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노동당이 평남 당대표회를 통해 김정일(金正日)의 총비서 추대절차를 밟기 시작함으로써 그의 공식적인 권력승계가 가시화했다. 김일성(金日成)사후 3년간 「유훈(遺訓)통치」로 북한을 이끌어 온 김정일이 공식적인 권력승계 후 경제난과 식량난 등으로 만신창이가 된 북한체제를 어떻게 끌어갈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김정일의 권력승계 착수를 계기로 북한의 앞날을 분석하는 전문가 대담을 마련했다.》
김학준〓북한의 평남 당대표회가 김정일의 당총비서직 추대를 결의했다고 관영방송이 발표함으로써 북한의 권력승계작업이 시작됐습니다. 우선 김정일이 총비서직에만 오르고 국가주석직은 승계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송영대〓당이 국가를 이끌어 나가는 북한체제에서는 국가주석직보다는 총비서직이 더 중요합니다. 총비서직을 우선 승계한 다음 국가주석직은 내년 북한정권 창건 50주년에 승계할 가능성이 큽니다. 또 김정일 개인이 국가주석직을 맡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 점도 작용한 듯 합니다.
김정일이 세계 역사상 유례없이 공식적인 권력승계를 늦췄던 요인들은 여러가지로 추론할 수 있습니다. 김일성의 3년상을 내세워 극진한 효자임을 부각시키면서 김일성의 카리스마를 이용하는 이른바 「유훈통치」로 어려운 시기를 관리해 나가는 것이 더욱 유리하다고 판단했을 것입니다.
또 하나는 축제분위기에서 화려하게 등극하려 했으나 경제난 식량난 대외관계 등 현실적 여건이 호전되지 않아 권력승계를 미뤄 온 것으로 봅니다.
김〓북한이 현재 대내외적으로 심각한 곤경에 빠져 있다는 점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합니다.
대내적으로 지난 90년이후 지난해까지 계속 마이너스 경제성장을 보였습니다. 공업 농업 광업 모두 파탄에 빠졌고 식량위기와 주민의 기아사태는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바 입니다. 정권의 사회통제력이 극도로 이완되면서 권력층내에 이반현상이 일어나는 등 체제도 동요하고 있습니다.
황장엽(黃長燁)국제담당 비서와 장승길 이집트대사 일가의 망명사건이 이를 입증하고 있습니다.
김정일이 국가주석직을 승계하지 않은 것은 북한 주민들에게 이 자리가 김일성과 동일시되는 상징적 의미가 크기 때문이기도 하지요. 따라서 김일성에 대한 존경심의 표시로 당장 주석직을 승계하기 보다는 내년 정권창건 50주년을 맞아 단계적으로 승계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국가주석직을 비워 두면 비워두지 다른 원로에게 맡기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송〓북한은 유일 지배체제입니다. 앞서 말씀하신대로 김정일이 총비서와 국가주석직을 겸임했으면 했지 다른 원로에게 국가주석직을 맡기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가 국가주석을 맡지않을 경우 헌법개정을 통해 이 자리를 없앨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김〓김정일정권과 북한체제의 장래에 대해 전망해 볼까요.
송〓북한은 정상적인 국가기능을 상실했습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무계획하에서 정권과 체제가 연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김일성 사망후 김정일정권을 지탱해 온 기둥을 5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북한군부, 주체사상, 엘리트들의 충성심, 정권의 통제력, 외부의 지원입니다.
이중 북한군부는 아직 갈등요인이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만 식량난이 더 악화될 경우에도 지금과 같은 일사불란한 충성심을 보일지는 의문입니다. 북한군 장병들이 자신의 가족이 굶어 죽어 가는 상황에서 심리상태가 변하리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는 일이지요.
또 주체사상은 이론과 현실에서 오는 괴리가 크다는 것을 북한주민들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북한 엘리트들은 표면적으로는 김정일에게 충성하고 있습니다만 내면적으로는 현 체제상황에 대해 불안감을 갖는 이원적 정신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정권의 통제력은 시간이 갈수록 악화 조짐을 보이고 있고 외부지원도 계속 이어지겠지만 대단히 불투명한 실정입니다. 총체적 위기국면이라고 봐야죠.
김〓북한이 비정상 국가라는 시각에서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우선 군부의 영향력이 압도적으로 큽니다. 김일성 생전에도 「병영 국가」 「유격대 국가」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유격대 국가란 체제 전체가 자신들의 적대세력에 대비하기 위한 게릴라 국가라는 의미입니다.
이같은 비정상적인 국가 성격이 김일성 사망후 더욱 두드러졌습니다. 김일성이 죽고 김정일이 끌어 온 지난 3년간의 발자취를 정치학 용어로 「이럭저럭 헤쳐나가기 방식」이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일정한 목표를 세우고 국가와 당기구들이 정상적으로 협의해 결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이 생기면 그때 그때 대처해 나가는 방식이지요. 이 때문에 경제가 회생할 수 없고 대외관계도 갈지자 걸음을 걸어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식도 한계에 부닥쳤습니다. 이제 국가운영 방식에서 새로운 선택을 할 시점에 다다랐습니다.
송〓북한이 최근 경제계획을 수립하면서 연간계획이 아니라 월별 계획을 수립해 나가는 것도 한 예로 보입니다.
김정일의 권력승계가 갖는 의미를 평가한다면 북한 체제로서는 최후의 기회이자 최대의 위기라는 점입니다. 체제의 생존이냐 붕괴냐라는 기로에 들어섰습니다. 앞으로 김정일은 체제 유지와 정권 공고화를 정책의 최대목표로 설정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적극적인 개방 개혁정책의 채택과 대외문제의 조기타결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적극적인 개방 개혁정책은 경제적 이득보다 더욱 심각한 정치적 후유증을 수반할 것입니다. 자본주의사상 유입이나 과거 김정일 실책의 탄로, 부정부패의 만연 등이지요. 이 때문에 당분간은 제한적인 개방 개혁을 조금씩 확대하는 정책을 쓸 것입니다. 4자회담이나 북―일(北―日)수교회담 등 대외문제에서도 유연한 자세를 갖는데 한계가 있습니다. 기존노선을 답습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입니다.
김〓북한 지배층이 김일성사후 체제 위기감 때문에 김정일을 지원했지만 그가 뚜렷한 치적을 보이지 못해 신뢰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식량위기는 국제사회에 대한 구걸로 겨우 완화해 나갈 뿐입니다. 국제관계도 대미(對美)관계 개선이나 일본과의 수교협상에서 넘어야 할 벽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앞으로 김정일이 2,3년 동안 또다시 구체적인 치적을 보여주지 못할 때도 북한 지배층들이 계속 단결할 것인지는 의문입니다.
송〓지난 3년간 김정일은 정책 실패의 책임을 당간부들에게 돌렸습니다. 그러나 이제 총비서직을 맡음으로써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게 됐습니다. 김정일정권의 향후 정책을 전망한다면 정치적으로 사회주의를 고수하면서 김정일우상화에 의한 유일지배 체제를 계속할 것입니다.
사회적으로는 외부사상의 유입을 차단하고 주민이탈 방지를 위한 통제를 강화할 것입니다. 또 대폭적인 인사조치를 통해 노장청(老壯靑)의 3합 구조를 기본틀로 하면서 측근 군부실세와 전문 기술관료로 권력을 확충하려 할 것입니다.
통치스타일은 외형상 인덕(仁德)정치를 표방하면서 실제로는 숙청 등 공포정치를 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습니다. 경제정책은 적극적인 개방 개혁정책보다는 제한적인 정책을 펼 것입니다.
김정일은 현재의 경제운용방식을 유지하면서 생산성 향상을 위해 인센티브제를 채택할 것으로 보입니다. 텃밭 뙈기밭 등 토지사용을 공식화하고 독립채산제에 대한 중앙통제를 완화하면서 분조개혁제의 숫자도 6,7명에서 하향조정하는 등의 방법이 있겠죠.
또 자유경제 무역지대를 나진 선봉외에 신의주 남포 사리원 원산 등으로 확대하고 금강산 백두산 구월산 칠보산 등을 관광특구로 지정하는 등이지요. 군사분야에서는 군 우대정책을 계속하는 한편 장거리 미사일 개발 등 군사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대외관계에 있어서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중심고리로 해 실리외교를 추진할 것입니다.
김〓김정일은 김일성 사망공백과 식량난 등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권력유지에는 성공했습니다. 내부의 심각한 도전도 없었고 군부도 장악했으며 당정 권력기구도 충성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김정일로서는 어느정도 자신감을 갖고 좀더 개혁지향적 방향에서 운신의 폭을 넓혀가리라 봅니다. 대미관계를 개선해 상주연락사무소를 개설하고 대북 경제제재의 완화와 미국의 지원을 받는다면 김정일의 업적으로 내놓을 수 있을 것입니다.
바꿔 말하면 미국과의 관계개선으로 정권 안정성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좀더 대외지향 개방지향적으로 나가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 지난 8월 경수로 건설공사의 착공은 그가 좀더 대외지향적으로 나갈 것이라고 판단하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송〓대미관계 개선과 경수로 사업은 김정일이 특히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 94년 북―미(北―美) 제네바 합의서가 김정일의 신출귀몰한 정책에 의한 외교적 승리라고 북한주민들에게 선전했기 때문이지요. 정치적 경제적 이득을 위해서도 경수로 사업에는 적극성을 띨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본격적인 개방 개혁으로 가는 것인가 하는 것은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김〓김정일의 고민과 북한의 고민이 바로 거기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이 살기 위해서는 개방 개혁을 해야 하는데 자유화 민주화 바람에 체제가 흔들릴 것이 뻔하기 때문에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지요. 저도 김정일이 제한적 통제적 범위내에서 개방 개혁할 것으로 보는데는 공감합니다.
송〓김정일의 대남정책을 전망한다면 체제 유지를 위해 남한을 주적(主敵)으로 삼아 일정한 정치 군사적 긴장을 유지하면서 경제적 실리를 취하는 양면성을 띨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년에 남한에 새 정권이 들어서면 남북대화에 호응해 올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대화에 호응해 온다 하더라도 정상적인 남북대화보다는 제2의 북경회담처럼 비정상적인 대화형태가 될 가능성이 더욱 큽니다.
김〓김정일정권의 장래는 현상황에서는 무척 비관적입니다. 사실 북한체제가 유지돼 온 것은 북한의 붕괴를 원치 않는 중국 등 주변 강국의 지원이 상당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경제위기를 헤쳐 나가지 못하고 민심이반 현상이 심해지면 김정일정권이 무너지고 군부쿠데타에 의한 개발독재형 국가도 나타날 가능성이 있습니다만 이도 얼마나 연명할 것인지 회의적입니다.
북한이 붕괴할 때 반드시 우리에게 유리할 것인가 하는 점도 짚어봐야 할 것입니다. 엄청난 혼란과 함께 최악의 경우 무력도발 자행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송〓북한의 향후 변화 시나리오를 4가지로 볼 수 있습니다. 향후 수년간 김정일정권이 유지되는 것과 제3의 개혁정권이 등장하는 것, 사회혼란으로 무정부상태에 빠지는 것, 정권위기로 김정일이 대남도발을 해오는 것 등입니다.
이중 첫 시나리오를 제외하면 나머지는 북한 내부에서 급변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북한이 안정적으로 변화하길 바라지만 급변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리가 한반도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 대비를 해야할 것입니다.
〈정리〓황유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