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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1999년 2월 6일 20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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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통령은 당초 정무수석 ‘1번 타자’로 이전수석을 내심 점찍었다. 그러나 이전수석에 대해 정치경력이 짧고 나이가 젊다는 이유로 당료 세력이 반발하자 범동교동계인 문전수석을 기용했다. 그러나 문전수석은 불과 3개월만에 이전수석에게 수석직을 넘겼다.
‘화합형’인 문전수석은 김종필(金鍾泌)국무총리 임명동의안 처리과정에서부터 발목을 잡는 한나라당을 대화와 타협으로 설득하려 했지만 정치상황이 그를 돕지 않았다.
안기부 기조실장으로 근무하다 김대통령의 부름을 받은 이전수석은 전략적 사고를 갖춘 ‘실무기획형’이었다. 김대통령의 속내와 의중을 가장 잘 파악해 소리나지 않게 대통령을 보좌했다. 그러나 이전수석은 어쩔 수 없이 사정(司正) 총풍 세풍정국 등 김대통령의 강력한 대야(對野)드라이브의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김대통령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다시 ‘동서화합형’정무수석을 발탁했다. 김대통령의 ‘정국운영 패러다임’이 또 한차례 변화하고 있는 셈이다. 김대통령은 김수석에게 영호남간의 갈등 봉합을 위한 정계개편의 중책을 맡길 것으로 보인다.
정무수석 인선과정을 보면 김대통령의 치밀하고 철저한 용인술(用人術)이 그대로 드러난다. ‘깜짝 쇼’식 인선보다는 복수로 점찍어 놓은 후보들을 정치환경의 변화와 상황에 따라 차례로 발탁하는 형식이다.
〈윤영찬기자〉yyc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