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제적십자마저 등 돌리면

  • 입력 1998년 12월 27일 19시 38분


국제적십자사마저 대북(對北) 식량지원을 중단할 모양이다. 헐벗고 굶주린 곳이면 만사를 제쳐놓고 앞장서는 국적(國赤)이다. 세계 어디를 둘러봐도 기아의 참상이 오늘의 북한만큼 심각한 곳은 드물다. 그런데도 국적은 앞으로 의약품지원만 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북한으로서는 의약품지원도 급하지만 가장 절박한 것이 식량이다.

95년 수해이후 지난 4년동안 북한이 각종 국제기구나 종교단체로부터 무상으로 받은 곡물과 구호품만 하더라도 10억달러어치가 넘는다고 한다. 그러나 그같은 막대한 지원이 모두 어디로 갔는지 도무지 불투명한 게 현실이다. 최근 유엔의 한 통계에 따르면 북한의 두살이하 어린이 30%가 영양실조 상태이고 전체 어린이의 67%가 영양부족으로 정상적인 성장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인구통계국은 북한의 인구가 95년 2천1백55만명으로 정점에 이르렀다가 올해는 2천1백23만명으로 줄었다는 보고서를 냈다. 식량사정이 얼마나 절박하면 인구까지 준다는 통계가 나오겠는가.

상황이 이러한데도 북한당국은 지원식량을 정작 필요한 주민들에게 배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국적의 판단이다. 식량 배급의 투명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지원성과도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적의 식량지원 중단은 북한 당국의 자업자득(自業自得)인 셈이다. 굶주린 주민들을 위해 인도적 목적으로 지원한 식량이 군량미 등으로 전용된다면 누가 선뜻 도울 마음이 생기겠는가. 세계식량계획(WFP)이나 여타 국제기구들도 주저하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북한당국은 무엇보다 식량배급의 투명성을 보장하는 일이 앞으로 국제사회의 식량지원을 효과적으로 받을 수 있는 관건임을 이 기회에 다시 명심할 필요가 있다.

우리정부도 마침 북한 식량난의 심각성을 고려해 이산가족면회소 설치와 대북지원문제를 동시에 해결하자는 상호주의 원칙을 완화할 뜻을 비추고 있다. 그러나 우리도 마찬가지다. 북한당국이 우리의 인도적 지원식량을 군용으로 돌리고 총부리를 남으로 겨냥하게 한다면 북을 도울 명분이 없어진다. 북한당국이 쌀 한톨이라도 정말 굶주린 주민들에게 나누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나서서 증명해야 우리의 대북지원은 계속될 수 있다.

갈데까지 가고 있는 북한의 식량난을 국제사회가 외면해서는 안된다. 국제기구나 조직은 배급의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부단히 북한당국과 접촉해야 한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북한당국이 이제부터라도 민생쪽으로 눈을 돌리는 일이다. 그렇게만 한다면 지금의 어려움은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큰 고비를 넘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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