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제네바합의 신경전… 관계개선 변수로

  • 입력 2001년 5월 17일 18시 36분


미국과 북한이 양국관계의 실질적인 기초라고 할 수 있는 94년 제네바 합의의 준수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가 제네바 합의의 부분적 변경을 고려하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면서 북한이 이에 반발, 제네바 합의에 따른 핵동결 해제를 위협하고 나선 것.

이번 북한측의 언급은 제네바 합의의 이행을 촉구하는 북한식 회담전술의 하나라는 평가가 많지만 북한이 아직 대북정책을 확립하지 않은 부시 행정부를 상대로 으름장을 놓는 상황이어서 앞으로 북-미 대화가 순탄치만은 않을 것이란 예상도 있다.

▼미국▼

제네바 합의에 대한 미국의 공식 입장은 이를 준수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대한 사찰과 검증을 유달리 강조하고 있고 공화당과 보수적인 싱크탱크 일각에선 재협상론을 주장하고 있어 제네바 합의의 큰 틀은 유지하되 일부 보완이나 수정이 추진될 개연성이 높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경수로 대신에 화력발전소를 제공하자는 아이디어도 있지만 북한이 제네바 협상 때부터 경수로만을 요구해왔고 경수로 사업비의 70%를 부담하는 한국도 이에 반대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다만 북한 핵의혹의 검증 문제에 대한 일부 개선이 모색될 수는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익명을 요구한 미평화연구소(USIP)의 한 연구원은 “경수로 핵심부품이 북한에 인도되는 단계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의 핵의혹 검증을 위해 실시하게 돼 있는 사찰을 앞당기는 방안이 논의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네바 협상에 미국측 대표로 참여했던 조엘 위트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은 “IAEA 사찰보다 선행돼야 할 것은 현재 봉인 상태에 있는 폐연료봉을 북한 국외로 빨리 반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북한이 만약 핵동결을 풀고 재처리 시설을 다시 가동할 경우 폐연료봉을 통해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으로선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제외하고 국제통화기금(IMF) 가입을 허용하는 등 ‘카드’를 내세워 북한과의 협상을 타진할 수 있다는 것이 워싱턴 북한전문가들의 전망.

▼북한▼

북한이 16일 조선 중앙통신을 통해 경수로건설 지연 시 전력손실분에 대한 보상을 요구한 것은 제네바핵합의 이행을 미국에 촉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의 대북정책 검토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서고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포용정책으로 가닥을 잡아가는 상황에서 북한이 북-미 대화 재개에 앞서 ‘짚을 것을 짚고 넘어가는’ 북한식 회담전술을 드러내 보였다는 평가다.

통일부 당국자는 17일 “흑연감속로를 되살리겠다는 구체적인 언급을 했지만 2003년까지 200만㎾급 경수로 2기 건설이 지연될 경우 보상해야 한다는 것은 북한이 늘 요구하던 것”이라며 “회담 직전 상대방을 압박하는 전술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아울러 북-미 대화가 시작되기 전 자신들의 입장을 거듭 밝히며 미국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경수로의 화전(火電) 대체 등 제네바합의 수정 논란에 쐐기를 박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

동국대 북한학과 고유환(高有煥)교수는 “가뭄에 따른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의 현재 여건상 과거처럼 핵과 미사일을 지렛대로 한 ‘벼랑끝 전술’을 펼칠 만한 여건은 아니다”며 “미국을 대화의 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메시지”라고 말했다.

<하태원기자·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북미 제네바합의 주요 내용▼

북한과 미국은 북한의 흑연감속 원자로를 경수로 원자로 발전소로 대체하기 위해 협력한다.

(1) 미국은 2003년을 목표 시한으로 총 발전용량 2000㎿의 경수로를 북한에 제공하기 위한 조치를 주선할 책임을 진다.

(2) 미국은 국제 컨소시엄을 대표하여 북한의 흑연감속 원자로 동결에 따라 상실될 에너지를 첫번째 경수로 완공시까지 보전하기 위한 조치를 주선한다.

(3) 경수로 및 대체에너지 제공에 대한 보장서한 접수 즉시 북한은 흑연감속 원자로 및 관련시설을 동결하고 궁극적으로 이를 해체한다.

(4)본 합의후 가능한 조속한 시일내 미국과 북한의 전문가들은 두 종류의 전문가 협의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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