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 ‘公正’을 말하다]<下>어떻게 추진하나 - 전문가 의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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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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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정부가 야심 차게 내건 ‘공정한 사회’ 기치가 역대 정권의 수많은 정치 구호처럼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정치 경제 법률·노동 교육 문화 전문가들은 △공정 사회의 개념 정의를 분명히 해서 ‘기회의 공정’이 ‘결과의 평등’으로 오해받지 않도록 하고 △정권재창출 같은 정략적 이해나 단숨에 공정 사회를 만들겠다는 조급함을 버리고 △대기업, 사회지도층, 가진 자들도 ‘공정 사회의 정착이 내 자신의 이익에도 부합한다’는 인식으로 자발적 솔선수범에 나설 수 있는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

■ 정치- ‘정략’ 추진땐 실패…반성-성찰로 진정성 보여야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이명박 정부가 후반기 국정 운영의 밑그림으로 ‘공정한 사회’라는 화두를 던진 것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공정한 사회는 규범적인 정의여서 도덕적으로 해석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고, 현실적으로도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라고 우려했다. 정치의 모든 분야에 사사건건 공정한 사회라는 잣대를 들이대기 시작하면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예산이 어느 한쪽으로 가면 다른 쪽은 모자랄 수밖에 없는데 기계적으로 공정성을 적용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도 “공정한 사회라는 방향은 옳지만 방법이 정교하지 못하면 실패한다”고 지적했다. 사정(司正)으로 몰고 간다든지, 집권 후반기에 정국의 주도권을 잡기 위한 의도가 드러난다면 실패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공정 사회라는 화두를 꺼냈으면 반성과 성찰부터 있어야 한다”며 “인사 편중 등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대표적인 불공정 사안에 대해 반성하고 시정하는 의지부터 보여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동안 왜 공정하지 못했는지를 밝히지 않고 ‘다 덮고 가자’는 식이면 대(對)국민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김용철 부산대 교수(정치학)는 “정책 결정·집행자는 행정의 목표를 달성하는 ‘효율성’에만 초점을 맞추지만 국민들은 정책의 공정성에 더 관심을 갖는다”며 “국민들은 권력과 이권의 불평등 배분 시정, 국가권력의 평등한 집행과 적용. 부의 분배적 정의 등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 게임의 룰을 제대로 지키고, 상식에 어긋난 ‘반칙 정치’가 사라져야 ‘공정한 정치’가 실현된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논란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에 대해 여야 모두 ‘공정의 잣대’를 스스로 꺾어버리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공정한 정치가 ‘선별적 공정’ ‘편의주의적 공정’으로 가서는 안 되며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거나 정권 재창출 수단으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반드시 실패한다고 경고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 경제- 경쟁 활발해야 기회균등… 지나친 규제 없애야

현오석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은 “공정 사회 만들기는 사전(事前)적인 기회의 보장 측면에서 다뤄야 한다. 그렇지 않고 사후적으로 ‘뭐가 공정하냐’에 초점을 맞추면 결국 ‘가진 자’를 깎아내려서 ‘못 가진 자’에게 맞추는 논의로 흐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현 원장은 특히 공정 사회를 경제 분야에서 구현하려면 ‘과감한 규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규제가 많다는 것은 경쟁하지 않은 상태에서 누리는 게 많다는 뜻도 된다”며 “그런 상태가 심하면 결국 기회의 균등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의사 변호사 같은 전문직을 더 늘려나가는 것도 이런 차원에서 고려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효수 영남대 총장(경제학)도 “‘결과의 공정성’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공정한 사회를 단순한 사회주의나 결과적 평등주의와 동일선상에 놓는 우를 범하게 된다”며 “경제 각 분야에서 공정한 게임의 룰을 어떻게 확립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총장은 “대·중소기업 상생 문제도 중장기적 시각으로 보고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은 중소업체에서 무조건 싼 가격으로 납품 받으면 단기적으로는 이익이지만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중소기업이 생기기 어렵고 혁신적 인재도 중소기업으로 가지 않는다. 결국 중장기적으로는 대기업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불행한 일이 생긴다는 것이다.

좌승희 경기개발연구원장은 “정부가 공정 사회의 개념 정의부터 정확히 해야 한다”며 “‘공정 경쟁’이란 표현도 경제적으로는 상당히 정의하기 어렵다. 개념 정의가 분명치 않으면 정부는 공정을 외치지만 시장은 그것을 ‘무조건적인 평등’으로 받아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좌 원장은 “시장에서 소외되는 약자에 대한 배려는 경제정책이 아닌, 사회복지정책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열심히 하는 기업이나 개인이 역차별을 받는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 법률,노동-대기업 정규직노조,비정규직 외면해선 안돼

강지원 변호사(푸르메재단 공동대표)는 “공정 사회 슬로건은 지도층의 고통을 강요하면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으로 흐르고, 솔선수범을 이끌어내는 틀이 되면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규칙이 공정하게 작동해 억울한 사람이 사라져야 공정한 사회”라고 덧붙였다. 김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공정한 사법체계가 자리 잡으려면 국민 누구나 변호사의 도움을 충분히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양심적인 법관으로부터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노희범 헌법재판소 공보관은 “재판을 아무리 공정하게 하더라도 국민들이 ‘판사는 법대 위에 있는 높은 양반들’이라고 생각하면 재판결과에 쉽게 승복하지 못할 것”이라며 “법조인들이 몸을 낮춰 재판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을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노동 분야 전문가들은 ‘공정 노동’의 개념 정립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김주섭 한국노동연구원장 직무대행은 “대기업에는 입사 희망자가 몰리지만 중소기업은 구인난을 겪는 현상은 노동시장에서도 수요독점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왜곡된 노동시장을 개선하려면 공정거래위원회처럼 강력한 기구를 노동 분야에 두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종훈 명지대 교수(경영학)는 “노동계도 현재의 노동운동이 공정한지 자성할 필요가 있다”며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같이 일하는 비정규직이나 하청업체 문제에 눈을 감는 것은 노동 분야의 대표적인 불공정 사례”라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 교육-공교육 정상화-약자배려로 개천서 용나게

교육계에서는 ‘공정한 교육’의 필수조건으로 절차적 정당성과 약자에 대한 배려를 꼽았다.

안양옥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은 “법과 규범의 틀 안에서 합리적으로 자기 능력을 발휘하는 사회가 공정한 사회”라며 “일부 교육감이 제도의 틀을 넘어 자의적 지침들로 교육 현장을 혼란시키는 것은 불공정한 것”이라고 말했다. 성태제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은 “학업에 있어 능력과 성취만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열악한 환경에 처한 계층에 대해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며 “지적 수월성뿐만 아니라 기능적, 도덕적 수월성 등 아이들의 다양한 잠재력이 발휘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공정한 교육”이라고 지적했다.

박종구 아주대 총장대행은 “균등한 교육 기회를 갖는 것이 공정한 사회의 핵심”이라며 “공교육을 통해 누구나 자신의 소질과 적성을 계발해 꿈을 이룰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정한 사회’라는 지표가 빠질 수 있는 함정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박 총장대행은 “전면 무상급식 논란에서처럼 공정한 사회라고 해서 누구나 똑같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해선 안 된다”며 “형편이 어렵고 정말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배려할 수 있는 소수자 배려가 공정의 진짜 의미”라고 강조했다.

박효종 서울대 국민윤리학과 교수는 “내 몫을 바르게 찾는 것에 있어서만 공정을 얘기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남을 배려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 있어서의 공정성도 함께 생각해봐야 한다”며 “나의 공정성만 강조하다 보면 또 다른 불공정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공정한 교육이 뿌리를 내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안 회장은 “무엇보다 교육을 통한 경쟁에서 반칙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박 총장대행은 “균등한 교육 기회를 주기 위해서는 공교육 혜택을 골고루 받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정부가 공교육 활성화 정책에 더욱 적극적이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윤석만 기자 sm@donga.com

■ 문화- 소외층도 문화 즐기게 기업-예술단체 나서야

“공정과 정의는 국가라면 당연하게 추구해야 하는 지향점이다. 모든 개인은 평등하게 태어났지만 능력이 같지는 않다는 것을 배려한 사회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공정한 사회다.”

유종호 연세대 석좌교수(문학평론가)는 공정한 사회를 이렇게 정의했다. 그는 플라톤의 ‘국가’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예로 들며 “플라톤의 ‘국가’에서 강조한 것이 공정과 정의이며, 인간 자체가 정의로워야 하며 정의로운 인간을 만들려면 국가가 정의로워야 한다는 게 핵심이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에서 가장 중요한 게 평등이었는데, 이것은 공정과 다르지 않다”며 “모든 사람이 완전히 평등하게 살기는 어렵겠지만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맞춰나가도록 하는 게 정부의 역할”이라고 주문했다.

유 석좌교수는 “사회의 대(大)목적으로 기회균등을 내걸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조건들을 만들어 가야 한다”며 “단칼에 완전히 평준한 사회를 만들려고 한다면 실패할 게 뻔하다”고 지적했다.

윤정국 문화예술위원회 사무처장은 “문화예술 향유 정책에 ‘공정’ 개념이 필요할 것이다. 지역과 계층에 따라 문화의 향유에 차이가 나기 때문”이라며 “예술 중심지뿐만 아니라 재정이 열악한 지방의 주민도 다양한 문화를 누릴 기회가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윤 사무처장은 “‘공정한 문화 향유의 기회’를 위해서는 기업과 예술 단체들의 자매결연도 더욱 활성화해서 기업의 후원을 통해 문화 소외지역의 주민들에게 문화 체험의 기회가 더욱 활발히 제공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는 “형식논리의 함정에 빠져 절차적 공정성만 법적으로 확립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공정한 사회를 구현하기 힘들 것”이라며 “국민들에게 감정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사회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함께 실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절차적 공정성과 도덕성을 함께 추구해야 공정 사회가 공고한 문화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말이다.

허진석 기자 jameshuh@donga.com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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