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마비 46세 딸 임영자 씨, 치매 70대 어머니에게 쓴 글 ‘편지쓰기 대회’ 대상

동아일보 입력 2010-09-03 03:00수정 2010-09-03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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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걷지못하는 나에게 어머니란 이름의 수호천사 몇달에 한번 가족 알아볼땐
천만금을 얻은 것보다 행복 처음 드리는 이 딸의 편지 마음으로라도 읽어주세요
본인이 소아마비 장애인이면서도 치매에 걸린 70대 어머니를 모시며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편지에 담은 임영자 씨. 임씨는 2일 제11회 전국편지쓰기대회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사진 제공 우정사업본부
“이 딸이 한평생 걸을 수 없듯이 당신 또한 잃어버린 기억을 영원히 되찾을 수 없다는 현실이 너무도 서럽고 서럽습니다. 당신에게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이 감사의 시간이 저에게 얼마나 더 허락될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당신이 이승을 떠나는 그날까지, 아니 하느님께서 제 생명을 걷어 가시는 순간까지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소아마비 장애인인 40대 딸이 치매와 중풍으로 병상에 누운 70대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가 우정사업본부가 주최한 ‘제11회 전국편지쓰기대회’ 대상을 차지했다. 편지의 주인공은 서울에 사는 임영자 씨(46·여). 임 씨의 편지는 대회에 응모한 8만4000여 통 가운데 대상으로 선정됐다.

임 씨는 편지에서 “어머니는 저를 20년을 업어 키우셨고, 당신 몸보다 더욱 커버린 이 딸을 업고 세상구경을 시켜주신다고 남산이며 장충단공원도 수없이 가셨다”며 “당신은 제 삶의 이정표이자 수호천사였다. 하느님이 저를 평생 걷지 못하는 장애인으로 태어나게 하신 대신 어머니라는 이름의 수호천사를 보내주셨다고 생각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그는 12년 동안 중풍으로 누워 있던 남편의 병수발을 하고, 딸을 키우기 위해 안 해본 장사가 없는 어머니의 힘겨운 삶에 대한 안타까움도 토로했다. 그는 치매를 겪는 어머니를 모시는 어려움 속에서도 “몇 개월에 한 번쯤 가족을 알아보시면 이 세상에서 천금만금을 얻은 것보다 더 행복하고 감사하다”며 “당신에게 처음 드리는 이 딸의 편지, 비록 눈으로 읽지 못하셔도 마음으로 읽어주세요”라며 끝을 맺었다.

주요기사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dongA.com에 편지 전문

제 목 : 어머니께 드리는 편지

사랑하는 어머니께.
어머니, 글도 모르시는 당신에게 40년 만에 처음으로 글을 드립니다.
어머니, 어머니란 이름만 입속으로 되 내어도 가슴이 미어지고 너무 아파 견딜 수가 없어 홀로 가슴을 움켜쥡니다. 슬픔이 나의 생활이 되어버린 요즘 이 딸이 한 평생 걸을 수 없듯이 당신 또한 잃어버린 기억을 영원히 되찾을 수 없다는 현실이 너무도 서럽고 서럽습니다.

어머니, 당신에게 어머니라고 부를 수 있는 이 감사의 시간이 저에게 얼마나 더 허락될지 지금은 알 수 없지만, 당신이 이승을 떠나는 그 날까지 아니 하나님께서 제 생명을 걷어 가시는 순간까지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어머니, 조금 전 당신은 귀저기 갈기를 완강히 거부하시며 아직 조금 남아있는 한 쪽 발의 힘으로 마구 발길질을 하시며 발버둥을 치셨지요. 그런 당신을 소아마비로 양쪽다리를 못 쓰는 저의 몸으로 한참을 실랑이 하고 나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습니다. 한참을 그렇게 발버둥 치시던 당신이 이 딸과 실랑이하기도 지치셨는지 조용히 눈을 감으셨습니다. 벽에 기대앉아 주름으로 거북이 등처럼 되어 버린 당신이 너무도 작아져 버린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왠지 모를 서러움이 복받쳐 주르르 눈물이 볼을 타고 떨어졌습니다. 저의 서러움 토해내는 소리에 주무시는 줄 알았던 당신이 휑하니 깊게 패인 눈을 뜨시며 깜짝 놀라물으셨죠? "아가, 왜 울어? 걷고 싶어서 우는 거니? 아가 울지 마라 내 다리 빌려 줄 테니 울지 마라. 네가 울면 이 할미 가슴이 너무 아파 죽겠어." 하시며 연신 저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주셨습니다. 그리고는 언제 감춰뒀던 것인지 침대 매트 밑에서 사탕 하나를 꺼내어 제 입속에 넣어주셨지요.

가엾은 당신, 이 세상 어느 부모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지 않은 분 없겠지만 당신은 정말 열심히 사셨습니다. 그런 당신이기에 이 딸의 가슴이 더욱 아프고 서럽습니다. 12년을 중풍으로 누워있던 남편과 소아마비로 걷지 못하는 딸을 키우며 당신은 열 손가락을 몇 번을 꼽았다 펴야할 정도로 안 해본 장사가 없으셨지요. 그 세월 동안 당신이 겪어온 삶의 힘겨움을 어찌 제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병석에 계셨던 아버지가 저 세상으로 떠나시고 저는 착한 남편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저는 남편과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그동안 너무도 힘겹게 살아오신 불쌍한 당신께 정말 효도 많이 하자고요. 그러나 당신의 고생은 거기가 끝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낳은 딸아이가 백혈병으로 죽음의 문턱을 수 없이 드나들었고, 오랜 세월 병원에서 지내야했기에 그 세월동안 당신은 걷지 못하는 딸 대신 잠시도 바닥에 누워 있지 않는 손녀를 등에 업고 허리뼈가 물러나는 줄도 모르고 지내셨습니다. 회생이 힘들겠다는 의사 말에 어머니 당신은 내 목숨 거둬가고 우리 손녀 살려달라고 병실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하셨습니다. 그날의 당신 모습을떠올리면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이 밀려옵니다. 그런 당신의 눈물겨운 간병 덕으로 저의 딸은 그 무서운 병마에게 이겨 지금은 건강한 대학생이 되어 하루에도 몇 번씩 당신 귀에 입을 대고 "할머니 사랑 한다." 라고 속삭이는데 야속한 당신은 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못하시는지요?

저를 20년을 업어 키우셨고 당신 몸보다 더욱 커버린 이 딸을 업고 세상구경 시켜 주신다고 남산이며 장충단공원도 수없이 가셨습니다. 어머니, 생각나세요? 당신과 제가 40년을 살고 있는 우리 동네에 매봉 산 이란 이름의 산이 있는 것, 과히 높지도 낮지도 않은 산인데 봄이면 유난히도 개나리가 흐드러지게 피곤했지요. 살을 에는 추운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면 벌거숭이산은 노란 개나리꽃으로 옷을 입고, 군데군데 진달래와 벚꽃이 어우러지면 이 세상 그 어떤 솜씨 좋은 화가가 그 풍경과 같은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었을까요?

제 나이 예닐곱 살 때부터라 생각됩니다. 어느 봄날 외출했다 돌아오신 당신이다짜고짜 저에게 등을 업히라고 하셨습니다. 푸른 산이 아닌 노란 산을 구경시켜주신다며, 온 산이 노란 개나리꽃으로 덥혀있는 것을 당신 혼자만 보고, 걷지 못해늘 방에서 세월 보내는 딸이 당신은 안타까우셨던 거지요. 그런데 평소에는 저를잘 업으셨던 당신이 그 날은 어찌 된 일인지 대문 밖에서 몇 발자국 걷더니 무엇엔가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바람에 저는 이마를 다쳐 많은 피를 흘렸고, 당신은 피를 흘리는 저를 부둥켜안고 "미안해, 미안해" 하며 우셨습니다. 저는 상처의 아픔보다 어린나이에 그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서러움이 복받쳐 서럽게 울었지요. 어머니와 저는 그렇게 길바닥에 주저앉아 얼마를 많이 울었던가요?

그 다음 날부터 당신은 혼자 산에 올라가 노란 개나리 한 움큼에다 진달래 몇 송이를 섞어 꺾어 와서는 꽃병대신 우리 집 마당에 놓여 있는 자그마한 항아리에다가 꽂아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길 산에 꽃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하루도 거르지않고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아카시아 꽃이 피면 꽃을 따와서는 먹어보라고 성화도 하셨고, 봉숭아꽃이 피면 그 꽃을 따다 아주까리 잎으로 손톱을 감싸 물도 들여 주셨지요. 첫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조그마한 계집아이에게 첫서리가 내릴 때까지 손톱에 봉숭아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말씀도 해주시며…. 개나리가 피었던 산에 나무들이 빨갛게 고운 빛으로 옷을 갈아입으면 그 나무 잎을 주워와 고이고이 책갈피에 끼워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저는 그렇게 어머니, 당신을 통해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유년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어머니, 당신은 제 삶의 이정표이자 수호천사였습니다. 저는 문득문득 이런 생각을 했어요. 하나님이 저를 평생 걷지 못하는 장애인으로 태어나게 하신 대신 어머니라는 이름의 수호천사를 보내 주셨다고. 산은 그렇게, 어머니 당신이 이 딸을 사랑하는 표현의 산이었습니다. 당신의 눈물과 기쁨이 묻어 있는 산, 꽃을 꺾으러 산에 오르실 때 당신이 느꼈을 그 슬픔의 깊이를 천금 만금보다 더 귀한 저의 두 아이의 어미가 된 지금에서야 조금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꽃을 꺾어 산자락을 내려오시며 이 딸이 꽃을 보고 즐거워 할 것을 상상하며 당신이 맛보았을 기쁨 또한 크셨을 겁니다. 어머니, 당신의 기쁨과 한이 서려있는 매봉산을 저는 영원히 제 가슴속 사진첩에 보물처럼 고이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어머니. 저는 그런 당신이 늘 태산처럼 느껴졌고 언제까지나 그 모습 그대로 제 삶의 튼튼한 버팀목이 되어주시리라 믿고 또 믿었습니다. 당신에게 있는 것 다 주고도 더 못주어 늘 가슴 아려하셨던 당신, 내 어머니, 그랬던 당신이 너무도 힘겨웠던 지난 세월을 잊고 싶으셨는지 지금은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셨습니다.

아직 한참 사실 연세에 치매라는 병마 앞에 젖먹이 어린 아이보다 더욱 나약한모습으로 이 딸의 억장이 무너져 천길 만길 낭떠러지로 떨어지게 하십니다. 과거의 모든 기억을 잃은 당신을 모시고 사위가 벌써 7년째 이 병원 저 병원 ¤아 다니지만 조금도 차도를 보이지 않아 저를 너무도 슬프게 합니다. 몇 개월 전에는 당신 다니시는 병원에서 다시 한 번 정밀 검사를 받자고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입원해 여러 검사를 받았지요. 입원해 계시는 중에 당신의 일흔일곱 번째 맞으시는 생신이었습니다. 생신 날 미역국도 못 드시고 병원에 계시는 당신을 생각하니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쇠고기 조금 넣고 미역국을 끓여 남편이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아 당신이 입원해 계신 병원으로 갔었습니다.

그날은 당신이 받은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엄마 저 왔어요.엄마가 제일 사랑하는 딸 저요." "뭐라고? 우리 딸이 왔다고, 내 딸은 하늘나라에 있는데 그 먼데서 뭐를 타고 왔어?" 하시며 연신 딴소리만 하셨지요. 당신은 이 딸에게 언니라고 부르기도 하시고, 이모라고 부르기도 하시더니 나중에는 어머니라고까지 호칭을 하셨죠. 당신의 그런 모습에 가슴이 미어지는 고통이 밀려와 억장이 무너졌습니다. 당신은 링거 줄을 손가락에 감았다 풀었다 하시며 당신의 한 많고 서러웠던 일생을 필름처럼 되감았다 풀었다 하셨습니다.

의사가 저희 부부를 잠깐 보자고 해, 왠지 모를 불한을 느끼며 담당 의사방으로 갔습니다. 의사가 너무도 가볍게 하는 말이 "할머니는 노인성 치매가 아니라 오른쪽 뇌에 종양으로 인한 치매십니다." 의사의 조금은 무책임하게 들리는 그 말에 저는 "아니에요. 절대 그럴 리 없어요. 선생님 다시 한 번만 더 검사해 주세요.정말 우리 어머니가 뇌종양이라면 어서 수술해 주세요." 라고 애원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저에게 의사는 "할머님은 연세도 계시고, 이미 왼쪽 뇌도 많이 상해 수술이 어렵습니다. 방사선 치료를 받아도 6개월 이상은 견디기 힘드실 것 같네요." 저는 두 손을 모으고 눈물로 애원했습니다. "선생님, 제발 도와주세요. 저 이대로 우리 어머니 떠나시게 하면 안돼요. 도저히 그럴 수는 없어요. 신장도 이식하고, 눈도 이식하고, 간도 이식하는데 왜 뇌는 안 돼 나요? 저의 뇌 우리 어머니께 이식해 주세요. 사람이 달나라도 가고, 동물도 복제하며 인간까지도 복제한다고 떠드는 이 시대에 어떻게 우리 어머니 머릿속에 있는 조그마한 혹 하나 떼어내지 못 한단 말에요? 말도 안 되잖아요. 제발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부모의 도리가 있다면 자식 또한 자식의 도리가 있잖아요. 저 우리 어머니께 아직갚아야 할 빚이 너무 많아요. 이대로는 정말 안돼요." 하며 울부짖었지요. 의사는 저의 이런 절규에 더 이상 아무 말 없이 고개만 저었습니다. 저는 의사의 방을 무슨 정신으로 나왔는지 모르게 나와서는 주위에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도 잊은 채 병실 복도에서 엉엉 통곡했습니다. 그렇게 오래도록 서러움을 토해낸 뒤 어머니 당신 계시는 병실로 갔습니다.

붉게 충혈 된 저의 눈을 보신 당신은 음료 캔 하나를 건네시며 "이모, 걷고 싶어 또 울어? 이모가 울면 내 마음이 너무 아파 제발 울지마, 울지마" 하시며 저의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당신 입으신 환자옷소매 끝으로 연신 닦아주셨지요. 그런 당신 앞에서 복받치는 서러움을 목구멍이 아프도록 꾸역꾸역삼키는 저에게 간병하시는 아주머니 위로 하며 하시는 말씀이, "너무 속상해 하지말아요. 그래도 어머님 정신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세요. 의사만 보시면 손을 붙들고 우리 딸 다리 고쳐달라고 때를 쓰기도 하시고, 병원에서 휠체어 탄 사람을 보면 우리 딸 휠체어니까 망가지지 않게 조심해서 타라고 어찌나 당부를 하시는지 몰라요." 아주머니의 그 말에 저는 어금니가 아프도록 참고 있던 서러움을 결국 터뜨리며 오열하고 말았지요. 저의 그런 통곡에 너무 당황스러워하는 당신을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오며 저는 지금까지의 제 인생에서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제 몸속에 있는 눈물을 모두 다 쏟아버리려는 듯 말입니다.
저는 가슴속에서 간절히 두 손을 모았습니다. 자리에다 대소변을 보아도 좋고,저를 견딜 수 없이 힘들게 해도 좋으니 제발 어머니가 제 곁에 살아만 계셔달라고, 어머니 당신이 제게 주신 사랑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십사고.

병원에서 더 이상 손쓸 게 없다고 해 당신은 퇴원 하셨지요. 그리고 당신을 병원에 그대로 계시게 하고는 저의 마음이 도저히 편치가 않아 힘들어도 제가 당신 곁을 지켜 드리고 싶었습니다. 집으로 오신 당신은 40년을 살아온 이 집을 너무도 낯설어하시며 집에 가자시며 막무가내로 조르십니다.

어머니, 저는 지금까지 장애인으로 살아오면서 제 삶 자체를 장애를 갖고 살았거나 제 삶이 힘겹다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제게 주신 가장 축복의 선물이 저의 생명이라 믿으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몹쓸 병을 앓으신뒤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밖으로만 나가자 시는 당신을 밖에 모시고 갈 수 없어저에게 꼬리표처럼 붙어 있는 장애가 너무 서럽고 자꾸자꾸 원망스럽습니다. 어쩌다 휠체어를 타고 당신과 밖에 나가면 우리 모녀를 보며 주위 사람들의 알 수 없는 연민의 눈빛과 끌끌 혀 차는 소리는 저의 귀에 참을 수 없는 고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제 자신조차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중증의 장애인 처지에 치매와 중풍까지 앓으시는 당신을 간병하기가 너무도 힘에 겨워 문득문득 죽음과도 같은 고통이 밀려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제가 요즘 얼마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줄 모르시지요? 자꾸자꾸 망가져 가는 당신을 보면슬프고 몸은 너무 힘들어 죽을 것 같지만 마음은 하염없이 평화롭습니다. 하나님이 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 주시니까요.

지금 당신은 모든 기억을 잊고 젖먹이 어린 아기 모습으로 당신 분신이었던 이딸마저 못 알아보시고 언니라고 부르기도 하고, 아줌마라고 부르기도 하는 기막힌현실이지만, 당신의 병명이 뇌종양에서 혈관성 치매로 바뀌었으니 이보다 더 감사한 일이 어디 있겠어요?

어머니, 저의 지금 소망은 제 인생에서 5년 아니 10년쯤 깎아서 당신에게 드릴수만 있다면 하는 소망입니다. 어머니. 세상 사람들이 말합니다. 당신이 앓고 계시는 치매라는 병은 단란한 가정을 파괴시킬 정도로 무서운 병이라고요. 그래요 치매 정말 무섭고 힘겨운 병임이 틀림없어요. 하지만 몇 개월에 한번쯤 가족을 알아보시고 누구 아니냐고 당신이 물으시면 우리가족 모두는 이 세상에서 천금만금을 얻은 것 보다 더욱 행복하고 감사하답니다.

어머니, 저녁에 귀가한 사위가 당신 귀에다 입을 대고 "엄마, 사랑해 엄마. 사랑해엄마. 사랑해" 하며 수없이 속삭이고, 핸드폰 바탕화면에 장모님의 무표정한모습을 사진 찍어 담아 넣고 다니는 사위에 눈물겨운 사랑과 전국중고생 자원봉사대회에 뽑혀 상금 200만원을 받아와서는 그 돈을 몽땅 할머니 맛난 것 사드린다고말하는 저의 아들, 호세아의 효도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그 모습 그대로도 너무도 감사하고 또 감사하니까 오래오래 저희들 곁에 계셔주세요.

어머니, 먼 훗날 제 삶 끝자락에 섰을 때 저 스스로에게 어머니께 못해드린 효도 후회 없도록 저 정말 어머니께 잘해드리리 다시 한 번 약속드리며 이만 줄이겠습니다. 어머니, 당신에게 처음 드리는 이 딸의 편지 비록 눈으로는 읽지 못하셔도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어머니, 당신을 존경하고, 당신 딸임을 영원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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