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상봉]손에 든 선물꾸러미 사연도 가지가지

  • 입력 2000년 8월 13일 23시 37분


‘이 가락지로 끊어진 50년의 세월을 잇고, 이 운동화를 신고 꽁꽁 언 망각의 강을 건너자꾸나.’

북의 혈육을 찾아가거나 맞이하게 될 남쪽의 이산가족들은 애끊는 사연과 절절한 정성이 담긴 선물을 한아름씩 마련했다. 옷가지 하나라도 더 넣기 위해 커다란 여행용 가방들을 몇 번씩이고 풀어야 했다.

▼"버선발 피란 생각 운동화 챙겼죠"▼

14일 북의 막내아들 김병길씨(54)를 만나러 가는 서순화씨(81·여)는 두터운 운동화를 가방 가장 깊은 곳에 꼭꼭 여며뒀다. 사납도록 추웠던 50년 겨울, 나막신에 해진 버선발로 피란길에 나섰던 병길씨는 꽁꽁 언 대동강을 건너며 “엄마, 발이 시려” 하며 연방 칭얼댔다. 안쓰러운 마음에 “2, 3일 뒤에 돌아올게” 하며 할아버지와 함께 집으로 돌려보낸 것이 생이별의 시작이었다. 서씨는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던 아들을 위해 옷가지도 많이 넣었다”면서 눈물을 훔쳤다.

▼"손목시계 동생이 부러워했거든요"▼

남동생을 만나러 가는 한금녀씨(77·여)가 고른 선물은 손목시계. 동생은 당시만 해도 신기한 물건이던, 한씨가 손목에 두른 손목시계를 부러워했다. 한씨는 “하지만 동생은 막상 흥남 부두에서 헤어질 때 내가 건네주는 시계를 한사코 받지 않으려 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북의 아내를 찾아가는 염대성씨(78)는 변변한 예물 하나 마련해주지 못했던 게 마음에 걸려 금가락지를 준비했다.

남측 이산가족들의 선물꾸러미에는 이처럼 특별한 사연이 담긴 선물들 이외에 금반지 시계 등 ‘전쟁 세대의 환금성 귀중품’과 옷가지 약품 우산 화장품 등 생활필수품이 많았다. 북의 아들을 만나러 가는 남쪽 어머니는 며느리와 손자들에게 줄 선물도 잊지 않았고 북의 형을 맞는 남의 동생은 형수와 조카들 선물도 정성껏 마련했다. 대부분 현금도 1000달러 한도껏 모두 준비했다.

▼北에둔 자식위해 보약 준비도▼

자식을 위해 보약을 준비한 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딸의 건강을 지켜줄 수호신으로 부처를 새긴 도장을 마련한 어머니도 있었다.

“살림에 보탬을 주겠다는 생각보다 정말 꼭 필요한 것을 전해주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다.” 13일 지방에서 올라온 방북 이산가족들을 맞은 서울 워커힐호텔 관계자의 말이다.

<이철용기자>lc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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