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디자이너 첫 ‘평양 패션쇼’…이영희씨 한복전 성황

  • 입력 2001년 6월 5일 01시 14분


분단 이후 남한의 첫 패션쇼가 4일 오후 평양 대동강 구역 옥류동 청년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20여명의 남북한 모델들은 화려한 궁중의상으로 공연의 대미를 장식했다.

모델과 봉사자들은 쇼가 끝난 뒤 화장이 엉망이 될 정도로 서로를 껴안았다. 500여 북한 관객은 일제히 기립 박수를 보냈다.

이날의 주인공인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李英姬·65)씨는 떨리는 목소리로 “내 생애 가장 감격스러운 순간”이라고 말했다.

‘민속옷 전시회’란 이름으로 이날 오후 6시15분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된 쇼는 우리 옷을 통해 남북의 진한 동포애를 확인한 무대였다.

이날 선뵌 의상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왕과 왕비 복장 등 전통 궁중의상, 조선시대 선비복과 기녀 의상을 모티브로 삼은 100여벌. 남측에서는 박둘선씨 등 여성 모델 16명이 참가했고 북측에서는 피바다 가극단 소속 배우 강일씨(25) 등 성인 배우 3명, 엄유성군(6·평양 경상유치원) 등 아역배우 3명이 찬조 출연했다. 또 평양미술대학 의상학부 소속 대학생 5명은 모델들의 의상 도우미로 진행을 도왔다.

남북한 모델들은 아리랑, 휘파람 등 민요와 북한 가요에 맞춰 화려한 의상으로 무대에 올랐다.

쇼를 관람한 북한 주민 이은경씨(28·평양시 피복 관리국)는 “감동적이다. ‘우리말’처럼 ‘우리 옷’도 ‘하나’임을 확인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날 평양은 낮 기온이 33도를 웃도는 한여름 날씨였지만 500여 좌석은 대학생, 섬유 피복업체 관계자들로 가득 찼다. 또 북측 고위급 인사와 문명자(文明子·72·US아시아뉴스 편집장)씨 등 낯익은 친북 인사들도 참석했다. 북측의 한 관계자는 “6일 열릴 2차 공연에는 훨씬 많은 고위급 인사들이 참석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남북한 첫 ‘합작 패션쇼’라 작은 ‘에피소드’도 있었다.

당초 기녀복을 입은 남측 여성 모델이 선비 복장을 한 북측의 남성 모델을 유혹하며 워킹하는 장면이 있었지만 전통윤리에 맞지 않는다는 북측의 ‘고사’로 급히 변경돼 각자 워킹하는 것으로 수정됐다.이영희씨는 생활한복 등 300점을 북측에 기증하고 9일 베이징(北京)을 거쳐 귀국할 예정이다.

<평양〓조인직기자>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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