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쇼크]청와대에 직접 「최종결심」 통보

  • 입력 1997년 9월 13일 18시 22분


이인제(李仁濟)경기지사는 13일 공식 대선출마선언을 하기까지 적잖은 우여곡절과 내부진통을 겪었다. ○…이지사에게 가장 어려웠던 고비는 11일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이 5분간의 전화통화를 통해 출마를 만류했을 때였다. 이지사는 이날 저녁 의원회관에서 김운환 김학원(金學元)의원, 박태권(朴泰權)위원장 등 신중론자들과 만났을 때만 해도 출마의지가 완강했다. 그러나 이날 밤 10시경 김대통령이 전화통화를 통해 『어떻게 하든 당안에서 여러 문제를 극복하는 방안을 찾는 것이 당인의 도리』라며 충고하자 상당한 심적 부담을느꼈다는 것. 이 때문에 이지사는 김대통령과 전화통화 후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가진 20명의 원내외위원장과 최종 협의에서 『모든 문제를 원점에서 얘기하자』며 서두를 꺼냈고 회의말미에서도 『내일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말해 참석자들로부터 『왜 당사에서 하느냐. 이회창(李會昌)대표에게 협력하는게 아니냐』는오해를 사기도. 이지사는 그러나 초심(初心)대로 출마선언을 하되 김대통령이 출마를 말린 다음날 바로 기자회견을 갖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고 판단, D데이를 13일로 하루 연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지사는 12일 밤 11시10분경 청와대 조홍래(趙洪來)정무수석에게 전화를 걸어 출마결심을 통보. 조수석으로부터 전화보고를 받은 김대통령은 『다시한번 더 설득해보라』고 지시, 조수석은 이지사에게 전화해 『대통령도 안타깝게 생각한다. 본인과 당에 도움되는 방향으로 생각해보고 내일 아침 다시 통화하자』고 말했다는 것. 이지사는 13일 오전 7시경 다시 조수석에게 최종적으로 출마결심을 통보한 데 이어 김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출마결심을 알렸다는 후문. ○…이지사의 출마선언이 있자 청와대 실무자들은 『이지사의 지지계층이 뜻밖에 단단하다』며 『추석 이후에도 지지율추이가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큰 일이다』라고 걱정하는 분위기. ○…이 사이 이회창(李會昌)대표와 이지사측 측근의원들은 이지사를 말리기 위해 12일 밤 늦게까지 애간장을 태웠다. 김운환 김학원의원은 이날 경기지사 공관에서 하루종일 이지사의 출마자제를 건의한 데 이어 자정경 서울에서 이지사를 다시 만나 『출마명분이 약하다. 일단 잔류해 돕자』고 끈질기게 설득했으나 무위에 그쳤다. 이대표도 두 김의원을 통해 이지사와 연락을 요청했으나 성사되지 못했다. 이대표는 13일에도 아침 일찍부터 이지사와의 전화접촉을 기다렸으나 불발에 그치자 『굉장히 안타깝고 유감스럽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동관·이원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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