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예산심의 이래도 되나

  • 입력 1997년 11월 9일 20시 23분


국회가 국정감사에 이어 내년도 예산안 심의도 엉망으로 하고 있다. 선거철이면 언제나 국회가 소홀해지곤 했지만 이번에는 너무 심하다. 이쯤되면 국회기능이 사실상 마비된 것이나 다름없다. 참으로 개탄스럽다. 올해 정기국회는 대통령선거 때문에 예년보다 회기가 30일 줄었다. 국회 폐회는 오는 18일, 예결위 활동시한은 15일로 예정돼 있다. 그런데도 지난 5일에야 예산안 심의에 들어간 예결위는 재적의원 50명 가운데 겨우 10명 안팎이 참석해 열의도 없이 일정을 보낸다. 어떤 날은 정족수 미달로 유회되고 어쩌다 회의가 열려도 대선 대리전으로 둔갑하거나 지역구 민원예산 따내기 발언이 속출한다. 10일부터 12일까지로 줄여잡은 부별심의도 제대로 될지 의문이다. 이러다간 정당간 담합이나 주고받기로 예산안을 얼렁뚱땅 처리해 버릴 공산이 크다. 일반회계만도 70조3천6백억원이 넘는 예산안을 이렇게 다뤄도 되는 것인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국회는 이제부터라도 예산안 심의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13건의 금융개혁법안, 돈세탁방지법안을 포함한 금융실명제보완법안과 시급한 민생법안들도 꼼꼼히 챙겨 회기내에 처리해야 한다. 대선은 대선이고 국정은 국정이다. 오히려 국정은 대선보다 중요하다. 예산안 졸속처리와 안건처리 지연은 그러잖아도 흔들리는 경제여건과 금융환경을 더욱 어렵게 하고 차기정부의 짐을 그만큼 무겁게 만들 것이다. 국회가 이 모양이 된 것은 의원들이 대선 줄서기에 몰두하고 대선후보들도 세력과시를 위해 의원들을 몰고 다니기 때문이다. 의원들은 국민대표로서의 본분에 충실해야 한다. 국회를 팽개친 채 줄서기나 하라고 의원들을 뽑아준 게 아니다. 대선후보들도 의원들이 의정에 전념할 수 있도록 놓아 주고 독려해야 한다. 의원과 국정을 대선의 볼모로 삼는 후보는 대통령 될 자격이 없다. 이미 여야가 없어졌으니 정부도 예산안과 법안 심의에 초당적 협조를 얻도록 대화의 폭을 더욱 넓혀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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