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굿네이버스 홍보대사 변정수 씨가 네팔 카일랄리 지역 빈민촌에 사는 버랏 군을 안아 병원으로 옮기고 있다. 두 살배기 버랏 군의 이마는 피부병 때문에 고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카일랄리=박지만 굿네이버스 재능나눔 작가
네팔 서남부 카일랄리(Kailali) 지역에 사는 코필라(9·여)와 어말(6) 남매가 아침에 눈 뜨자마자 가야 하는 곳은 마을 근처의 정글이다. 이곳은 예전부터 독사에 물려 죽는 사람이 많아 어른도 가기를 꺼려하는 위험한 지역. 이들이 정글에 가야 하는 이유는 얹혀사는 집의 염소를 키우고 장작을 모아 놓아야 끼니를 얻어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4일 국제구호개발 비정부기구(NGO)인 굿네이버스 홍보대사인 인기 모델 겸 배우 변정수 씨 가족과 만난 코필라 남매는 능숙한 솜씨로 정글에서 풀을 베고 장작을 구하고 있었다. 자그마한 손에 낫을 들고는 원숙한 실력으로 풀을 베어 묶고, 쓰러져 있는 나무를 손이나 발로 꺾어 적당한 크기로 만든 뒤 풀로 동여매 짊어졌다. 원래 맨발로 다닌다는 이들에게 취재진을 의식한 마을 사람들이 낡은 고무슬리퍼를 빌려줬다. 하지만 정글의 뱀을 막기엔 속수무책으로 보였다.
● 세계 최빈국 네팔에서도 가장 못사는 곳
네팔은 2011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644달러 정도로 세계 최빈국에 속한다. 그중에서도 카일랄리 지역은 수도 카트만두에서 경비행기와 4륜 구동 자동차로 도합 5시간 정도 걸리는 외진 곳이다. 과거 노예들이 해방된 이후 모여 사는 빈민촌인 이곳은 인도 국경과 가까워 남성들이 인도로 돈을 벌기 위해 가서는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아 버려진 여성과 아이들이 많다. 여름에는 많은 비와 함께 기온이 섭씨 45도까지 올라가지만 방역이 이뤄지지 않아 위생상태도 엉망이다.
코필라 남매의 아버지는 1년 전쯤 결핵으로 사망했다. 엄마는 6개월 전 4남매 중 첫째와 둘째인 코필라와 어말을 버리다시피 하고 셋째와 넷째만 데리고 돈을 벌기 위해 인도로 간 채 연락이 끊겼다. 마을의 한 노부부 집에 얹혀산다고는 하지만 이들이 먹고 자는 곳은 헛간이나 마당 평상이다. 위생과 영양상태도 엉망이다. 코필라의 머리 옆쪽은 피부병으로 500원 동전 크기만큼 머리카락이 나지 않고 있었다. 어말은 온몸에 난 땀띠를 긁는 통에 상처투성이다.
변 씨는 굿네이버스 네팔 지부를 통해 인도에 간 코필라의 엄마 바비사라 씨를 수소문해 찾아 데리고 왔다. 가난과 고생에 어지간히 찌든 모습이었다. 인도로 데리고 갔던 아이들은 심한 피부병을 앓고 있었고, 특히 두 살밖에 안된 막내 버랏(2)은 이마의 염증이 심해 혹이 울쑥불쑥 솟은 채 고름이 가득 차 있어 수술이 필요했다.
부모가 있지만 절대 빈곤에 허덕이는 아이들도 부지기수다. 마을에서 만난 람(8)과 아준(6) 형제는 종일 돌아다니며 상점이나 식당에서 병을 구걸하고 있었다. 간신히 병 20개를 모아 판 돈은 네팔 돈으로 20루피. 한화로 단돈 300원 정도다. 모은 돈은 전부 부모에게 가져다주지만 길에서 옥수수를 구워 파는 부모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는커녕 끼니를 제대로 챙겨 먹이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고성훈 굿네이버스 네팔지부장은 "공립학교는 무료인 곳도 있지만 보통 한 달에 150루피(2250원) 정도 내야하고 교복 값이 800루피(1만 2000원) 정도 들어 성인 남성의 하루 일당이 한화로 3000원 정도인 이곳 사람들에게 상당히 부담스러운 금액"이라고 했다. 이어 "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적은 데다 병원비가 이곳 사람들의 생활수준에 비해 비싸 아파도 병원에 가기 힘들다"며 "더러운 물을 그냥 마시는 등 위생관념도 부족한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 '맘(Mom) 프로젝트'
2010년 변정수 씨 가족은 꺼이랄리 지역을 처음 방문하고 충격에 휩싸였다. 학교에 가지 않고 벽돌 공장이나 길거리에서 하루 종일 일하는 어린이, 남편에게 버림받고 극심한 가난 속에서 병들어 비참하게 사는 여성의 모습이 '두 아이의 엄마' 변 씨의 마음을 헤집었다.
그의 의지로 '맘(mom)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변 씨가 기부한 7000만 원에 일반 후원자의 기금을 더해 지역 여성들에게 복지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낮 시간에 아이들을 돌봐주는 종합복지센터인 '맘센터'를 지었다. 건물은 '아동 노동의 산물'인 벽돌을 사용하는 대신에 건축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흙건축' 방식으로 건립했다.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과 함께 방임됐던 아이들이 낮 동안 보호받을 수 있는 '주간보호센터'로서의 역할도 할 예정인 맘 센터로 인해 지역 아동 4000여명과 학부모 6000여명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변 씨 부부는 네팔에 오기 전날 결혼 17주년을 기념하는 '리마인드 웨딩'을 열어 하객들로부터 받은 축의금 3000만 원을 다음 맘센터 건립 자금으로 기부했다. 현재 필리핀의 2호, 탄자니아의 3호 맘 센터가 각각 8월과 연말 개소를 앞두고 있다.
첫 방문 이후 2년이 지난 현재, 변 씨 가족이 후원하는 네팔 아이들만 수십 명이다. 이번 방문에서 만난 코필라와 그 동생들, 람과 아준 형제도 변 씨의 '새로운 가족'이 돼 정글에 가고 병을 모으는 대신 학교에서 공부하고 맘 센터의 보호를 받게 됐다. 코필라는 "학교에 가게 돼 너무 좋다"며 "조띠 언니(굿네이버스 카일랄리 담당 직원 양용희 씨의 현지 이름)나 또 다른 엄마(변 씨)처럼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며 웃었다.
변 씨는 맘센터 개소식에서 "아이들은 일터나 길거리가 아니고 엄마의 품과 학교의 울타리 안에서 돌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결연한 표정으로 "앞으로 100호 맘센터가 건립되는 그날까지 노력하겠다"며 "만약 내가 못하면 내 딸들이 꼭 이어서 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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