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그녀의 장점 ‘결단성’, 아쉬움 ‘두 자녀’, 갖고 싶은 능력 ‘백핸드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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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2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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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실존 모델 美패션잡지 ‘보그’ 편집장 애나 윈투어

별명은 ‘핵폭탄’과 ‘얼음공주’. 즐기는 브랜드는 ‘샤넬’과 ‘마놀로 블라닉’. 세계 패션계를 쥐락펴락하는 애나 윈투어 미국 ‘보그’ 편집장. 사진 제공 미로비전
별명은 ‘핵폭탄’과 ‘얼음공주’. 즐기는 브랜드는 ‘샤넬’과 ‘마놀로 블라닉’. 세계 패션계를 쥐락펴락하는 애나 윈투어 미국 ‘보그’ 편집장. 사진 제공 미로비전
기자는 애나 윈투어 미국 ‘보그’ 편집장을 두 번 직접 봤다. 2005년 미국 뉴욕 패션위크와 지난해 프랑스 파리 패션위크를 취재할 때였다. 항상 패션쇼 맨 앞줄에 앉는 그는 그때마다 큼지막한 검은색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그의 반대편에 앉아 패션쇼를 보게 될 때면 기자는 무대를 걷는 모델을 한 번 본 뒤, 애나의 반응을 유심히 살폈다. 선글라스로 가린 그의 시선을 잘 볼 수 없어도, 그가 어느 옷에 특별히 관심을 갖는지는 그의 고개가 돌아가는 방향과 멈추는 시간으로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온 기자뿐이랴. 전 세계 패션 산업을 좌지우지하는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그 자체로 패션계의 빅뉴스가 된다. 최근 국내 개봉한 영화 ‘셉템버 이슈’는 그를 소재로 그가 직접 출연한 다큐멘터리 영화다. 2007년 보그 9월호(셉템버 이슈)는 1892년 보그가 창간된 이후 가장 두꺼운 분량을 펴냈다. 전체 840쪽 중 727쪽이 광고였는데, 이는 패션 산업에 대한 애나의 입지전적 위치를 극명하게 드러낸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관록의 여배우 메릴 스트리프가 연기했던 패션잡지 편집장은 만인이 알고 있듯, 애나를 모델로 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보그 코리아’가 e메일 인터뷰로 애나에게 그 영화를 본 소감을 묻자 “당신이 본 것을 모두 믿진 마세요”라고 답했다. “‘패션 잡지는 소비를 조장하는 쓰레기’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이란 질문엔 “아마 그들은 ‘보그’를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을 거예요. 스타일, 정치, 문화, 잘 사는 것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보그’에도 관심이 있을텐데요. 물론 잘 사는 것이 꼭 비싸고 화려하게 사는 걸 의미하진 않아요”라고 답했다.

애나는 1949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으니, 올해 61세다. 고졸 학력의 패션잡지 어시스턴트로 시작해 여러 잡지를 거쳐 1985년 영국 ‘보그’ 편집장, 1988년엔 꿈에 그리던 미국 ‘보그’의 역대 5번째 편집장에 올라 지금까지 패션계를 ‘군림’하고 있다. 미국 작가 제리 오펜하이머가 쓴 애나에 대한 평전인 ‘(패션쇼의) 첫 번째 줄’(Front Row·한국어 번역판 ‘워너비 윈투어’)에 따르면 애나는 10대 때부터 숱한 연애를 거쳐 재력 있는 남자들을 발판 삼아 화려한 인맥을 구축했다.

글 쓰는 능력은 형편없었지만 유명 포토그래퍼와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탁월한 안목으로 당대의 패셔너블한 화보 촬영을 주도했다. 그는 영화 ‘셉템버 이슈’에서도 ‘오스카 드 라 렌타’의 민소매 원피스 위에 얌전한 카디건을 걸친 스타일을 여럿 선보였다. 젊을 적부터 뭇 남성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그는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의 패션’, 즉 얌전하고 여성스러운 스타일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패션쇼를 보고 있는 애나 윈투어. 사진 제공 미로비전
패션쇼를 보고 있는 애나 윈투어. 사진 제공 미로비전
‘보그 코리아’의 신광호 피처 디렉터는 애나에 대해 “지구상에서 패션에 가장 사명감을 가진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보그’는 패션화보를 지면에 실으면서 모델이 입은 옷을 살 수 있는 백화점을 함께 소개한다. 샤넬이든 루이뷔통이든 옷을 살 수 있는 곳은 여럿 있는데 굳이 한 백화점을 콕 찍어 소개하는 건 애나가 패션 산업을 좌지우지한다는 얘기다. 영화 ‘셉템버 이슈’에서도 니만 마커스 미국 백화점 대표는 애나에게 말한다. “애나, 이건 당신 권한이 아닐지도 모르지만 좀 도와줬으면 하는데…. 디자이너들의 제품 배송이 너무 늦어요.” 애나는 이 자리에서 디자이너들을 움직이겠다고 약속한다. 애나는 한때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가 휘청거릴 때 그의 디자인을 부각시킨 지면을 계속 실었다. 1998년 미 백악관 성 추문이 불거졌을 땐 힐러리 클린턴을 매력적으로 변신시켜 그해 12월 ‘보그’ 표지모델로 내세웠다. 이후 힐러리의 인맥은 곧 애나의 인맥이 됐다.

애나는 예나 지금이나 매일 오전 6시에 일어나 테니스를 친 후 전문가로부터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단발머리 손질과 결코 짙지 않은 화장을 맡긴 뒤 8시에 보그 사무실로 출근한다. ‘셉템버 이슈’ 끝 부분에서 촬영진이 묻는 세 가지 질문과 그의 답변은 이렇다.

Q: 당신의 강점은? A: 결단성

Q: 당신의 약점은? A: 아이들(이혼한 애나에겐 두 자녀가 있다)

Q: 당신이 갖고 싶은 능력은? A: 백핸드 기술

기자는 애나가 말한 ‘백핸드 기술’이 단순히 테니스 기술만을 뜻하진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의 패션 카리스마는 어쩌면 이 땅의 여성들에게 정교한 백핸드 기술의 가르침을 줄 수도 있으리라. 기회를 포착하고 확장하라, 연애는 놀이처럼 즐겨라, 가십은 실력과 열정으로 돌파하라, 늘 젊은 감각과 자부심으로 무장하라, 소문과 평판에 의연해져라, 더 높은 자리를 열망하라, 스타일은 개척하는 자의 것이다….

P.S. 기자가 애나를 본 순간들엔 늘 그에게 붙어 잘 보이려는 남자들이 있었다. 유명 디자이너든, 백화점 고위 관계자든. 별명이 ‘핵폭탄’이건 ‘얼음공주’건 뭐 어떤가. 영국 ‘가디언’은 그를 ‘비공식 뉴욕 시장’으로 명명했으니….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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