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어디로 가야하나]"증오정치 그만…정책으로 대결하라"

  • 입력 2001년 8월 8일 18시 32분



□정치왜곡

▽박재창 교수〓권위주의 청산을 토대로 민주주의를 공고히 했어야 했는데 이것이 잘 되지 않아 우리 사회가 다양한 문제를 겪고 있다. 정치개혁 없이 사회의 전반적인 개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다. 정치개혁이 부진한 이유와 현장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얘기해 보자.

▽조기숙 교수〓과거 경제발전을 위해 정치를 후퇴시킨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하면서 군사정권 때 억눌렸던 온갖 계층의 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정치개혁의 핵심은 정치의 활성화다.

▼글 싣는 순서▼
- 1. '국론분열-갈등' 치유의 길
- 2. 정치부터 바뀌어야 한다
- 3. 경제 어떻게 살릴 것인가
- 4. 교육에서 희망을 찾아라
- 5. 남북 문제 바른 해법은
- 6. 4강과의 외교관계 재정립을
- 외국 전문가들의 충고

▽손호철 교수〓김대중(金大中) 정권 출범후 3년 반이 됐는데 정치적 시민권 측면에서 보면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의회민주주의 측면에서도 진전이 없었다. 소수정권의 한계에 기인하지만, 개혁독재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사회 경제 개혁을 추진하는 힘이 정치에서 나와야 하는데, 소수정권이라 힘이 부치다 보니 과거 군사독재의 결과 제일주의를 재연한 모양이 됐다.

▽박 교수〓정치개혁은 단순히 대의민주주의만으로는 안 된다. 정보화시대에 들어서면서 대의 자체의 모순도 극복해야 하는 이중적 과제를 안고 있다. 시민사회가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고, 신뢰 질서 규범이 부족하고, 사회자본(social capital)이 축적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치개혁을 하기는 어렵다. 정치개혁의 주체와 대상이 중복되는 구조적 모순도 있다. 냉전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부담도 정치왜곡의 원인이 되고 있다.

▽조 교수〓교육개혁 의약분업 등은 소수정권의 전문성 부족으로 실패를 피하기 어려웠고, 다른 정권이라면 잘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치개혁은 어떤 정권이 들어섰더라도 실패했을 것이다. 온 국민이 일상생활 속에서 스스로 권위주의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사회적 인프라가 없는 상태에서 기득권자가 기득권을 놓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정치적 기득권자가 스스로 버려야 하지만, 시민사회의 엄청난 요구 없이는 어렵다. 우리 시민사회는 87년 이후 비로소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 정도 수준이면 많이 왔다.

□정치의 독과점

▽박 교수〓개혁의 주체는 개혁이 실패하더라도 잃을 것이 없다. 개혁 추진과 저항의 강도 차이가 커 개혁을 어렵게 한다.

▽손 교수〓(대통령은) 소수정권으로서 당내 민주주의를 하면 개혁에 실패한다고 생각해서 안 했다. 또한 의회도 수구세력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정치에 대한 통제력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조 교수〓그럼 야당의 리더십은 왜 권위적이라고 생각하나?

▽손 교수〓뭉쳐서 싸우기 위해서라고 자기들은 생각한다.

▽조 교수〓그건 소수정권의 문제가 아니라 독과점 체제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손 교수〓시민사회가 정치개혁을 강제해야 하나 그렇게 안 되는 이유는 지역에 기반한 독과점 체제를 보장하는 지역주의 때문이다.

▽박 교수〓(현 정권은) 진지성의 결여, 전문성의 부족, 그리고 근본적인 소수세력의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정치시장이 유연하지 못한 이유는 지역주의 때문이다.

▽조 교수〓현 정권이 다수정권이었더라도 정치개혁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선거에서 치열하게 싸운 대통령과 야당총재 간의 불화가 정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대통령이 총재를 겸하고 총재가 공천권을 휘두르는 것도 큰 문제다. 국회의원 공천권을 정쟁의 도구로 쓰고 있는데 왜 이 권한을 놓겠는가. 야당의원들도 총재와 맞서고 싶어도 정권을 가져와야 하기 때문에 내부에서 싸우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백 아니면 흑의 정치

▽손 교수〓군사독재시절이었던 유신시대나 5공시절에는 증오의 정치가 기승을 부리진 않았다. 표현의 자유가 없기도 했지만, 최소한 상식적 수준에서 뭐가 선인지 악인지 구별할 수 있는 도덕적 권위라는 게 있었다. 문제는 김영삼(金泳三), 김대중 대통령 등 민주화세력이 집권하면서 그 사람들이 주장해 온 민주주의 잣대가 불신을 받게 됐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도덕적 허무주의가 확산됐다. 이것이 증오정치를 전면화시켰다고 본다.

▽조 교수〓지금은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옳고 그름을 주장하고 있다. 의견은 다양하고, 총천연색이다. 수천 수만 가지의 생각이 있는데 흑이 아니면 백, 백 아니면 흑의 양분론적 사고가 지속되고 있다.

▽박 교수〓정권교체에 자신감을 가진 야당과 정권을 뺏기지 않으려는 여당 간에 공존하는 방식과 과실을 나누는 방식에 대한 합의가 없다. 우리 정치문화는 구체적 토론과정 없이 증오와 적대감이 누적되다가 일정 한계에 다다르면 폭발적으로 한꺼번에 표출된다. 정치가 지나치게 관념적인 것도 문제다. 구체적인 실체가 있어야 조정과 타협이 가능한데 원론만 가지고 싸우면 조정과 타협이 있을 수 없다.

▽손 교수〓최근 정치권에 사회주의 논쟁이 있었는데 경제학자 출신인 데다 집권을 노리는 제1야당의 정책위의장이 그렇게 무식할 수 있는지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양면이 있다. 낡은 색깔론적 담론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지만 정책을 가지고 논쟁을 벌인 것은 긍정적 측면이 있다.

▽조 교수〓색깔론이나 사회주의 논쟁도 상징정치의 폐해라고 볼 수 있다. ‘여당의 사회복지정책이 이래서 낭비가 크고…’ 하는 식으로 말하면 유권자들이 못 알아들으니까 한 방 먹이려는 목적에서 ‘나쁜 놈’으로 만들기 위해 색깔론 등 상징적 언어를 동원하고 있다.

▽박 교수〓관념의 정치에서 벗어나 프로그램의 장단점을 구체적으로 짚어주면 훨씬 좋을 것이다. 정치가 너무 과장을 한다. 쟁점의 이슈화를 위해 정치적 책임을 외면해버린다. 정교한 언어와 치밀한 재단을 해야하는데 우리 정치는 너무 무지막지하고 조악하다.

□개혁, 어떻게 하나

▽조 교수〓제일 시급한 것은 정당 개혁이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 정당제도를 개혁하려면 선거제도를 바꿔야한다. 다행히 헌법재판소가 현 비례대표제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린 만큼 지금 개혁해야 한다.

▽손 교수〓그 의견에 동의한다. 독일식 비례대표제로 가야 한다. 일본식 비례대표제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또 당내 민주화를 위해 예비선거를 의무화하지 않으면 국고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하는 방식도 필요하다. 의회의 독립을 위해 미국처럼 감사원을 의회 산하에 둬야 한다.

▽박 교수〓권력구조를 어떻게 바꾸느냐 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과제다. 의회독립의 확보를 위해 다양한 장치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여당 당수를 겸직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과연 행정부로부터 의회의 독립을 보장할 수 있느냐가 문제다. 대통령이 여당총재를 하지 않는 제도적 방법이 없을까 고민해야 한다.

▽조 교수〓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이 대통령이나 야당 총재보다 더 개혁적라고 보기 어렵다. 돈세탁방지 관련법 처리 과정에서 의원들이 법안을 누더기로 만들었다. 사립학교법도 대통령은 개정하라고 하는데 의원들이 하지 않는다. 전횡을 휘두르는 총재와 의원들의 반개혁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가 문제다. 정쟁에 동원될 때는 총재에게 충성을 바치지만 의원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걸리면 총재에게 반기를 든다. 무작정 의원들에게 자율성을 주는 것도 문제다.

▽박 교수〓의회민주주의를 잘 하는 나라들을 살펴보면 정치권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자질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이상사회에 대한 꿈을 가진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정치권에 진출하는 사회적 운동이 있어야 한다.

▽조 교수〓(그런 사람들이) 정치권에 흡수돼 변절하는 것보다 시민사회에 남아 압력을 행사해야 한다. 이는 시민사회의 성숙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박 교수〓정치개혁은 종합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또 인적자원의 교체나 인식의 개혁 등이 패키지로 이뤄져야 한다.

▽손 교수〓국회의원들이 반(反) 개혁적인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이 두려워 의회에 자율성을 안줄 수도 없다. 의회에 자율성을 주고 사회적으로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한국정치인들은 타락하지 않으면 승리할 수 없고, 승리하기 위해 변하면 현실정치 수준으로 떨어지는 딜레마가 있다.

▽조 교수〓정쟁이 심해 변화를 못 느끼지만 시민단체들이 국회를 감시한 뒤 작성한 속기록을 보면 국회의원들이 많이 변했음을 느낄 수 있다. 우리 헌법은 미국식 순수 대통령제가 아닌 프랑스식 헌법에 가까우므로 양대 정당과 몇 개의 군소정당이 있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독일식은 너무 많은 정당들이 나와 양대정당제가 어렵다. 내각제로 가면 독일식이 좋지만, 우리 헌법을보면일본식이오히려나은것같다.

▽손 교수〓소수정당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신생정당 출현이 어려운 일본식보다는 독일식 선거제도가 맞다고 본다.

▽박 교수〓지역감정을 토대로 선거가 치러지기 때문에 독일식 제도를 취한다고 정당이 난립하지는 않을 것이다.

□개혁과 리더십

▽손 교수〓정치개혁의 핵심은 간단하다. 대통령의 자기개혁 없는 정치개혁은 실패한다. 대통령이 스스로 제도적으로 권력을 줄이고 자기개혁을 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서 남에게 개혁을 강조할 경우엔 실패한다. 자기개혁의 도덕적 기반을 가지고 정치개혁을 압박할 때 승리할 수 있고 그것이 최후의 해법이다.

▽조 교수〓나도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윗물이 맑아진다고 아랫물도 맑아질까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국민 하나하나가 성숙한 민주의식을 가져야 한다. 세련된 눈으로 정치의 다양한 모습을 보지 않는 한 민주주의는 하루아침에 오지 않는다.

▽박 교수〓정치개혁도 단기적 과제와 중장기적 과제를 구분해서 접근해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리더십의 결단이 중요하다. 중장기적으로는 정치교육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정치개혁도 너무 조급하게 성과를 기대하지 말고 길게 접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정리〓윤영찬기자>yyc11@donga.com

▼박재창▼

△1948년 출생

△한국외국어대 정외과 졸

△뉴욕주립대 행정학박사

△뉴욕주립대 국제발전연구소 부소장

△공명선거실천시민운동연합 집행위원장

△한국행정학회장

△현 숙명여대 행정학과 교수

▼조기숙▼

△1959년 출생

△이화여대 정외과 졸

△미국아이오와대정치학박사

△의회발전연구회 연구위원

△‘의정연구’ 편집위원

△인천대 정외과 교수

△현 이화여대 정외과 교수

<김창혁기자>chang@donga.com

▼손호철▼

△1952년 출생

△서울대 정치학과 졸

△미국 텍사스대 정치학박사

△한국일보 로스앤젤레스특파원

△한국정치연구회 회장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 회 공동의장

△현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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