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허가 된 제2의 고향, 하루하루 버티는 그들이 내게 꽃다발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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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엄홍길-오은선… 눈물의 네팔 구호활동

《네팔을 제2의 고향이라고 여기는 산악인들과 기업들이 잇달아 발생한 지진으로 큰 피해를 본 네팔 돕기에 나섰다.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급 16좌 등정에 성공한 산악인 엄홍길 대장(55)과 여성 최초로 14좌를 완등한 오은선 씨(49)는 네팔 오지 마을을 찾아다니며 긴급구호활동을 하고 있다. 기업들은 성금을 기탁하거나 구호 물품을 지원하고 있다.》

16일 긴급구호물품을 싣고 네팔 다딩 주 컬레리 마을을 찾은 엄홍길 대장(가운데 아이 안은 이)이 마을 사람들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다딩=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16일 긴급구호물품을 싣고 네팔 다딩 주 컬레리 마을을 찾은 엄홍길 대장(가운데 아이 안은 이)이 마을 사람들과 함께 환하게 웃고 있다. 다딩=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엄홍길 대장

히말라야 신이 맺어준 연(緣)이었다. 16일 엄홍길 대장은 쌀, 콩, 방수 천막 등 긴급구호물품을 트럭에 싣고 네팔 다딩 주(州) 컬레리 마을을 찾았다. 수도 카트만두에서 험준한 산악 도로를 차로 8시간 이상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다. 지난달 25일과 이달 12일 연이은 강진으로 400여 가구가 살고 있는 이 마을에 부서지지 않고 온전히 남아 있는 건물은 지난해 엄홍길휴먼재단이 지은 다섯 번째 학교뿐이었다. 해발 2600m에 있는 이 마을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없었다. 네팔 정부도 국제기구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못했다. 엄홍길휴먼재단과 대한적십자사만이 이 마을을 찾았다.

부다로지미 사케 씨(31·여)는 “지진이 나고 갓 태어난 아이에게 줄 젖이 나오지 않아 제대로 먹이지 못했다”며 “엄 대장과 식량을 보내준 한국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지진 발생 4일 만인 지난달 29일 네팔에 들어온 엄 대장의 하루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매일 8시간 이상 트럭을 타거나 걸어서 오지 마을을 찾았다. 휴먼재단은 10여 일 동안 고르카 주 만드레 마을, 신두팔촉 주 상가촉 마을 등 구호의 손길이 제때 미치지 못하고 있는 오지 마을을 찾아다니며 구호 물품을 전달했다.

엄 대장의 간절함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했다. 엄홍길휴먼재단은 네팔 지진 긴급구호자금으로 10만 달러를 기부했다. 파라다이스그룹(회장 전필립)은 구호성금으로 현금 2억 원을 재단에 기탁했다. 아웃도어 업체 밀레(대표 한철호)도 지진 피해지역에 침낭, 의류 등 3억 원 상당의 구호 물품을 지원했다.
네팔 지진의 진원지인 고르카 지역을 찾은 여성 산악인 오은선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 오 씨는 네팔을 돕는 기금 마련을 위한 자선 산행을 벌이는 등 피해 지역을 재건하는 데 힘을 보탤 계획이다. 블랙야크 제공
네팔 지진의 진원지인 고르카 지역을 찾은 여성 산악인 오은선 씨(오른쪽에서 두 번째). 오 씨는 네팔을 돕는 기금 마련을 위한 자선 산행을 벌이는 등 피해 지역을 재건하는 데 힘을 보탤 계획이다. 블랙야크 제공
▼ 여성 첫 14좌 완등 오은선씨

“네팔은 저에게 많은 것을 준 제2의 고향이에요. 그런데 막상 폐허가 된 곳에 가니 제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는 거예요. 저는 너무나 많은 것을 받았는데….”

네팔 마을 그리고 황망한 네팔인들의 표정을 떠올리며 오은선 씨는 감정이 북받치는 듯했다. 오 씨는 여성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000m 이상 14개 봉우리를 모두 등정한 산악인. 오 씨는 11일부터 네팔의 지진 피해 지역을 찾아 구호활동을 벌이고 19일 귀국했다. 오 씨는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국제구호기관인 W-재단과 함께 지진 진원지인 고르카 지역을 찾아 블랙야크가 지원한 텐트와 옷 신발 등 구호 물품을 전달했다.

“고르카 인근의 바르팍이란 산간 마을은 길이 막혀 헬기로 가야만 했어요.”

가장 마음을 아프게 한 건 헬기를 보고 달려오던 아이들이었다. 폐허 위에서 놀던 아이들은 외지 사람을 보자 해맑게 웃어 보였다. 두 번째로 들른 고르카 지역에서는 예상 못한 식사 대접도 받았다. 마을 사람들은 감사의 의미를 담은 꽃다발도 건넸다. “제가 머무는 동안에도 하루에 두세 번씩 지진과 여진이 발생했어요. 저는 봉사활동을 마치고 가면 그만이지만 여기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들을 돕기 위해서 뭐든 할 겁니다.”

오 씨는 우선 네팔을 돕는 기금 마련을 위한 자선 산행을 매주 할 계획이다. 그의 후원업체인 블랙야크는 지진 발생 이후 5억 원 상당의 구호물품과 성금을 전달한 데 이어 21일 2차로 7억 원어치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또한 피해 지역 재건을 위한 장기 계획을 수립 중이다.

다딩=박성진 기자 psjin@donga.com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엄홍길#오은선#네팔#구호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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