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풀꺾인 「대쪽」…불안한 「홀로서기」

  • 입력 1997년 12월 21일 20시 24분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명예총재는 그의 자전 에세이 「아름다운 원칙」에서 지난 94년 국무총리직에서 물러난 뒤의 고독감을 이렇게 적고 있다. 『아내와 함께 떠난 여행에서 만난 저녁 노을 아래 듬성듬성 서 있는 인가들을 보니 문득 외롭다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이 스며 나왔다. 숙소로 돌아와 어스름한 방안에 들어섰을 때 아내는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대고 가느다랗게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제 이명예총재가 맞닥뜨려야 할 고독은 그때보다도 훨씬 엄혹하다. 「유력한 다수당 대통령후보」라는 위광(威光)도, 환호하는 군중도, 수행원도, 「대쪽 총리」라는 국민적 성원도 없다. 이명예총재는 지난 19일 기자회견에서 『천만표 가까이 얻은 다수당의 명예총재로서 할 일을 하겠다』며 정치를 계속할 뜻을 밝혔다. 그는 20일 김윤환(金潤煥)고문 윤원중(尹源重)비서실부실장 등과 만나 향후 행보를 논의한데 이어 21일 의원총회에 참석한 뒤 전국 지구당 등을 돌며 감사 인사를 했다. 그러나 이런 의지에도 불구하고 그가 처한 상황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오로지 대통령선거만을 위해 온갖 계보가 「잡탕밥」처럼 섞인 당내에서는 벌써부터 각 계보들의 주도권 쟁탈전이 치열해질 조짐이다. 밖으로는 집권에 성공한 DJP의 거대야당 흔들기와 의원빼가기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핵심측근들은 그에게 『내년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다시 「이회창」을 찾는 목소리가 높아질 때까지 백의종군하라』고 건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정치와 권력의 마력(魔力)을 맛본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알 수 없다. 〈박제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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