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성애병원에서 만난 김윤광 이사장은 “돈보다 환자가 먼저”라는 충고를 후배 의사들에게 던졌다. 김 이사장은 재단을 세워 사회적 약자들의 진료비를 지원한 공로로 7일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김재명 기자
“충남 논산에서 병원 할 때니까 1960년대였을 거야. 한창 진료 중이었는데 임신부가 집에서 하혈을 하니 와 달라는 전갈이 왔어. 기다리던 환자가 많았지만 사람 목숨부터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 자전거 뒷자리에 간호조무사를 태우고 임신부 집으로 달렸어.”
빚내서라도 진료장비 구입
대기 중인 환자를 봐야 수입이 늘겠지만 사람의 목숨이 중요하다는 게 이 의사의 철학이었다.
김윤광 성애병원 이사장(88). 6·25전쟁 이후 1980년대까지 진료 현장을 떠나지 않은 국내 현대의학 1세대다. 국내 의학 발전을 현장에서 체험하고 가난한 이들에게 의술을 베푼 산증인이기도 하다. 김 이사장은 최근 보건의 날을 맞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다. 이에 앞서 1999년 국민훈장 모란장, 2001년 수교훈장 흥인장을 받았다.
김 이사장은 1921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부모님의 고향인 평안남도 순천으로 건너갔다. 광복을 맞기 2년 전 평양 제3공립중학교에 합격했고 1949년에는 평양의대를 졸업했다. 1년 후 전쟁이 터지자 김 이사장은 병사들을 치료하는 ‘위정장교’로 입대했다.
전쟁이 끝나고 4년이 지난 후 김 이사장은 논산에서 의원을 열었다. 김 이사장은 당시 의료수준이 너무 열악했다고 회상했다. “의사들은 붉은 소독약에 두 손을 담근 후 일반 솔로 30분간 손을 벅벅 밀고 난 후에야 환자를 봤어. 때로는 시루떡을 삶을 때 나오는 증기에 의료기기를 소독하기도 했지.”
의사들은 청진기 하나만으로 모든 병을 진단하던 시절이었다. 김 이사장은 의사가 병을 제대로 진단하려면 빚을 내서라도 장비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당시 마취기, X선 촬영기, 심전도측정기를 구입했다. 다른 의사들은 그를 별난 사람으로 치부했다.
돈 좇는 의사는 의사 아니다
1968년 현재의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으로 병원을 옮긴 뒤에도 김 이사장은 첨단 장비를 구입하는 데 많은 돈을 투자했다. 성애병원은 1970년대에 이미 웬만한 대학병원보다 앞서 컴퓨터단층촬영(CT) 장비를 갖췄다. 자기공명영상(MRI)촬영 장비와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CT) 장비도 일찌감치 마련했다.
김 이사장은 “의사가 돈을 생각하는 순간부터 문제가 된다. 환자를 상대로 사업을 하려는 의사는 의사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성애병원은 가난한 환자가 많은 병원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병실이 전체 병실의 70%를 차지한다. 1, 2인실을 줄이고 다인실을 늘린 것. 치료비가 없는 환자를 지원하기 위해 윤혜복지재단도 만들었다. 이 복지재단을 통해 조성한 돈의 일부는 저소득층 치료비로 쓰이고 있다.
김 이사장은 정부의 의료정책이 의사들을 지나치게 배척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시에 요즘 젊은 의사들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충고했다. “후배 여러분, 사람을 고치겠다는 일념으로 의사 생활을 하세요. 돈은 나중의 문제입니다. 최신 의료기술을 열심히 습득해 환자를 고치세요. 그게 의사의 사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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