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T연대」는 언제쯤…박태준씨,TK정서고려 고민

  • 입력 1997년 11월 1일 20시 30분


「DJT연대」의 본격 가동을 의미하는 「DJT회동」은 언제쯤 이뤄질까. 국민회의 김대중(金大中)총재는 DJP후보단일화 협상이 마무리된 직후 한광옥(韓光玉)부총재에게 「밀명(密命)」을 내렸다. 자민련 김종필(金鍾泌)총재 박태준(朴泰俊)의원과 부부동반으로 식사자리를 마련하라는 것이었다. 김대중총재는 DJP협약 서명식(3일)을 갖기 전인 2일중 이 모임이 성사되기를 무척 기대했다. 그러나 일정이 서로 맞지 않아 택일조차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중총재는 지난 7월 박태준의원이 당선인사차 국민회의 당사에 들렀을 때 『조만간 저녁이나 한번 하자』고 한 데 이어 9월29일 「도쿄회동」 때도 다시 3인회동을 제의했다. 이에 박의원은 『서울에 가서 보자』며 흔쾌히 응했었다. 반면 김종필총재는 박의원이 자민련에 합류, 총재직을 맡을 것이기 때문에 「DJT」보다는 「DJP」라는 양자연대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있다. 따라서 서명식과 박의원의 입당(4일)전에 3인이 만나는 것에는 다소 시큰둥한 반응이다. 박의원은 DJP연대가 성사되면 합류하겠다는 뜻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대구 경북지역의 「반(反)DJ정서」 등을 고려, 자민련에 입당한 뒤 총재자격으로 만나도 늦지 않다는 생각인 듯하다. 하지만 DJT회동은 DJ가 TV토론을 위해 대구로 내려가는 6일을 전후해 어떤 식으로든 성사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최영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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