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장관급회담/양측제안 주요내용]

  • 입력 2000년 7월 30일 23시 50분


《30일 열린 남북장관급회담에서 양측은 ‘6·15 공동선언’을 이행하기 위한 제반 과제들을 집중 논의했다. 남북은 이날 모두 7개항(남 6개항, 북 3개항, 2개항 공통)의 이행과제를 내놓고 논의를 계속했으며 이 중 판문점연락사무소 복원과 8·15 민족화해주간선포 등 거의 대부분의 항목에서 의견접근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이 한 차례의 회담에서 이처럼 폭넓게 의견접근을 이룬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이를 항목별로 정리해 본다.》

▼1.연락사무소 복원▼

남북이 판문점 연락사무소의 기능을 복원하는 데 합의한 것은 남북 당국간 대화시대가 본격화할 것임을 예고하는 상징적 사안이다.

연락사무소는 92년 기본합의서에 따라 남북이 상호 긴밀한 연락과 협의를 위해 설치 운영해오던 기구. 남과 북에서 각각 소장 1명, 부소장 1명과 연락관 5,6명으로 운영됐고 사무실은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과 북측 ‘통일각’에 각각 설치됐다.

그러나 북한은 강릉 무장공비 침투사건 직후인 96년 11월 19일 이 사건을 “남측의 모략”이라고 주장하며 연락사무소 기능을 일방적으로 중단시켰다.

이로 인해 현재 판문점에는 71년 설치된 남북 적십자연락사무소만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당국간 협의채널은 아니다. 따라서 연락사무소 기능이 복원된다면 보다 높은 수준의 남북 당국간 접촉이 이뤄질 것이 분명하다. 연락사무소의 기능이 남북간의 모든 연락업무를 수행하기 때문이다. 특히 연락사무소가 남북간의 각종 왕래와 접촉에 따른 안내 및 편의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향후 남북간에 활발한 접촉과 교류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연락사무소 복원문제는 남북이 이번 장관급회담에서 똑같이 높은 관심을 표명했다는 점에서 연락사무소 설치는 시간문제일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판문점 연락사무소 복원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서울과 평양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해 양측간에 공식적이면서도 안정된 업무연락 및 접촉 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김영식기자>spear@donga.com

▼2.군사직통전화 설치▼

남북장관급회담에서 남측은 군사분야에 대한 포괄적 제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사직통전화(핫라인) 설치, 부대이동과 군사훈련의 통보 및 참관, 군인사 교류 및 정보 교환, 단계적 군축,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 등이 그것.

이중 군사직통전화 설치는 양측 모두 공감대를 갖고 있는 사항. 이는 기본합의서에도 나와 있듯이 ‘우발적인 무력충돌과 그 확대를 방지’해 군사긴장을 크게 완화할 수 있기 때문. 그러나 남북이 이에 원칙적으로 합의했다 하더라도 세부 분야에 들어가면 기술적 난점이 만만치 않다.

가장 큰 어려움은 군사당국자로 누구와 누구를 잇느냐는 문제. 이는 양측간 군제(軍制)의 차이로 인한 것. 남측 국방부장관은 군정 군령권을 모두 갖고 무력을 통솔하며, 합참의장은 국방장관의 군령기능을 보좌할 뿐이다. 반면 북측의 경우 무력통솔은 국방위원장→총참모장(합참의장격)→작전국장으로 이어지며, 인민무력상(국방장관격)은 군수지원 등 군정권만 갖고 있다. 이 때문에 국방장관―인민무력상, 합참의장―총참모장간의 연결 모두 권한면에서 서로 맞지 않는다는 난점이 있다.

직통전화를 어떻게 가설하느냐는 것도 문제. 유선전화만 가설할 경우 운용방식은 남북적십자간 직통전화 방식을 원용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남측은 정보시대에 맞게 동영상과 팩스까지 교환할 수 있는 라인 설치를 제의해놓고 있다. 이 경우 서울과 평양을 동축케이블로 연결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문철기자>fullmoon@donga.com

▼3.8·15 민족화해 주간▼

남북장관급회담에서 ‘8·15’ 전후 1주일을 ‘민족화해주간’으로 공동 선포키로 합의함에 따라 55년전 광복의 기쁨을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이 함께 누리게 됐다.

민족화해주간 선포는 정부가 얼마 전부터 행정자치부를 중심으로 은밀한 준비 작업을 벌여왔고, 관계 기관간에 이미 여러 차례 회의까지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민족화해주간 선포에 대해 남북이 쉽게 합의한 것은 북측이 준비한 안에도 이와 유사한 개념의 ‘8·15’행사 계획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

북측은 30일 장관급회담에서 ‘8·15전후 남북 및 해외동포가 참여하는 행사 개최’안을 우리측에 제시했다. 양측은 상대안이 가진 유사성을 확인한 뒤 행사 제목은 우리측 안대로 하되, 그 내용은 남측안과 북측안을 절충해 치르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남북이 화해주간에 어떤 행사를 치를 것인지 구체적인 방안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남북 화해의 이정표가 된 정상회담의 정신을 살리고, 분단으로 인해 고통받아온 남북 및 해외동포의 상처를 치유하는 상징적인 행사들이 대거 준비될 것으로 보인다. 쉽게 할 수 있는 행사들로는 통일음악회나 남북 작품 전시회 등이 얘기되고 있다.

판문점에서 남북 공동 행사가 치러질지도 관심이다. 다만 북측대표단이 유엔관리지역이라는 이유로 판문점이 아닌 항로를 이용해 서울을 찾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판문점 행사가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4.경의선 복구▼

경의선 복구사업은 남북정상회담 이후 최우선으로 꼽혀온 경제협력 과제. ‘6·15 남북공동선언’에서 명시한 민족경제의 균형적 발전과 교류 촉진의 정신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민족경제의 대동맥을 이을 수 있는 경의선 복구가 시급하다는 점에 남북 대표단은 공통된 인식을 내보였다.

경의선이 복구되면 그 경제적 파급효과가 엄청날 것이라는 전망. 남북간에 끊어진 철도를 연결해 북한 지하자원 등을 반입할 경우 북한은 운송수익을 얻고 남한은 물류비용을 절감하는 등 서로 경제적 이익이 크다는 것.

나아가 경부고속철도와의 연계를 통해 부산∼대전∼서울∼평양∼신의주를 거쳐 만저우(滿洲)와 유라시아 대륙으로 이어지는 거대 교통망을 확보할 수 있게 돼 ‘한반도 경제권’이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다.

뿐만 아니라 남북 긴장의 상징인 판문점을 통과해 평양과 서울을 곧바로 연결한다는 점에서 정치적 의미는 물론 국제 신인도에 미치는 영향도 작지 않다.

경의선의 미연결 구간은 총 20㎞로 남쪽이 문산∼장단간 12㎞, 북쪽이 장단∼봉동간 8㎞ 가량. 현재 남측 단절구간에 대해선 이미 정부가 용지매수와 실시설계까지 끝낸 상태여서 북측과 구체적인 합의만 이뤄지면 언제라도 공사에 착수할 수 있다. 경의선 복구에 필요한 총비용은 1500여억원, 공사기간은 1년 정도로 전망되지만 북측 구간의 지반이 약해 이를 보강하는 과정에서 다소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철희기자>klimt@donga.com

▼5.임진강 공동수방사업▼

남북이 원칙적인 의견접근을 본 것으로 알려진 임진강 공동 수해방지사업은 남북협력사업의 우선순위를 점해왔다.

임진강의 지리적 위치를 감안할 때 남한 단독의 수방대책은 실효성을 기대할 수 없는 데다 북한도 개성 등 임진강 유역 농경지가 물에 잠기는 피해를 거의 매년 겪어 대책마련이 절실한 입장.

이 때문에 정부는 지난해 8월에 이어 정상회담 직후인 6월 말경 경기 북부지역의 만성적 수해방지를 위해 북측에 이 사업의 공동협력을 공식 제의했고 북한도 이에 적극적인 태도를 보였다는 후문.

임진강은 유역면적 8117㎢ 가운데 5108㎢가 북측 지역일 뿐만 아니라 강의 총길이 254.6㎞ 중 92㎞만이 남측 지역을 흐르고 있어 상류인 북측 지역에 대한 수방대책 없이는 홍수시 하류의 경기 파주 동두천 등의 침수가 불가피한 상황.

정부는 일단 임진강 상하류 일대의 강우량과 수위 기록 등 남북 양측이 보유한 자료를 교환하고 수자원 전문가들로 현장조사팀을 구성해 수계별 둑의 폭과 높이 등을 결정한다는 방침. 임진강 유역에 홍수경보시설을 공동으로 설치하고 하천 준설 및 골재채취, 둑 축조 등 치수사업도 벌이기로 했다.

정부는 장기적으로 임진강 상류에 댐 건설을 추진키로 하고 이미 도상 분석과 항공위성 영상자료 분석 등을 통해 최적 후보지까지 설정해놓은 상태.

그러나 댐 건설 비용 분담 및 건설부지 선정 등 북한과 추가적으로 협의해야 할 분야가 적지 않다.

<선대인기자>eodls@donga.com

▼6.체육 단일팀 구성▼

국제 체육행사에서의 ‘남북단일팀 구성’은 남북이 하나의 유니폼, 하나의 깃발을 들고 함께 뛰자는 선언적 의미로 볼 수 있다. 스포츠 행사는 다른 분야와는 달리 비교적 교류 협력이 쉽지만 적대감 해소와 민족애 고취 효과는 더 크다는 장점이 있다. 미국과 중국도 핑퐁외교로 관계개선의 단초를 마련했다.

남북도 그동안 다른 분야보다 체육분야에서만큼은 많은 대화와 협력을 해 왔다. 이번 합의는 민간 체육계만의 협력 차원을 넘어 양측 정부가 뒷받침이 된 포괄적인 협력 및 교류의 실현을 약속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남북은 우선 9월16일 개막되는 시드니 올림픽 개회식 때 공동입장하고 이후 △오사카 세계탁구선수권대회 △레바논 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아르헨티나 세계청소년축구대회 △2002년 부산아시아경기 △2002년 월드컵 등에서 단일팀과 공동응원단을 구성하는 방향으로 교류 협력을 추진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또 한일 양국이 공동 개최한 2002년 월드컵의 북한 분산개최도 가능성이 높아졌다. 남북 간에는 그동안 월드컵 분산개최를 위한 깊숙한 협의가 이뤄져 왔다.

남북 간의 체육 직교류 방안도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대표적인 사업은 경평축구 부활과 축구대표팀 교환경기 문제. 박지원(朴智元)문화관광부장관은 최근 “8월중 서울과 평양을 오가는 교환경기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와는 별도로 연 2회에 걸친 남녀 축구대표팀 간의 교환경기도 협의 중”이라고 말한 바 있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

▼7.조총련 남한 고향방문▼

북측이 장관급회담에서 조총련계 동포의 남한 고향 방문을 제의한 뜻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북측의 제의 의도는 남북정상회담이후 화해 협력 분위기가 일고 있는 가운데 북한 국적의 재일동포에게 고향 방문이란 ‘선물’을 안겨 주기 위한 차원으로 해석했다.

정부 관계자들은 조총련계 동포의 남한 고향 방문 가능성에 대해 “매우 높다”고 밝혔다. 과거 전례도 있는데다 인도적 차원에서도 이를 거부할 이유가 없다는 것. 따라서 빠르면 올 추석 때부터라도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조총련계 재일동포가 고향 성묘를 위해 남한 땅을 집단으로 밟았던 것은 박정희(朴正熙)정권 때인 70년대 중반. 당시 정부는 조총련계 동포를 포섭하기 위해 ‘모국방문사업’을 펼쳤다.

유신 정권은 국내 반체제운동이 활발해지자 이런 분위기를 누르기 위해 조총련계 동포에게 “과거 전력을 묻지 않을 테니 서울을 방문하라”고 제안했던 것.

그 배경에는 남쪽이 북쪽과의 체제 경쟁에서 우월하다는 판단과 함께 반한(反韓)활동의 거점을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조총련계 동포들은 75년 9월 700명의 제1진 방문단을 시작으로 몇 년간 수만명이 추석에 고향 성묘를 다녀갔고 서울에서 시민환영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정부 관계자는 “남북 이산가족이 만나는 마당에 재일동포라고 해서 특별한 제한을 할 필요가 없다”며 “회담을 통해 정치적으로 타결이 쉬울 것이라는 판단에서 북측이 제안한 게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김영식기자>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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