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정부 국정진단 초심과 현실 6]언론자유

  • 입력 2001년 8월 31일 18시 50분


《“토머스 제퍼슨은 ‘신문 없는 정부를 택할 것인가,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단호하게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나도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할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신문의 도움을 받은 일도 많았고 많은 비판도 받았다. … 분명한 것은 언론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고 민주주의도 이만큼 발전되었다는 것이다. 찬양 일색보다는 우정 있는 비판이 중요하다. … 우정 있는 비판을 하고 잘못하면 충고를 해야 한다.”(1998년 4월 6일 신문의 날 기념사)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취임 초기 이처럼 언론에 대해 고마움을 나타내며 언론자유의 중요성을 강조하곤 했다. 》

김 대통령은 특히 2000년 3월 31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동아일보 창간 80주년 기념식 축사를 통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동아는 민족 민주 문화주의 3대 강령을 내걸고 우리 민족의 앞날을 이끌어 왔다. 독재정치에 대항하고 반독재 민주화 투쟁에 앞장섰다. 동아일보는 이제 민족의 가장 큰 언론의 하나로 성장했다.”

▼싣는 순서▼

- ①남북관계
- ②국민화합
- ③相生정치
- ④시장경제
- ⑤사회개혁
- ⑥언론자유

그러나 김 대통령은 민심과 괴리된 국정운영, 지역편파인사로 인한 민심이반, 국민적 합의를 이루지 못한 채 밀고 나간 대북정책, 개혁추진에 따른 부작용 등과 관련해 자신에 대한 언론의 비판이 강화되자 언론에 대해 불만을 표출하는 등 태도가 바뀌기 시작했다. 초심(初心)을 잃은 것이다.

▼언론문제 본격 개입▼

급기야 김 대통령은 올 1월 11일 연두기자회견에서 언론문제에 대한 정부의 개입을 예고했다. “국민 사이에 언론개혁 여론이 상당히 높은 만큼 언론계 학계 시민단체 국회가 모두 합심해서 투명하고 공정한 언론개혁을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

▼관련기사▼

- 여론조사 '아전인수'
- 개혁 '이중잣대'

김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에 이어 국세청은 2월8일부터 23개 중앙 언론사에 대한 세무조사에 착수했고 공정거래위원회도 2월 12일 동아 조선 중앙일보 등 4개 일간지에 대해 불공정 거래 조사에 들어갔다. 이처럼 초유의 대대적인 대(對) 언론 공세가 벌어지자 나라안팎은 들끓었다.

방송 등 정부 지배 언론사와 일부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대 언론 공격에 가세했지만 현 정권의 ‘정치적 목적’에 보다 더 큰 관심을 가진 다수 국민은 이 사태를 언론탄압으로 규정하는 등 국론은 갈라졌다. 뿐만 아니라 미국 하원의원 8명이 김 대통령에게 언론자유 침해를 우려하는 서한을 보냈고, 국제언론인협회(IPI)도 언론탄압 의혹을 제기하는 등 한국에서의 언론사태는 국제적 관심사로 대두됐다.

김 대통령은 세무조사와 공정위 조사에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그러나 대 언론공세가 상당기간 정권핵심부에서 ‘준비’된 게 아니냐는 의혹을 지우기 어렵다. 김 대통령은 이미 98년 7월 한 언론인과의 면담 자리에서 “언론 스스로 개혁하는지 눈여겨볼 것이다. 안되면 내년부터는 그 개혁을 유도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이 부분은 내놓고 할 사항이 아니다”고 말했다.

99년 10월 한나라당이 폭로한 ‘언론장악문건’에는 세무조사, 공정위 조사, 언론사주 처벌 등을 통한 비판언론 길들이기 시나리오가 적시돼 있으며 대부분 그대로 이행되고 있음은 오늘의 현실에서 보는 대로다.

▼'빅3' 길들이기▼

국세청의 세금 추징과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 등이 현 정권에 비판적 논조를 보였던 동아 조선 중앙 등 빅3를 겨냥했다는 건 이미 공론화된 사실. 국세청이 23개 언론사에 추징한 5056억원 중 절반이 넘는 2541억원이 빅3에 부과되는 등 액수를 봐도 그렇지만 국세청직원을 1000여명이나 동원하고 공식 조사기간도 132일이나 걸렸다.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전문가들은 무리한 조사와 과중한 세금 추징, 과징금 부과는 언론사의 존립 자체를 위협, 언론자유를 침해할 것이라고 우려했지만 김 대통령은 조세정의 차원에서 언론사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이 같은 전방위 압박에도 불구하고 동아일보의 제작원칙과 방향은 흔들리지 않았다. 김병관 전 명예회장은 세무조사가 막바지로 치닫던 6월 9일 안정남 국세청장과 만나 “세무조사는 그대로 받을 테니 김 대통령이 어떤 민주주의를 지지하는지 밝힐 것과 국정쇄신책 발표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뜻을 대통령에게 직보해 달라. 김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시장경제를 지키겠다면 협조하겠다”고 입장을 분명히 했다. 김 대통령은 6·15 남북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2000년 8월 언론사 사장단이 방북했을 때 동아일보가 민간 차원의 대북 교류협력을 자체 추진하기 위해 방북단에 참여하지 않자 강한 불만을 표시한 일도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국세청은 23개 언론사 모두의 탈세 사실을 적발하고도 빅3를 포함한 6개 언론사만 검찰에 고발했고 결국 동아 조선의 대주주가 구속되기에 이른 것이다.

▼언론개혁은 자율로▼

정부 소유 언론사를 비롯한 친여(親與) 언론들과 일부 시민단체들은 대주주 소유 지분 제한, 신문판매시장 개선 등 ‘정부 주도의 언론 타율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 주도의 언론개혁은 결국 언론자유를 억압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자율개혁’을 해야 하며 김 대통령도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한림대 유재천 부총장(언론학)은 언론개혁을 위한 기본전제로 △언론자유를 제한하는 개혁이어서는 안된다 △언론의 책임은 자율적 규제에 맡겨야 한다 △법률에 의한 개혁은 마지막 선택이며 최소한이 돼야 한다 △정부가 개혁의 주체일 수 없으며 개혁에 개입해서도 안된다 △언론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개혁이어야 한다 △언론개혁의 주체는 언론인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차수기자>kim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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