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죽게 만든 학교는 아버지에게 원수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학교에 장학회를 세웠고 빚에 허덕이는 학교 재단을 인수까지 했다. 지난달 30일 서울예고와 예원학원을 운영하는 학교법인 서울예술학원의 이사장으로 선정된 이대봉 참빛그룹 회장(69)이 그 아버지다.
서울예고 2학년이던 막내 23년전 상급생에 맞아 숨져
도시가스와 관광·레저 기업으로 그룹을 일군 이 회장은 1987년에 서울예고 2학년이던 막내아들 대웅 군을 잃었다. 촉망받는 성악도였던 대웅 군은 그해 11월 서울예고 정기연주회에서 꽃다발 세례를 받았다. 공연이 끝난 4일 뒤 대웅 군은 평소 그를 탐탁지 않게 여기던 상급생들에게 학교 근처 언덕으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대웅 군은 갑자기 배를 두 번 걷어차인 뒤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
이대봉 서울예술학원 이사장은 “죽은 막내아들의 못다 이룬 꿈을 후배들이 대신 이룰 수 있도록 장학사업을 더욱 늘려 나가겠다”고 다짐했다.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미국 출장 중 비보를 들은 이 회장은 격분했다. ‘학교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급히 귀국했다. 하지만 평온한 아들의 시신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칼을 맞아도 사는 사람은 사는데 평소 운동도 잘하던 녀석이 배를 걷어차이고 죽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죠. 아이가 노래를 잘하니 하나님이 곁에 두고 싶어 일찍 데려간 게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는 학교장에게 모든 것을 용서하겠다고 말하고 학교에서 제공하겠다는 장례비용도 거절했다. 오히려 교사와 가해 학생들에 대한 선처를 부탁했다. 삼우제 때 교정에서 옮겨온 나무 두 그루를 대웅 군 묘 옆에 심으며 이 회장은 ‘아들을 기리기 위해 장학사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988년 설립된 ‘이대웅 음악장학회’를 통해 매년 4명의 서울예고 학생들이 장학 혜택을 받게 됐다. 장학회는 음악영재를 길러내기 위해 성악콩쿠르를 개최해 우수 학생에게는 유학비도 지원했다.
아들 이름으로 장학회 세워 매년 국내외 500여명 후원 최근 빚더미 학교 직접 인수
장학사업은 국외로도 확대됐다. 5년 전 사업 때문에 중국 옌지(延吉)를 찾은 이 회장은 조선족 자녀들의 가난한 생활상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옌지에는 독립투사의 후손들도 많은데 그들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재능이 있는데도 가난 때문에 공부를 못 하는 아이들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옌지 시장의 추천을 받아 매년 100명에게 장학 혜택을 주고 있다.
3년 전부터는 매년 100명의 베트남 전쟁 희생자 자녀와 200명의 저소득층 학생에게도 장학금을 주고 있다. 그는 “베트남전이 그 나라에 입힌 상처를 어루만지겠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아들의 죽음으로 시작한 장학회가 이제는 매년 500여 명의 국내외 학생을 후원할 정도로 커졌다.
학교재단을 인수하자마자 예전 이사장의 횡령으로 인한 부채 84억 원을 청산한 그는 앞으로 낙후된 시설을 개선하고 학생들이 연습하고 공연할 수 있는 홀을 건립할 계획이다. 그는 “세계적인 예술인을 배출할 수 있도록 학교를 경영할 것이다. 자식이 못 이룬 꿈을 후배들이 이룰 수 있는 학교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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