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청춘꽃매’ 할머니 감독들 “나이 80에 영화 찍고 賞타니 출세했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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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노인영화제 대상 받은 단편 ‘청춘꽃매’ 할머니 감독들

영화감독, 배우가 된 할머니들이 대상 수상작 ‘청춘꽃매’ 영화 포스터를 들고 ‘하트’를 그려 보이고 있다. 할머니들은 “무릎만 성하다면 앞으로도 계속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경제 기자kjk5873@donga.com
영화감독, 배우가 된 할머니들이 대상 수상작 ‘청춘꽃매’ 영화 포스터를 들고 ‘하트’를 그려 보이고 있다. 할머니들은 “무릎만 성하다면 앞으로도 계속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경제 기자kjk5873@donga.com
 “전국에 있는 할아버지들한테 연락 오면 어쩐당가? 영화배우도 모자라 신문까지 나옴시롱.” “오메, 나이 여든 넘어 영화에 신문에, 뒤늦게 출세했소!”

 뽀글대는 짧은 파마머리에 검푸른 눈썹 문신…. 영락없는 ‘동네 할머니’ 외모지만 모두 어엿한 ‘영화감독’이자 ‘배우’들이다. 할머니들은 최근 폐막한 서울노인영화제에서 15분짜리 단편영화 ‘청춘꽃매’를 선보여 대상을 받았다. 남편과 사별한 충격으로 치매를 앓게 된 할머니와 그를 위로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재치 있게 다뤄 호평을 받았다.

 2일 오후 경기 부천시 오정구에 있는 작은 사랑방에서 할머니들을 만났다. 연신 소녀처럼 깔깔대며 웃는 할머니들의 ‘수다 삼매경’에 인터뷰는 몇 번을 멈췄다 다시 진행해야 했다.

 감독을 맡은 서영숙 할머니(78)는 들뜬 목소리로 수상 소감부터 전했다. “상 준대서 갔더니 세상에 우리가 1등인 거라. 앞으로 나오라는데 심장이 벌렁벌렁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거 아니오. 이 나이에 이게 웬일인가 싶어 머리가 하얘졌제.”

 옆에 있던 조송옥 할머니(81)가 ‘대상’이라고 적힌 아크릴 트로피를 찾아오더니 서 할머니에게 척 안겨 주면서 말을 이었다. 조 할머니는 주로 촬영을 담당했는데, 이번에 영화를 촬영하면서 난생처음 ‘카메라(캠코더)’를 만져 봤다고 했다. “젊은 사람만 영화 찍으란 법 있는가? 치매 걸린 친구를 위로한다고 노래방 가는 장면이 있는데 내가 30년 만에 노래방을 간 것 아니오. 내 마음이 훨훨 날 것 같고 덩실덩실 춤까지 추고 싶더라니까.”

 두 할머니는 영화에 출연도 했다. 특히 서 할머니는 치매 걸린 할머니의 사별한 할아버지 역할을 맡았다. “할아버지 역할을 하다 보니 ‘간 지’ 40년 된 영감이 떠오릅디다. 아유, 이상하게 괜히 서글퍼지는 거라. 6·25전쟁 휴전되고 결혼을 했는데, 우리 영감 살았으면 지금 어떻게 생겼을까 별생각이 갑자기 들어서….”

 할머니들 중 ‘유머 감각 1등’이라는 김순자 할머니(73)가 순간 숙연해진 분위기를 깼다. “나는 다음 영화에선 엄청나게 심술쟁이 역할을 할 거라고. 요새 드라마 보면서 연기 연습도 하는데 워찌나 재미난지. 그 9번에서 하는 드라마 보면 나오는, 그 있잖아! 그 조카 남편을 가로챈, 하여튼 그 양반 같은 역할이 탐나. 에이, 나이 먹으니까 이름도 생각이 안 나네. 그래도 아직 대사 외울 만해!(웃음)”

 할머니들은 지역 민간 단체가 운영하는 사랑방에 매주 수요일마다 모여 한글 공부도 한다. 글을 배우며 ‘위시리스트’를 꼽아 보던 중 ‘영화 한번 찍어 보자’는 얘기가 나왔다고 했다. 치매 할머니의 친구 역할로 출연한 박복희 할머니(74)는 “노인들에게 가장 공포스러운 단어 두 개가 치매와 사별”이라며 “영화를 찍다 보니 공포심이 조금씩 극복되는 것도 같았다. 내 아들딸들, 동년배 노인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라고 전했다.

 할머니들은 다음 주엔 동네 떡집에서 마을 상영회도 연다. 부족한 영화지만 더 많은 사람이 봐 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우리는 나이 여든 먹어서도 아리랑 극장에 갈 만한 영화를 찍지 않았겠수? 영감 먼저 보내고, 이래저래 힘든 사람들이 이 영화 보고 힘 좀 냈으면 좋겠소. 아, 근데 인터뷰는 요기까지만 하믄 될랑가? ‘슛’ 들어간 지가 언젠데 영 끝나질 않아서.”

 인터뷰 말미, ‘감독’ 서 할머니의 한마디에 온 사랑방이 웃음바다가 됐다.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서울노인영화제#청춘꽃매#할머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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