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청소차로 편의점 강도 추적해 붙잡은 환경미화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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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영등포구역 담당 50대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지만 잡고보니 10대… 마음 편치않네요”

8일 오전 2시 20분경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4가의 골목길. 환경미화원 박모 씨(54)는 5t 녹색 청소차 운전석에 앉아있었다. 다른 환경미화원 2명은 골목 한구석에 모여 있던 쓰레기봉지 8개를 차에 실은 뒤 차 뒤편에 선 채로 올라탔다. 그러던 중 박 씨는 한 편의점에서 나온 박모 군(19)을 우연히 보게 됐다. 검은색 옷차림에 모자를 눌러쓴 박 군은 손님을 가장해 편의점으로 들어가 과도로 주인을 위협한 뒤 35만9000원을 빼앗아 나오는 길이었다. 잠시 후 편의점 주인이 급하게 뛰어 나와 “강도가 들었다. 신고 좀 해달라”고 소리쳤다. 박 군은 이미 멀찌감치 달아나고 있었다.

이를 본 박 씨는 과감하게 청소차를 돌려 달아나는 박 군을 향해 차를 몰기 시작했다. 편의점 주인은 박 씨에게 “칼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뒤에 탄 다른 환경미화원들은 의아해했다. 평소 가는 길도 아니었고 차 속도도 평소보다 빨랐기 때문이다. 박 씨는 1km가량을 뒤쫓아 박 군을 앞질렀다. 이어 차를 세우고 내린 뒤 박 군의 멱살을 잡았다. 그 사이 도착한 경찰은 박 군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환경미화원으로 10년째 근무 중인 박 씨는 16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쑥스럽다”며 한사코 실명과 사진 공개를 거부했다. “젊었을 때는 퍽치기범을 잡아 표창을 받은 적도 있었다”며 “막상 잡고 보니 어린애여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경찰서는 박 군을 특수강도 혐의로 구속했다고 16일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환경미화원 분이 흉기가 있다는 걸 듣고도 용감하게 뒤쫓았다”고 말했다.

김성모 기자 mo@donga.com
#환경미화원#편의점 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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