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온 길수가족 "아! 자유…형 정말 꿈만 같아"

  • 입력 2001년 7월 1일 18시 45분


장길수군 가족중 1명이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기쁜 표정을 짓고 있다
장길수군 가족중 1명이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기쁜 표정을 짓고 있다
“형, 정말 꿈만 같아. 이렇게 서울에서 다시 만나게 될 줄은….”

“그래, 길수야. 나도 우리들이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눈물로 밤을 지새운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29일 가족과 함께 한국에 온 장길수군(17·이하 가명)은 서울 시내 모 기관의 안가에서 서울에 먼저 들어와 있던 둘째형 한길씨(20)를 극적으로 만나 서로 부둥켜안은 채 ‘기쁨을 눈물’을 흘렸다.

이들 형제는 지난달 중국 공안(公安·경찰)의 눈을 피해 급하게 은신처를 옮기다가 헤어졌다. 이들은 서울에 오기까지 서로 겪었던 얘기들을 털어놓다가 생사를 알 수 없는 어머니와 북한에 남아 있는 큰형 및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에 또다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형, 나 작년에 중국에서 숨어 지낼 때 이런 일기를 썼어. ‘누더기 이불을 덮고 아버지 코 고는 소리가 듣기 싫어서 귓구멍을 틀어막던 그 때, 3형제가 한 이불을 덮고 서로 당기면서 빼앗아 덮던 그 때가 제일 행복한 때였다. 이제 다시는 그런 때가 있을 것인가’ 하고…. 이제 영영 아버지 엄마를 다시 만날 수 없게 될까.”

자료:길수가족구명운동본부(☆은 베이징 UNHCR 사무소를 통해 서울에 온 7명,★는 북한 정치범 수용소 수감자, ▽은 제 9국을 통해 서울에 온 3명, 나머지는 행방 불명)

장길수군 일가족 명단
성명관계탈북
시기
비고
장길수(남·17)☆본인99.1 
정선미(여·46)★어머니99.32000.1 북으로 강제송환후 5월 정치범수용소 이송
장한길(남·20)▽99.8 
정태전(남·68)☆외조부98.1.22 
김춘옥(여·67)☆외조모97.3.192001.3 강제송환후 석방후 5월에 탈북
정대한(남·28)▽외삼촌 
정명숙(여·44)☆이모99.1.11 
김봉수(남·49)☆이모부정명숙의 남편
김정철(남·20)▽이종사촌김봉수·정명숙의 장남
김은희(여·18)☆〃 장녀
김혁철(남·16)☆〃 차남
정경숙(여·52) 98.1정태전의 여동생
김광철(남·27)★ 99.8정경숙의 장남,
2001.3 강제송환후 5월 정치범수용소 이송
김성국(남·25) 98.1정경숙의 차남
이성희(여·25) 99.8김광철의 처
김한국(여·1)  김광철·이성희의 딸

길수군의 어머니 정선미씨(여·46)는 지난해 3월 은신 중 중국 당국에 체포돼 북송됐고 정치범수용소에서 복역하고 있다. 공무원인 아버지(48)와 20대 중반의 군인 출신인 큰형은 당성(黨性)이 높아 일가족의 탈북을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아버지는 “탈북을 시도할 경우 당에 고발하겠다”고 여러 차례 경고했다고 ‘길수가족구명운동본부’의 관계자가 전했다.

그러나 배고픔에 지치고 ‘자유’에 갈증난 길수군 일가족 15명의 탈북은 97년 3월∼99년 8월 5차례에 걸쳐 이뤄졌다. 중국에서 태어난 아기를 포함한 16명 중 이번에 입국한 10명을 뺀 나머지 6명은 모두 북송된 것으로 알려졌다. 길수군은 지난해 5월 탈북 동기와 북한 주민의 실상을 알리는 자신의 글과 그림을 모아 ‘눈물로 그린 무지개’(문학수첩)란 책을 펴냈다. 그러나 그의 다섯 가족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웃을 때까지 그 무지개는 일곱 색깔 무지개빛이 아닌 슬픈 회색빛일 수밖에 없을 듯 하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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