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한결같이… 선생님들의 ‘몰래한 제자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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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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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명高 교사들의 ‘티끌 모아 장학사업’

13년째 남모르게 사랑을 베풀고 있는 배명고 교사장학회 교사들이 학생들과 웃고 있다. 왼쪽 두 번째부터 이장익 진경환 교사, 박병철 교감, 오평권 교사, 조형래 교장.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13년째 남모르게 사랑을 베풀고 있는 배명고 교사장학회 교사들이 학생들과 웃고 있다. 왼쪽 두 번째부터 이장익 진경환 교사, 박병철 교감, 오평권 교사, 조형래 교장.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지난해 서울 송파구 배명고 3학년이던 이모 군은 선생님들로부터 장학금 100여만 원을 받았다. 미술학원 강사로 일하는 아버지의 월급(140만 원)만으로는 이 군 남매의 학비를 충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뜻하지 않은 ‘선물’은 담임교사가 이 군을 ‘교사장학회’ 수혜자로 추천하면서 만들어졌다.

이 학교 교사들은 매달 각자 5000원부터 3만 원까지 모아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준다. 이 장학금을 주는 곳이 바로 교사장학회다.

교사장학회는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직후인 1999년 출범했다. 그때부터 13년째인 지금까지도 총무를 맡고 있는 이장익 교사는 “한순간에 아버지가 실직하고 가정이 어려워져 학비를 못 내는 학생이 너무 많았다. 제자들을 돕고 싶어 뭉치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교장 교감을 비롯해 교사 48명이 뜻을 함께했다. 한 달에 모이는 돈은 50여만 원이지만 1년이면 학생 4∼6명에게 2개 분기 학비를 줄 수 있는 큰돈이 됐다. 개교기념일에 재단법인이 우수 교사에게 주는 탄암상 상금(100만 원)을 쾌척하는 교사들도 있었다. 그럴 때면 더 많은 학생이 장학금 혜택을 받았다. 현재까지 학생 58명이 약 6000만 원의 장학금을 받았다.

장학금은 성적이 우수하지 않더라도 품성이 바르고 꿈을 가진 학생에게 돌아갔다. 담임교사가 추천하면 심의를 거쳐 매년 6, 7월 장학금을 준다. 13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추천서들은 누렇게 바랬지만 학생들에 대한 교사들의 애정이 가득하다. “전교 석차는 283등이지만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고, 봉사정신이 투철한 학생이다.” “성적은 좋지 않지만, 제빵사 꿈을 갖고 아르바이트 한 돈으로 제빵학원에 다닌다.”

교사장학회는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길 바란다. 어떤 학생이 장학금을 받았는지 공개하지 않고, 학생들도 어떤 선생님들이 장학금을 줬는지 모른다. 어린 마음에 상처를 줄까 우려해서다. 학생들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못 들어도 서운하지 않다. 조형래 교장은 “교사들이 바라는 건 딱 하나다.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이 꿈에 다가갈 수 있게 좀 더 노력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년퇴직한 교사를 제외하고 현재는 31명이 매달 장학금을 모으고 있다. 이 교사는 “과거보다 국가 지원이 많아졌지만, 사각지대에 놓여 도움을 못 받는 학생이 아직도 많다”며 “돈 때문에 꿈을 잃는 학생들이 없도록 계속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배명고#장학금#교사장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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