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러-日의 시각]"냉전서 화해로 극적인 반전"

  • 입력 2000년 6월 15일 04시 21분


《남북한 정상의 역사적인 공동선언은 한반도에는 물론 아시아지역, 나아가 세계 정세에도 긴장완화의 훈풍을 불게 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한반도 주변의 4강인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와 남북한 관계에 상당한 변화를 일으켜 평화통일의 초석을 만들 수 있는 호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4강이 무조건 남북한의 화해를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한반도의 극적인 정세변화가 4강에 ‘새로운 고민’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부정적 전망을 하기도 한다. 전문가와 정부관계자 그리고 언론 보도 등을 통해 남북 공동선언에 대한 4강국의 평가와 전망을 조망한다.》

▼미국▼

한반도 주변 4강중 남북한과 가장 밀접한 관계에 있는 미국의 반응이 역시 가장 극적이다. 미 CNN방송은 14일 오전9시 (한국 시간 14일 오후10시) 톱뉴스로 남북한이 5대원칙에 합의했다는 급보를 전하면서 “남북한 두 정상이 한반도에서 반세기 동안의 냉전을 완화시키기 위한 합의에 서명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미국의 블룸버그통신도 “이는 현 상황에서 매우 값진 진전”이라며 “이번이 (한반도의) 전후 1세대에게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앞서 필립 리커 미 국무부 대변인은 13일 “이번 회담이 한반도에서 근본적인 긴장을 줄여 나가는 과정의 출발점이 되기를 희망한다”며 “남북한간의 지속적인 대화는 한반도의 평화와 긴장 제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미국 정부의 지지를 밝혔다. 리커 대변인은 “이번 회담은 매우 중요하고 역사적인 단계”라며 “남북한은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위한 대화 단계에서 대단히 중요한 시점에 도달했다”고 평가했다.

한반도 등 동아시아 문제에 관한 세계적 석학인 로버트 A 스칼라피노 박사 (미국 버클리 소재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도 전화 인터뷰에서 “북한은 현재 경제와 외교 등 여러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변화를 모색하고 있으며 그같은 변화가 정상회담으로 나타났다”며 “북한이 정상회담에 응한 것은 북한이 취해 온 과거의 입장이 종식되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같은 반응은 미국이 북한에 대해 ‘어떤 제스처’를 취할 수도 있다는 움직임에 의해 더욱 분명해진다. 뉴욕타임스지는 13일 사설에서 “남북한이 이처럼 평화적인 관계로 나아간 일은 어느 때도 없었다”며 “북한이 자초했던 외교적 고립 상황에서 벗어나 국제사회로의 통합을 꾀하기 시작한 만큼 (북한이) 위험한 불량국가(rogue state)로 취급받지 않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도 좋을 것”이라고 전망했다.북한의 고립은 미국의 테러국가 지정에 큰 영향을 받은 것이어서 미국의 시각 변화는 향후 북한의 국제사회 진입을 위한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미국은 이와 함께 25일 이전에 대북한 경제 제재 완화 조치의 내용을 확정, 연방 관보에 게재할 것으로 알려졌다.그러나 뉴욕타임스는 “미 행정부가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 구축에 나선 이유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 계획 때문”이라며 “이런 우려는 여전히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고 남북한의 합의가 북-미 관계의 완전한 해빙의 출발점이 되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워싱턴〓한기흥특파원>eligius@donga.com

▼중국▼

중국은 이번 남북한 정상회담이 냉전체제의 종식과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를 확립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다고 평가하면서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중국 신화통신은 14일 오후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이 예상을 벗어난 장시간의 회담을 통해 남북한간 대립을 평화와 안정이라는 화해구도로 바꾼 소식을 빠르게 타전했다. 이 통신은 남북정상이 장시간의 회담을 통해 남북한 화해와 평화통일 긴장완화 이산가족상봉 교류확대 등에 합의했다고 전하고 한반도의 새로운 평화무드가 조성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중국정부는 그동안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에 적극적인 역할을 할 것임을 거듭 강조해왔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성사에는 중국이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는 분석도 중국 국내외에서 나오고 있다.

중국의 기본적 입장은 한반도 문제를 남북한 당사자가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그러면서 한반도문제 해결에 외부세계가 간섭하는 것을 경계해왔다. 이번 남북한 정상회담의 결과는 중국의 이같은 입장과 부합한다는 게 중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중국 사회과학원 아시아태평양연구소 박건일(朴鍵一·38)연구원은 14일 “남북 정상회담을 통한 이번 합의는 남북한 냉전체제에 종지부를 찍는 역사적인 거보”라며 “향후 남북한이 실천을 통해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 남은 과제”라고 말했다.지린성 사회과학원 조선한국문제연구소 장잉(張英)소장도 “이번 합의는 남북한 관계 개선뿐만 아니라 중국과 미국 등 주변 4강의 기대에도 부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중국내 외교소식통들은 앞으로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정세에 큰 변화가 일게 될 것이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하고 주변국들의 의사를 남북 쌍방이 적극 반영하면서도 양자간의 합의를 견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고 밝혔다.한편 중국은 남북한 관계개선이 중국-대만관계의 변화에도 크나큰 압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이 남북한 정상간 합의를 계기로 대만과의 관계를 새로 정립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베이징〓이종환특파원>ljhzip@donga.com

▼러시아▼

러시아 정부는 14일 전에 없이 신속하게 남북 공동 선언을 환영하고 나왔다.

러 외무부는 이미 13일 알렉산드르 로슈코프 외무차관과 14일 알렉산드르 야코벤코 외무부 대변인이 관영 이타르타스통신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큰 기대를 보인 바 있다.

러시아 외무부는 특히 14일 대변인 논평을 통해 남북정상이 긴장완화와 화해의 원칙에 합의하는 것은 동북아 지역의 안정에 기여해 러시아의 국익에 완전히 일치한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이타르타스는 이것이 이번 정상회담을 러시아의 국익차원에서 받아들인 것이라고 풀이했다.

특히 러시아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다음달 19일 북한을 방문해 직접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으로부터 남북정상회담 결과를 설명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이타르타스는 푸틴이 약 17시간 동안 러시아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면서 러-북관계 정상화가 가장 큰 의제가 될 것이지만 남북한 문제도 틀림없이 논의될 것으로 예상했다.

남북한 정상이 합의한 5개항 외에도 러시아가 가장 큰 관심을 갖는 것은 북한 미사일 개발문제. 이것이 한반도의 안정을 가장 위협하는 요소로 보기 때문이다. 게오르기 톨로라야 외무부 아주1국부국장은 “러시아의 한반도 정책의 핵심은 안정과 평화의 유지”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남북한의 관계정상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유리 바닌 동방학 연구소 몽골-한국과장은 한반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등 이 지역에 대한이해관계가 크지만 산적한 국내문제 때문에 극동쪽에 외교력을 집중하기 어려운 러시아로서는 분쟁이나 정세불안을 피하면서 러시아의 국익을 찾는 것이 기본적인 목표라고 분석했다. 푸틴정부는 전에 없이 외교목표를 향해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왔다. 전격적인 북한 방문결정도 이렇게 이뤄졌다. 러시아는 남북한의 화해를 러시아가 한반도에 접근할 수 있는 유리한 기회라고 판단하고 있다. 올해 푸틴이 남북한을 차례로 방문하는 것을 계기로 남북한과의 관계를 균형있게 발전시키고 이 지역에 일정한 영향력을 유지하게 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kimkihy@donga.com

▼일본▼

일본 정부는 남북이 5개항에 합의하는 등 성과를 거둔데 대해 한반도 등의 긴장완화에 기여할 것이라며 환영을 표시했다. 한반도의 긴장이 당사자간의 대화를 통해 완화될 경우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의 안전보장에 크게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하에 일본은 다음달 오키나와(沖繩)에서 개최되는 G8정상회의 의장국으로서 이번 남북정상회담의 성과 등 관계 개선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를문서로 표시할 방침이다.

고노 요헤이(河野洋平)일본 외상은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문이열렸다”면서 회담 성과에 강한 기대감을 표명했다.

일본은 그러나 한편으로는 한미일 3국 가운데 일본의 대북 대화가 가장 늦어지고있는데 대한 경계감을 드러내면서 이번 회담의 결과가 앞으로 북-일 국교정상화협상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지 신중히 분석하고 있다.특히 이날 2차 정상회담에서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에게 미일 양국과의 관계 개선을 촉구한데 대해 김위원장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 NHK방송은 남북한이 5개항에 합의한데 대해 밤 9시와 10시 뉴스에서 전문가의 해설을 곁들여 가며 집중 보도했다.

이 방송은 “큰 기대를 걸어서는 안된다는 경계섞인 전망이 있었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이번 합의는 대성공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하면서 “서울에서 제2차 회담이 이뤄질지와 앞으로 어떻게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세워나갈지가 초점”이라고 보도했다.특히 이 방송은 김위원장의 발언을 집중 분석, 탈북자에게도 관심을 보이는 ‘배짱’을 나타냈고 자신이 큰 인물이 아니라고 말해 사실상 큰 인물이라는 점을 과시했으며 고 김일성(金日成)주석과 비슷한 풍모를 나타냄으로써 앞으로 정상회담에 충분히 임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고 분석했다.

아사히신문도 1면 톱으로 이 사실을 보도하면서 “남북한이 신뢰조성의 길로 들어섰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김위원장이 농담을 섞어가며 제2차 정상회담을 이끈 사실과 김위원장의 육성이 처음으로 장시간 노출된데 대해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한편 요시다 야스히코(吉田康彦)일본 사이타마대 교수(국제관계론)는 앞으로 남은 과제와 관련, “북한은 김위원장을 정점으로 한 사회주의 체제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특히 남북한 화해와 평화통일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국가보안법 철폐나 주한미군 주둔 철수를 요구할 텐데 한국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 지적하면서도“그러나 시계바늘이 거꾸로 가진 않을 것이므로 이번 합의를 첫걸음이라는 생각으로 앞으로의 협상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도쿄〓이영이특파원>yes202@do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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