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 재협상 전망]'DJ 뜻' 통할 지 불투명

  • 입력 2000년 1월 17일 20시 06분


여야가 잠정 합의한 선거법 등 정치관계법 개정안에 대한 여론의 거센 비판이 일고 있는 가운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17일 국민회의 지도부에 재협상을 지시해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김대통령이 이날 재협상을 지시한 부분들은 정치권의 ‘밀실담합’과 집단이기주의적 제몫 챙기기에 의해 개악(改惡)됐다는 비판을 받아온 조항들. 그러나 김대통령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이들 정치관계법 재협상이 순탄하게 진행될지는 매우 불투명하다. 여야 3당이 총선을 앞두고 비난여론을 의식, 불가피하게 재협상에 응하겠다고 밝혔으나 막상 각론에 들어가면 여전히 ‘3당3색’의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야당측은 김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재협상이 이뤄지는 데 대해 심한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어 이 점도 협상의 중요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국민회의는 김대통령이 지시한 △도농통합지역 예외조항 삭제 △선거자금 국고보조금 50%인상 재검토 △선거사범 공소시효 6개월 환원 △시민단체의 선거운동을 불허하는 선거법 87조 삭제 △정치자금 100만원 이상 수표사용 △ 여성 비례대표 30% 할당제 도입 등을 중심으로 재협상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국민회의 지도부조차 “우리는 3분의 1 의석밖에 안되기 때문에 자민련과 한나라당이 반대하면 묘안이 없다”며 협상에 한계가 있음을 주장하는 입장이다. 자민련도 일단 비난여론을 감안해 원점에서 재검토키로 당론을 모았으나 구체적인 협상 원칙도 정하지 않은 상태다. 다만 부산의 해운대-기장 지역구가 현행 2개에서 3개로 분구되면 여야가 합의한 선거법 개정안을 수용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현행 선거법으로 가도 좋다는 입장이다.

한나라당은 여권이 주장해온 1인2표제와 중복출마 ‘석패율(惜敗率)’제도부터 재협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 당직자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는 것은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1인2표제 도입 문제부터 재검토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특히 재협상에 앞서 “김대통령이 먼저 협상에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국민 앞에 공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현행 선거법으로 4월 총선을 치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전망이 적지 않다. 국민회의 이만섭(李萬燮)총재권한대행도 “현행법대로 가는 한이 있더라도 국민의 뜻을 거슬러 개악으로 갈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에서 이미 인구 상하한선이 4대1이 넘는 선거구에 대해 위헌판결을 내린 상태여서 현행 선거법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 따라서 여야는 △위헌소지가 있는 선거구를 조정하고 △도농통합지역 예외조항을 삭제하며 △선거사범 공소시효를 6개월로 원상복귀하는 데 합의한 뒤 선거법 87조 폐지와 정치자금 국고지원 확대 등에 대해서는 절충점을 모색하는 선에서 재협상을 타결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양기대기자>k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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