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학술회의]통일환경의 변화와 평화 모색

  • 입력 2000년 11월 12일 20시 00분


《남북 정상회담 이후 급변하고 있는 주변정세 속에서 진정한 한반도 평화구축 방안을 모색하기 위한 학술회의가 11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실에서 열렸다.

한국통일안보학회(회장 박명서·朴明緖·경기대교수)와 한국언론재단(이사장 김용술·金容述)이 주최하고 동아일보 21세기 평화연구소와 통일부가 후원한 이 학술회의는 ①한반도 정세의 변화와 남북관계의 새로운 접근 ②남북한 화해협력을 위한 방안모색 등 2개 주제별로 진행됐으며 20여명의 전문가들이 참석해 주제발표와 열띤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박명서 통일안보학회장은 개회사에서 "전환기를 맞은 남북관계는 급류를 타고 있지만 우리 내부에 갈등과 논란을 심화시켜 나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며 "'역사적인 기회'를 소화해 낼 만한 국내정치 및 시민사회의 커뮤니케이션 구조를 제대로 갖춰야 할 것" 이라고 강조했다.

김학준(金學俊) 한국정치학회장은 기조연설을 통해 "'남한의 국가연합제' 와 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사이에 공통점이 적지 않다고 믿지만 구체적으로 무엇이 공통점인지, 차이점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학문적인 연구가 있어야 할 것" 이라고 지적했다.

김회장은 이어 "남북정상회담직후 국민들이 가졌던 '통일행복감(Unification Euphoria)' 이 희석되고 있다" 며 "정부는 공동선언 5개항의 실천을 위해 국민의 폭넓은 이해를 구하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며 북측도 한국의 여론을 지나치게 자극하는 것은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제1주제- 한반도 정세의 변화와 남북관계의 새로운 접근▼

▽남북정상회담 이후 외교환경의 변화와 정책방향(서동만·徐東晩 외교안보연구원교수)= 재검표를 하는 등 혼란을 빚고 있는 미국대선은 부시후보의 승리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국론분열 양상마저 보이고 있는 미국사회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빌 클린턴대통령의 방북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는 북-미관계의 '정치적 타결' 을 어렵게 만들어 북-미관계 정상화를 소강상태에 빠뜨릴 가능성이 크다.

북-미관계 정상화가 오랫동안 늦춰지면 남북관계는 불안한 국면에 처할수도 있다. 북-미관계 정상화를 앞당기는 것은 남북 양쪽의 공동과제가 될 것이다. 남북한은 6·15공동선언을 약속대로 실천해 평화의지를 확고히 함으로써 미국의 정세변화에 대처할 수 밖에 없다.

남북정상회담은 그동안 국제화 방향으로만 가고있던 한반도문제를 남북 주도로 전환시켰다는 의의를 갖는다. 미국에서 공화당행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기존의 협상기조를 바꾸는 대안을 제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대북정책에서 한국의 입장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이미 남한의 전향적인 대북정책은 민주당행정부에서 조성된 북-미 미사일위기를 극복하고 남북정상회담을 실현시켰다. 미국정부의 대북정책은 '상수' 가 아니라 설득을 통해 바꿀 수 있는 '변수' 라고 하는 주체적 외교자세가 더욱 요구될 것이다.

▽남북관계의 지속가능한 발전 을 위한 전략구성(박형중·朴泂重 통일연구원 연구위원)=남북한은 상이한 체제의 분단국가다. 화해와 협력의 과정이 진행될수록 상호간의 새로운 갈등이 표면화하고 증대될 수 있다. 남북관계가 지속적으로 유지, 발전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구상이 필요하다. 남측은 북한에 현존하는 정치적 현상을 인정하는 기초에서 정책을 취해야 한다.

그러나 현상의 인정은 현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북한의 현상을 인정할 때에만 남북관계의 발전과 북한의 변화가 가능해질 것이다. 하지만 북한변화 전략은 '비간섭적'인 방향에서 이뤄져야 한다. 간접적이고 장기적인 변화가 바람직하다. 스스로 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실적인 남북경제 격차를 감안해 남한은 '비대칭적'인 이익의 배분을 용인해야 한다. 그래야만 북한으로부터 남한에 대한 경제협력 요구가 강화될 것이다.

북한정권의 안보우려를 해소해주고, 북한의 경제상황을 개선해주게 되면 북한은 대내외적으로 안정되고, 내부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힘을 얻을수 있는 것이다. 북한이 '개혁 공산주의'로 방향을 잡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북한주민의 정치적, 경제적 생활처지를 개선시켜야 한다.

최소 3년이상 걸릴 남북관계의 상당한 진전과 제도화 시기까지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북한에서 확고한 권위를 유지하고 내부 정치적 불안정 요인을 성공적으로 관리해 나가는것이 긴요하다.

남한의 내부정치가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여야간에 첨예한 대결을 지속할 경우 북한은 남한에서 자신에게 우호적인 세력이 집권하거나 우세를 누리도록 남한 내부정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려형태의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높다.

▽토론=북한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와 남한의 국가연합이 어떤 면에서 공통점을 갖느냐에 대한 지적이 나왔고, 북한이 실질적으로 변화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보다 엄중한 잣대에 따른 판단이 중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경기대 남주홍(南柱洪)교수는 "연방제 통일방안은 아직도 통일개념을 '민족해방' 으로 보고 있다" 며 "현재 진행되고 있는 북한의 변화는 흡수통일을 싫어하는 북한지도부의 '체질개선' 일 뿐 근본적인 변화의지는 아니다" 고 주장했다.

이에 서동만교수는 "6·15공동선언에서 언급한 낮은단계의 연방제는 '브랜드' 만 연방제지 사실상 우리의 국가연합과 다르지 않다" 며 "북한지도부는 체제생존을 위해 연합제가 현실적으로 유리하다는 인식하에 실질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김창근(金彰瑾)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 사회의 대북정책 논의가 정략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정치권에서는 대북정책 기조에 대한 수정이 논의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 이라며 "통일정책에 있어 대국적이고 초당적인 공감대 확산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제2주제- 남북한 화해협력을 위한 방안모색▼

▽남북이산가족 상봉의 문제점과 제도화(최성철·崔成哲 한양대교수)=남북이산가족의 상봉은 인도적 견지는 물론 남북관계 개선과 통일기반 조성을 위한 초석이다. 서독과 동독, 월남과 월맹, 남예멘과 북예멘 등은 친족방문 등을 시발로 정치, 경제, 군사 등의 교류를 발전시켜 결국 통일을 이룩했다.

중국과 대만관계에 있어서도 친족방문 관광 등의 명목으로 인적교류가 전면 허용되고 있으며, 서신교환과 전화통화에도 제한이 없다.

남북한도 당국간 합의에 의해 이산가족 해결과정이 시작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시범적 상봉사업만 이뤄지는 현단계에서 상봉의 제도화 단계로 넘어가자면 북측도 이 문제의 해결이 스스로에게 불리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결국 이산가족문제 해결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의 대북협상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대한 과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이산가족 문제가 인도주의적 문제라고 하더라도, 다른 문제들과 포괄적이고 탄력적으로 연계하는 상호주의 를 지키는 것이 효과적 방법이다.

이산가족 문제가 어려움을 겪는 바탕에는 이 문제를 순수한 인도주의 문제로 인식하는 우리와는 달리 북한은 고도의 정치문제로 인식하는데 있다. 북한은 이산가족 상봉이 체제에 미칠 부정적인 파급효과를 우려해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이다. 이산가족문제 해결에는 남북한 시각차 극복이 급선무다.

아울러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 상봉자 확대, 납북자가족문제 해결, 상설면회소 설치 등이 시급하다.

▽김대중(金大中)정부의 남북화해 정책과 정치커뮤니케이션(김재홍·金在洪 동아일보 논설위원)=남북정상회담과 6·15공동선언이 이뤄지기 전 남북화해정책에 대한 언론 논조는 매우 비판적이었으니 정상회담이후 논조는 확연하게 중간지지와 지지쪽으로 옮아갔다. 이는 김대중(金大中)정부의 남북화해 정책이 가시적 성과를 일궈냄에 따라 언론 논조가 바뀌지 않을 수 없었음을 뜻한다.

현정부의 정책은 처음에 비(非)정치·군사 분야에서의 교류와 협력을 활성화하면 남북한간에 긴장완화가 이뤄지고 평화체제를 구축할 수 있다는 기능주의적 사고에서 출발했다.

이제는 비정치 분야의 교류협력에 그칠 것이 아니라 남북한 당국이 함께 나서서 제도적인 정책의 틀로 다루는 신기능주의적 방법을 적용할 때가 됐다. 북한의 식량과 농수산 생산문제를 남한 정책당국이 직접 지원하고 관리해주는 '정책연합' 으로 들어가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남북경제공동체나 국가연합제의 기초가 될 수 있다.

일부 식자들은 남북연합제를 '통일방안' 이라고 보고, 지금 논의하기는 이르다고 비판하지만 그것은 통일방안이 아니라 '평화관리방안' 임을 알아야 한다. 아직도 확실치 않은 한반도 평화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장치가 바로 남북연합일 수 있다는 점에서 남북한 내부와 남북한 당국간에 이를 본격 논의할 수 있다고 본다.

▽토론=북한이 이산가족문제 해결을 내심 꺼려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인도주의적 문제로만 볼수 있는지를 두고 격론이 벌어졌다.

김희오(金喜午)동국대 법정대학장은 "'특수관계'인 남북관계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인도적 측면만을 강조한 국제법적 이상주의로 이산가족 문제에 접근한다면 오히려 냉전체제의 악령이 되살아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이동진(李東眞)아태재단 연구실장도 "힘의 균형을 논할 수 없는 중국-대만관계와 남북문제를 비교하는 것은 곤란하다" 며 "이산가족문제는 남북문제이지만 남북이 독자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최성철 교수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으려면 국제인권규약을 준수하고 이산가족 상봉의 제도화와 면회소 설치를 받아들여야 한다" 고 강조했다.

백진현(白珍鉉)서울대교수는 "대북정책에 국민적 합의가 중요하지만 정부가 하는 모든 정책을 무작정 지지할 수는 없으며 일부 언론이 대북보도에 있어 사실 전달을 두려워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며 "대북정책에 대한 국가적 합의와 정책에 대한 합리적 비판이 조화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리=하태원기자>scooo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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