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미정 “스윙 교정에 3년… 아빠가 캐디백 메주니 우승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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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위 누르고 LPGA 5년만에 우승한 허미정

그토록 기다려온 트로피를 다시 들어올린 허미정(25·사진)은 눈물을 쏟았다. 옆에서 지켜보던 아버지 역시 눈시울을 붉히며 딸의 등을 두드려줬다.

22일 미국 앨라배마 주 프랫빌 RTJ골프장(파72)에서 끝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요코하마 타이어 클래식. 세계 랭킹 93위 허미정은 최종 합계 21언더파 267타를 기록하며 세계 1위 스테이시 루이스(17언더파 271타)를 4타 차로 제치고 우승했다. 이로써 허미정은 신인 때인 2009년 8월 첫 승을 거둔 뒤 5년 2개월 만에 다시 정상에 오르며 나흘 동안 자신의 캐디로 동행한 아버지 허관무 씨(60)와 기쁨을 나눴다.

경기 후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허미정의 목소리는 밝았다. “울고 싶어서 운 게 아니라 힘들었던 순간이 떠올라 눈물이 저절로 났어요. 모두 아빠 덕분이에요.”

이번 대회 기간 허미정은 아버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평소 쓰던 5kg이 넘는 투어백 대신 1.3kg인 스탠드백을 사용했다. “1년에 한 대회는 가벼운 백을 허용하는 LPGA투어 규정이 있어요. 허리가 안 좋은 아빠가 힘드실까 봐 더이상 캐디 부탁은 못할 것 같아요.”

국가대표 출신 유망주였던 허미정은 2011년부터 스윙 변경 후유증으로 3년 가까이 슬럼프에 허덕였다. 허미정은 “미국에서 살아남으려면 확실한 구질이 있어야 했다. 페이드 대신 드로 구질로 바꾸려 했다. 하지만 10년 넘게 몸에 밴 스윙을 버리고 안 하던 걸 하니까 혼란에 빠졌다. 골프가 안 돼 울기도 참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올 상반기에도 8차례나 예선에서 탈락하며 내년 시즌 출전권까지 놓칠 위기에 몰린 허미정은 두 달 전 미국 올랜도에서 댈러스 부근으로 이사까지 했다. 분위기를 바꿔볼 의도에서였다. 성적 부진으로 스폰서를 잃은 데다 함께하던 전담 캐디까지 지난달 떠나보낸 허미정은 9월 들어 스윙에 자신이 붙으면서 평소 장기였던 퍼팅까지 살아났다.

포틀랜드클래식과 에비앙챔피언십에서 연속 톱10에 들었던 그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아버지에게 1년 만에 다시 캐디를 맡아 달라고 했다. “2년 전 이번 대회와 같은 코스에서 열렸던 대회 때 아빠가 캐디를 해주셔서 공동 3위를 했어요. 퍼팅 라인을 아주 잘 보세요. 캐디피 아꼈으니 아빠 원하시는 거 뭐든 사드려야죠.” 허미정은 우승 상금 19만5000달러(약 2억400만 원)를 포함해 9월에만 상금으로 41만 달러(약 4억3000만 원)를 벌었다. 올 시즌 허미정의 평균 퍼팅 수는 28.77개. 박인비(28.9개)를 제치고 1위다.

고향인 대전에서 의류사업을 하다 딸 뒷바라지를 하려고 미국으로 건너간 허 씨는 “다 관두고 한국으로 돌아갈까도 생각했다. 포기하지 않으니 이런 날이 왔다”며 흐뭇해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허미정#LPG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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