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신당」발기인대회 표정]현역의원 1명도 없어

  • 입력 1997년 10월 7일 16시 44분


李仁濟전경기지사 진영의 신당 창당 발기인대회가 열린 7일 부산 롯데호텔 대회의장에는 3천여명에 달하는 직장인 주부 자영업자 농민 학생등 이른바 「개미군단」이 모였다. 대회직전 조직간사인 朴泰權전충남지사는 『7일오전 현재 27만여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趙淵夏전국회부의장, 愼道晟전통일원장관, 姜普性전농림장관, 金東周 柳昇珪 兪成煥전의원, 신한국당 李喆鎔전지구당위원장 등 「알만한 인사」는 1백여명 정도였으며 현역의원은 단 한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李전지사를 지지했던 신한국당 金운桓 金學元의원이 대형화환을 보내 축하했을 뿐이다. 또 전국가대표 탁구선수인 安在亨씨와 부인 자오즈민씨, 국가대표 탁구선수 劉南奎씨가 발기인으로 서명해 눈길을 끌었다. 그러나 대회진행 형식은 기존정당의 방식을 탈피, 국민정당의 면모를 갖추려는 노력과 흔적이 역력했다. 李전지사는 대회도중 축사나 연설을 하지 않았으며, 다만 대회직후 인사말 형식을 빌어 연설하면서 『부패하고 무능하고 병든 낡은 정치를 타파해야 한다』 『파벌정치를 한 사람들이 어떻게 나라를 이끌어갈 수 있는가』 『한민족 웅비시대를 위해 강력한 리더십의 젊고 패기있는 젊은 지도자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역설, 참석자들의 환호를 유도했다. 주최측은 「젊은 지도자 李仁濟」라고 적힌 대형풍선을 띄워 분위기를 고조시켰고 대회장 전면에는 「젊은 나라, 위대한 한국, 李仁濟와 함께」라는 말과 함께 李전지사의 대형사진을 내걸었다. 또 행사장 양편으로 대형 스크린을 설치, 李전지사의 약력과 함께 故朴正熙대통령, 클린턴 미대통령, 블레어 영국수상 등의 일대기를 간략히 소개, 세대교체 바람을 겨냥했다. 평범한 시민 2명의 축사도 있었다. 남성대표로 나온 廉章浩경기대교수는 젊고 패기있는 지도자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주부 金春子씨는 『李仁濟후보는 아들을 두명이나 군대에 보내지 않은 신한국당 李會昌총재와는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한편 부산시선관위는 이날 대회장에 50여명의 직원을 보내 현장 계도활동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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