “고이즈미 총리가 방한해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진전된 입장’을 표명하고 한일관계를 중시하는 자세를 천명하고 싶다는 견해를 외교경로를 통해 수차 전달해와 이를 받아들였다”고 설명했다. 또 “미국 테러사건 이후 2002년 월드컵에서의 테러 공동 대응의 필요성, 경제 통상 및 인적교류 면에 미치는 영향과 대북정책 공조 등을 위해 양국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일간 주요 현안과 입장

현안

한국 입장

일본 입장

역사

교과서

왜곡

-내년 중고교 교과서 검정 등 향후 역사왜곡 재발방지 약속해야

-한일 파트너십에 근거해 역사왜곡 방지위한 근본대책 강구해야

-우익교과서의 역사인식은 일본 정부의 생각과는 일치되지 않아

-고이즈미 총리 방한 때 ‘진전된 입장 또는 유감’ 표명할 것

야스쿠니 신사 참배

-고이즈미 총리가 다시 신사참배 않을 것을 명시적으로 약속해야

-A급전범과 일반 희생자가 구분되 도록 근본적 조치를 취해야

-신사 참배는 일본을 위해 희생된 사람 들을 추모하고 평화의 맹세를 새롭게 하기 위한 것

-방한 때 과거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 한 깊은 반성 표명(예상)

2002 한일

월드컵

-성공적인 공동개최를 위한 양국간 긴밀한 우호협력 분위기 조성

-미국 테러사건을 계기로 한일간 테러에 대한 공동 대처

-한국과 적극 협력

대북 공조

-대북 포용정책 추진을 위해 인도 적 지원 등 일본의 적극적 역할 기대

-행방불명 일본인에 대한 북측의 납득 할 만한 조치 등이 선행돼야

-방한 때 한국측 입장을 배려한 진전된 반응 보일 가능성(예상)

정부의 이 같은 설명은 지금까지의 입장과 배치된다. 정부 당국자들은 그동안 “일본이 결자해지(結者解之) 차원에서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하기 전에는 정상회담 개최는 어렵다”고 공언해 왔다. 청와대 고위당국자는 “일본은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극언도 서슴지 않았다.

그런 정부가 슬그머니 고이즈미 총리의 방한을 수용한 것이다. 물론 양국관계 악화 이후 일본의 대한(對韓) 투자 감소와 관광객 급감 등 후유증이 적지 않았다는 점에서 정부의 고충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정부가 입장을 바꾼 데에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주최국인 중국이 최근 일본과의 정상회담을 갖기로 한 것도 한 원인이 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당국자는 “일본을 국제사회에서 ‘왕따’시키기 위해 강경책을 폈지만 실리면에서 손실이 적지 않았고 중국이 일본과 정상회담을 갖는 마당에 우리만 불편한 관계로 남는 것은 외교적으로 적지 않은 부담”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입장 변경이 대일(對日) 외교에 좋지 않은 선례를 남기지나 않을까 하는 우려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런 일들이 선례가 되어 쌓이기 시작하면 앞으로 대일 관계에서 우리는 일본과 맞설 명분도, 수단도 확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정부는 4일 배경 설명 자료에서 “이번 고이즈미 총리의 방한이 우리의 요구를 완전히 충족시킬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우나 한일간 역사인식 문제 해결과정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러나 고이즈미 총리의 방한 결과가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경우 정부는 “원칙도 잃고 실리도 잃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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