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뒤집는 정치인들…속 뒤집히는 국민들

  • 입력 1999년 7월 22일 19시 13분


정치인들의 ‘말과 글’ 유린이 극에 이르고 있다.

최근 공동여당이 벌인 이른바 ‘2여(與)+α’방식의 신당창당론 소동은 정치인들의 말에 실리는 ‘신뢰’의 무게를 송두리째 소멸시켜버렸다. 그리고 이제 이 나라 정치지도자, 특히 여권수뇌부는 무슨 말을 해도 ‘믿음’을 얻을 수 없는 비극적 상황을 자초하고 말았다.

▼DJP합의 파기▼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 그리고 자민련의 박태준(朴泰俊)총재는 21일 청와대 3자 회동을 통해 DJP합의의 핵심골자인 ‘99년말 내각제 개헌’을 유보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세 사람은 위약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물론 대국민 사과도 없었다.

공동여당은 그동안 줄곧 ‘97년 대선승리〓내각제 개헌에 대한 국민동의’라는 논리를 전개해왔다. 김총리는 “대통령선거 때의 합의는 헌법과 같다”고까지 주장해왔다. 그렇다면 그 약속을 이행하지 않을 때도 국민적 동의가 필요하다. 하지만 공동여당은 김대통령과 김총리 두 사람의 타협으로 국민적 약속을 ‘없었던 일’로 만들어버렸다.

▼둘러대기와 말바꾸기▼

국민회의 한화갑(韓和甲)사무총장은 20일 박태준총재의 ‘8월 무한대 정계개편 완료’ 발언이 공개되자 “박총재의 말이 사실이라면…”이라는 단서를 달아 정계개편과 관련한 여러가지 얘기를 했다.

그는 이튿날인 21일 당8역회의에서 “실세(實勢)라고 하는데 (신당창당론을) 모른다고 하기도 그렇고 해서 말하게 됐다. 실수했다”고 해명했다는 것. 그러나 한총장은 이같은 해명이 공개된 후 “사무총장이 그렇게 무책임한 말을 할 수 있겠느냐. 그런 말을 한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한 회의 참석자는 “한총장의 그같은 해명이 끝나자 이만섭(李萬燮)총재권한대행이 ‘정치인은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해서는 안된다’고까지 했다”고 전했다.

또 21일 한나라당 조순(趙淳)명예총재를 만난 사실이 밝혀져 파문이 일었는데도 한총장은 측근을 내세워 회동 사실 자체를 부인하다 나중에는 “야당 때부터 절친한 사이라 가끔 만나 훈수를 받는다”고 번복했다.

조명예총재는 한총장과의 회동 직전 보도자료까지 내고 “‘2여+α’가 뭔지도 모르며 이와 관련한 어떠한 것도 사실무근”이라고 했었다.

▼무책임한 발언▼

자민련 박총재는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공동여당 소속 광역의원 모임에 참석했다 이만섭대행이 이 날짜 석간에 보도된 그의 ‘8월 무한대 정계개편 완료’가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자 “기자들이 하도 묻기에 ‘장난삼아’ 한 말이고 다들 웃고 말았는데 석간신문이 그냥 보도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또 김총리는 21일 자신이 신당 창당에 합의한 것으로 보도되자 총리 공관에서 두문불출하면서 “정치고 총리고 다 그만두겠다”고 소리치다 다음날에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총리 역할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얼마전에는 국민회의 김영배(金令培)당시 총재권한대행이 자신의 특별검사제 확대수용 방침에 대해 ‘이의’를 다는 듯한 발언을 하자 김총리는 “이제 (국민회의와) 헤어질 때가 됐구먼”이라고 언급, 일파만파를 일으켰다.

그러나 김총리는 국민회의가 사죄에 나서자 언제 그랬느냐는 듯 “오랜만에 소리를 쳤더니 스트레스가 다 풀렸다”고 말해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기도 했다.

〈김창혁기자〉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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