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세일즈맨… “산소호흡기 쓰고 해발 4100m 누벼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30일 03시 00분


볼리비아 유일 한국기업 주재원… 이승엽 삼성전자 지점장

《 해발 4100m의 볼리비아 라파스에서 산소호흡기를 끼고 스마트폰을 파는 ‘독한’ 남자가 있다. 볼리비아의 유일한 한국인 기업 주재원 이승엽 삼성전자 지점장(45·부장)이다. 볼리비아는 라파스를 비롯해 인구의 70%가 거주하는 서북부 지역의 평균 고도가 3500m 이상으로, 백두산(2744m)보다 훨씬 높다. 고지대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들은 호흡 곤란과 두통, 현기증, 수면 장애, 구토 등을 동반하는 고산병에 시달리곤 한다. 》     
     
      
볼리비아 유일의 한국인 주재원인 이승엽 삼성전자 지점장이 라파스의 해발 4095m 고지대에서 산소호흡기를 낀 채 포즈를 취했다. 삼성전자 제공
볼리비아 유일의 한국인 주재원인 이승엽 삼성전자 지점장이 라파스의 해발 4095m 고지대에서 산소호흡기를 낀 채 포즈를 취했다. 삼성전자 제공
근무환경이 열악해 민간기업뿐 아니라 볼리비아의 광물자원 개발을 위해 파견됐던 공기업 주재원들도 최근 조기 귀임했다. 현재 볼리비아에 남아 있는 한국인 주재원은 이 지점장뿐.

이 지점장은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브라질 법인에서 일하며 삼성전자의 중남미 휴대전화 수출을 담당해 온 베테랑이다. 그는 올해 1월 ‘휴대전화 시장을 늘리라’는 특명을 받고 볼리비아 지점에 파견됐다. 유선 인터넷 보급률이 낮고 인터넷 사용자의 60%가 무선인터넷을 사용하는 볼리비아에서는 휴대전화가 생활필수품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가 일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산소호흡기. 이 지점장은 산소호흡기를 쓴 채로 볼리비아 전역의 매장을 직접 발로 뛰는 한편 현지 통신사업자들과의 협업을 주도하고 있다.

사무실에서도 산소호흡기는 필수품이다. 삼성전자 볼리비아 사무실이 위치한 곳은 해발 3300m. 장시간 회의를 하면서 말을 많이 하거나, 시장 조사를 마치고 돌아오면 갑자기 머리가 핑 돌면서 호흡이 가빠질 때가 많다.

그는 27일 전화 인터뷰에서 “가끔 사무실 내 산소호흡기를 보면 이곳이 회사인지 병원 응급실인지 헛웃음이 나올 때도 있다”며 “그래도 갤럭시 스마트폰이 팔려나가는 걸 보면서 다시 마음을 다잡곤 한다”고 했다.

최근 볼리비아에서 엄청난 속도로 퍼지고 있는 케이팝 열풍도 이 지점장에게 든든한 도움이 되고 있다. 그는 “요즘 볼리비아에서 자생적으로 한류 열풍이 불어 우리 기업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삼성전자도 한국 회사임을 앞세워 마케팅 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했다. 삼성전자 볼리비아 지점은 대사관과 함께 ‘한류 경연대회’를 여는가 하면, 한류 동호회 회원들의 댄스 공연에 갤럭시 스마트폰을 상품으로 협찬하는 방식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 가고 있다.

독하기로 소문난 그도 가족 얘기가 나오면 마음이 약해진다. 이 지점장은 “나 하나 믿고 먼 이국땅까지 따라와 고생하는 가족에겐 늘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집에도 산소발생기를 설치해 뒀다. 혹시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을 미리 막고, 성장기인 아이들의 숙면을 돕기 위해서다.

이 지점장은 “아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바깥나들이가 시장에 장을 보러 나가는 건데, 그마저도 힘겨워 길바닥에 쪼그리고 주저앉을 때가 많다고 한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미안한 마음에 가슴이 저려 오곤 한다”고 말했다. 대구에 혼자 계신 홀어머니 생각에 이번 설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을 것 같다.

그의 올해 목표는 더 많은 볼리비아인에게 한국 제품을 선보이는 것이다.

“한국의 첨단 기술을 직접 보급하는 유일한 기업, 유일한 파견근무자라는 사실에 자부심과 책임감을 함께 느끼고 있습니다. 단순히 휴대전화를 판매하는 게 아니라 삼성전자, 더 나아가 한국을 대표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뛰겠습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이승엽#삼성전자#산소호흡기#근무환경#볼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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